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고의 흥겨운 가락은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고 그 흥겨움에 같이 동화된다. 장고의 이러한 매력을 백분 발휘한 성윤선의 <고고(鼓 GO)> 공연이 7월 10일 서울남산국악당 크라운해태홀에서 있었다. 성윤선이 의도한 것은 김병섭류 설장고라는 단일 장르를 산조춤, 장고춤, 소리로 확대시켜 다양한 형식으로 안무해 컨템포러리 장구의 형태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여기에 어울리게 한판으로 엮은 춤들은 장고춤 네트워크의 창단공연에 적합한 신선함을 제공했다. 그녀는 서울교방의 김경란 선생의 연출과 서정숙의 사회로 7개의 레퍼토리를 마련했는데, 특유의 긍정적 에너지와 재치가 곳곳에 묻어있었다.
첫 시작은 성윤선 안무, 양세인 출연의 <장고산조>였다. 2020년 초연 이후 2번째 무대로 정갈하고 담백한 작품이었다. 기존 장고춤과 다르게 장고를 굴리는 등의 방식으로 새롭게 연출해 만들어낸 무대는 호남가와 신쾌동류 거문고산조에 맞춰 장고를 소품으로 사용하여 만든 창작품이다. 안무자는 밀도 높은 내면적 움직임에 의한 허허로운 여백미를 감상 포인트로 뽑았는데, 장고산조를 춘 양세인에 의해 무심한 듯 정중동의 묘미를 담아내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노랫가락장고춤> 역시 성윤선의 안무로, 3명의 무용수들(이유진, 조은정, 정지수)은 화려하면서도 흥겨운 무대를 꾸몄다. 안무가는 창부타령과 방아타령에 맞춰 전통춤 호흡을 기반으로 춤을 추다가 후반부에는 김병섭류 설장고를 간추려 안무했다. 본 작품은 권번춤과 설장고 동작의 절묘한 조합에 의한 독창적 움직임의 창안과 다이나믹한 동작과 역동적인 동선에 의한 보다 화려한 볼거리가 특징이었다. 무용수들 각각의 개성이 드러나면서도 아름다운 한복의 색채와 다양한 장고가락, 흥미로운 조합이 인상 깊었다.
<설장고춘향뎐>은 향단 역의 복영선, 이몽룡 역의 양세인, 춘향 역의 윤민정이 어우러져 마치 무용극을 보듯 재미있었다. 세 무용수들의 드라마틱한 표정과 탄탄한 기본기에 코믹한 연출이 더해져 시선을 끌었다. 3인 정읍설장고춤을 모태로 김병섭류 설장고에 춘향, 이도령, 향단의 삼각관계를 스토리텔링한 작품에서 풋풋하고 패기 있는 젊은 무용수들의 춤이 설장고를 기반으로 또 다른 춘향전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간주곡-노(路)는 성윤선이 가사를 써서 자신의 장구에 대한 심정을 노래로 잘 표현했고, 소리를 해준 어연경의 구슬프면서도 귀에 박히는 노래가 적재적소에 투입된 구성이었다. <모던장고춤-상사화>는 성윤선이 직접 안무와 출연을 병행한 작품이다. 소리꾼 고영렬의 ‘상사곡’과 피아노 선율이 어우러지는 가운데 성윤선의 장고 스토리를 동시대에 맞게 재해석한 초연작이다. 그녀는 다양한 몸짓으로 장구를 사용하며 살아있는 오브제로서의 장구의 역할을 설정했다. 초반부 선명한 붉은색의 의상을 입고 누워서 기어가며 시작되지만 이후 장고를 끌고, 굴리고, 머리에 이고, 다리 사이에 끼고, 가슴에 품기도 하면서 후반부는 장구를 모아놓고 그 위에서 돌며 춤을 추기도 했다. 이처럼 움직임의 폭을 확장해 직접적으로 폭넓게 감정을 표현함으로서 디테일한 감정과 정서를 솔직하게 드러내는데 충실했다. 이는 기존에 그녀가 보여주었던 창작 작업들이 기존의 전통적 범주인 형식적, 내재적 요소들이 강조되었다면 여기서 벗어나 기승전결을 따라 그녀의 장고 스토리를 맘껏 꾸며냈다. 내면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는 진솔하고 솔직한 움직임을 바탕으로 장고와 춤꾼의 합일(合一)이 관객들을 감정이입 시켰다.
<백수의 꿈>은 안무와 출연을 직접 한 윤민정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눈길을 끈 작품으로, 노래 가사에 적절하게 맞춘 춤이 유머러스하면서도 어려운 현실을 역설적으로 담아냈다. 윤민정은 넘치는 끼와 현대무용에 가까운 움직임으로 역동성을 강조했다. 재미있게 연출된 TV모니터 영상이 나오고 트레이닝 복을 입고 백수의 일상을 그려낸 전체적 장면은 장고와 연주가 진지와 코믹을 넘나들며 즐거운 공연이었다.
마지막 하이라이트였던 <설장고 7080>은 김병섭류 설장고에 옛 추억을 소환하는 교복과 음악, 구성을 통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70,80년대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개구쟁이 같은 남녀 캐릭터를 부여받은 7인(복영선, 이유진, 조은정, 양세인, 정지수, 윤민정, 김예지)과 성윤선, 후반부 마치 현대무용단 앰비규어스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의상을 입고 악기를 연주한 4인(쇠 함주명, 북 김주범, 태평소 이정훈, 비트박스 박종열)의 조합은 신선했다. 특히 영화 ‘그리스’의 패러디와 가요, 랩의 삽입 등으로 대중적 요소를 가미하며 흥겨움을 극대화하고자 했던 안무자의 의도는 성공적이었다. 그동안 ‘뽀뽀뽀’라는 어린이 방송 프로그램에서 안무를 맡아 대중의 취향을 잘 파악하고 있는 그녀의 능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곳곳에 러브라인도 있고 열정적인 군무도 포함시키면서 고교시절 장기자랑을 펼치듯 그려진 장면은 고교 시절 추억놀이였다.
성윤선의 장고춤 네트워크 창단공연 <고고(鼓 GO)>는 기존의 틀을 벗어나 동시대성을 살리면서 그 다양성과 창의성, 흥과 재미가 잘 버무려졌다. 움직임에 있어서도 전통적인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세태에 맞는 변형을 가해 관객들로 하여금 장고춤이란 옛것이라는 선입견을 벗어나는데 충분히 기여했다. 특히 성윤선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연출력을 확인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복영선이라는 반짝이는 무용수를 발견한 무대였다. 또한 모든 출연자들의 고른 기량과 성실함, 열정, 관객들의 열기가 합쳐져 한마음으로 웃고 즐기는 가운데 안무가의 바람대로 이 시대의 진정한 판굿으로 거듭난 시간이었다.
글_ 장지원(무용평론가)
사진제공_ 성윤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