전통(傳統)이란 무엇일까? 그 사전적 의미는 “어떤 집단이나 공동체에서 과거로부터 이어 내려오는 바람직한 사상이나 관습, 행동 따위가 계통을 이루어 현재까지 전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전통을 춤으로 풀어가는 과정은 어떤 모습일까? 과거는 어떻게 이해되고 현재로 전승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누적된 몸의 기억인 춤이란 측면에 주목한 공연이 국립현대무용단에 의해 "전통의 재발명전" 이라는 제목으로 8월 22~24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있었다. 35편의 공모작 중에서 선정된 두 작품은 가다프로젝트의 <어긋난 숭배>와 고블린파티의 <혼구녕>이었다. 작품 제목에서 연상되듯 그 주제는 전통적 제사의식과 상례(喪禮)였으며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업의 결실이었다.
<어긋난 숭배>는 독특한 자신만의 색깔로 다수의 작업을 해 왔던 김보람과 벨기에에서 활동 중인 이은경이 구성한 가다프로젝트의 공동 안무작업으로, 강강술래와 전통적 제사의식을 차용해 현대인의 삶을 그 안에 투영 혹은 중첩시키며 나름의 변용을 도모했다. 강강술래는 원시시대부터 1년 중 가장 달이 밝은 밤에 축제를 벌여 노래하고 춤추던 풍습에서 비롯된 민속놀이로, 그 특성을 반영해 상수에 떠 있는 보름달, 원형을 이루며 놓여있는 토끼인형들, 강강술래와 전통민요를 통해 전달되는 토속적 음향, 제사 의식을 상징하는 향이 이미저리로 쓰였다. 정장을 차려입은 김보람과 군복을 연상시키는 의상을 갖춘 이은경은 현대의 다양한 군상들을 대표하는 듯 하며 둘은 바닥에 놓인 토끼 인형들을 꼭꼭 밟으며 원형(圓形)으로 도는 움직임을 하는데, 이러한 윤무(輪舞)는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존재하던 원형(原形)이었다. 이들이 사용한 토끼 인형은 우리가 달에 산다고 생각하던 숭배의 대상일수도, 토끼 같은 자식이 여럿 딸린 가장의 모습일 수도 있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다의적 해석이 가능한 사물을 통해 주제를 극대화시킨 점은 성공적이었다. 움직임의 특성에 주목해 볼 때 강강술래에 쓰이는 다양한 전통 춤사위와 신체와 음악의 흐름을 타면서 정형화되지 않은 동작의 전개는 전통과 현대의 미묘한 조화를 이룬다. 노래의 가사에 맞춰 몸과 머리를 떤다든지 속옷 차림에 선글라스를 끼고 아무렇지 않은 듯 무심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희화되었으며 일면 유희적이다. 토끼 인형을 자신들의 분신으로 설정해 무대 중앙에 위치시켜 놓고, 둘은 예수의 얼굴이 그려져 있는 아래 '믿음부자․불신지옥'이라 쓰인 목욕가운을 걸친 채 화려하게 치장을 하고 우리가 쉽게 이해 가능하도록 교회를 풍자했다. 그럼에도 아이러니하게 달을 보고 기원하는 모습에서 현대인의 모순과 절대자에 의지하던 전통과 현대의 맞물림 등을 그려냈다. 성적 유혹에 약한 모습, 돈을 관객석으로 뿌림으로서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거부, 마지막 텐트 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은폐 등을 통해 본인들은 변하지 않고 숭배에 대상에게만 집착하는 우리들의 실상을 가볍게 비틀었다.
고블린파티의 <혼구녕>에서는 임진호, 지경민, 전효인, 이경구가 함께 했다. 안무는 임진호가, 연출은 지경민이 했는데 고블린파티 역시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는 단체로 이번 작품에서는 전통 상례를 모티브로 삼았다. ‘혼구녕’이란 혼의 구멍 혹은 정신에 구멍이 뚫릴 만큼 호되게 혼을 낸다는 의미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단어의 느낌을 차용한 듯하다. 상복을 암시하는 검은 양복, 상례에 쓰이는 온갖 천뭉치 꾸러미, 슬픔으로 가득 찬 느린 움직임 등이 한눈에 주제를 각인시켰다. 죽음이란 두렵지만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사실이기에 친숙하면서도 위트 있게 처리한 부분은 성공적이나 '귀신'이란 죽어서도 세상을 쉽게 못 떠나는 존재로 “'깨어있지 못하고 집착이 강한 사람, 그 사람이야말로 귀신같은 존재다'라는 대목은 전체 맥락과의 연계성이 모호했다.
그들이 들고 나온 긴 나무판자는 관을 상징했고, 특별한 테크닉적 동작을 배재하고 정신없이 부산하게 움직이며 괴성을 지르고 때로는 슬로우 모션으로 웃음을 자아내는 부분도 그들만의 피지컬 시어터적 연출이었다. 또한 관객이 실제로 보기 어려운 상여매기, 염하고 입관하는 절차, 곡하며 슬퍼하는 장면 등 장례의식 전체를 무대 공간에서 풀어내고 진지한 일면 유쾌하고 우스운 듯 보면 진솔한 예측불가능성이 특색 있었다. 음악적 부분에 있어서도 팝송과 옛 가요, 성가 등이 뒤섞이며 무대 전체로 흩뿌려진 색색의 천들과 시청각적 카오스를 만들어냈고 갖가지 오브제 속에는 세부적 의미를 담았다.
무용수들의 몰입은 신체가 뿜어내는 열기로 다가왔고, 안무가 임진호가 말하는 행복한 사후세계는 그 믿음처럼 슬픔만이 가득한 저승이 아니라 후일을 기약하는 만남의 세상이기도 하기에 세월호 문제와 그 밖의 가족간의 이율배반적 상황들은 희비가 엇갈리며 잘 표현되었다.
두 작품을 통해 인지가능한 현실은 필자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서로 다른 세대로서 이들이 바라보는 전통이란 어렵고 진지하고 지켜나가야 할 의무감이 가중된 그 무엇이 아니었다. 아쉬운 점은 비판적 시각과 친근한 요소가 혼재하며 재해석된 전통의 맥락은 밀도감 보다는 산만함이 엿보였고 친절한 설명이 배재되면서 다양한 판단을 요구하는 관객에 대한 불친절은 나름의 전략이었을까? 또한 재미와 감동이 공존하는 무대를 기대하기엔 무리가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갖게 했다.
이는 대중성을 겨냥해 웃음과 풍자적 요소를 곳곳에 배치시켰으나 전통이 지닌 묵직함을 가볍게 처리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고 과연 재발견과 재발명의 간극에서 전통이라는 것이 지닌 의미를 통해 이번 작품들이 재발명이라는 단어를 붙일 정도로 새롭고 혁신적인 것인가?라는 의문도 들었다. 컨템포러리 댄스라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이들의 표현방식과 구성 등이 대중에게 성공적으로 어필되었다면 오늘날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흐름이려니 하고 수용할 수 있으나 키치와 자의적 해석이 맞물려 자신들만의 잔치로 끝난다면 그 방향성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선행되어야 함을 지적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무가들의 개성 있는 아이디어와 신체언어의 발굴, 급속하게 발전하며 변질될 수도 있었던 전통이라는 측면을 재조명하는 작업은 앞으로도 진행되어야 할 과제이다.
글_ 장지원(무용평론가, 한국춤문화자료원 공동대표)
사진_ 국립현대무용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