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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불교무용이 보여준 순수의 미학 - <샴발라>



 소승(小乘)과 대승(大乘)은 비교적 익숙한 불교용어지만 최상승(最上乘) 혹은 금강승(金剛乘)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생소할 것이다. 대승사상이 중심이 된 한국• 중국• 일본 불교와 달리 달라이라마(Dalai Lama)로 대표되는 티베트 불교가 국내에 소개된 적이 드물기 때문이다. 달라이라마의 국제적 인기를 바탕으로 서구사회에 급속히 전파되고 있는 티베트 불교가 <샴발라(SHAMBHALA)>란 제목의 현대무용작품으로 국내무대에 올랐다.(8.2~3, 국립극장 하늘극장) <샴발라>는 영혼의 낙토 혹은 극락(천당)을 뜻하는 티베트어다. 티베트인 무용가이자 연출가인 '완마 지안추오'가 북경에 설립한 완마댄스컴퍼니(Wanma dance Company)가 2012년 북경에서 초연한 작품으로 뉴욕 시카고 등 해외공연을 거친 후 한국을 찾았다.

 

 젊은 스님 하나가 향불을 들고 순례하듯 무대 구석구석을 순회하면서 공연이 시작된다. 어린 동자승이 커다란 소라고둥을 들고 무대 가운데로 걸어 나와 힘주어 고둥을 불어댄다. 세찬 파도소리가 배경음이다. 무대 깊은 곳에선 채색된 모래를 붓 삼아 거대한 만다라(曼茶羅)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한다. 무대 중심에 그려진 커다란 원으로 조명이 쏟아진다. 주위를 회전하며 춤추던 8명의 남녀무용수들이 오체투지(五體投肢)식으로 원 안으로 몸을 던져 엎드린다. 무거운 관을 쓴 라마가 천상에서 내려오듯 무대 앞으로 등장한다. 양 손에 새의 깃털과 활을 들고 있다. 오직 스승(라마)으로부터 제자에게로 비밀한 형식으로 전승되는 티베트불교의 특징을 보여주는 듯하다. 뒷면 벽에는 커다란 연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 순결과 지혜, 포용을 뜻하는 연꽃은 불교의 상징이자 무용단이 추구하는 춤의 목표이기도 하다.

 


 

 명상과 순례 등 구도자의 진지한 수행모습이 솔로와 2인무 3인무로 다양하게 표현된다. 새들이 날아와 수행자의 주검 앞에 모여든다. 새들에게 주검을 맡기는 천장(天葬)의 모습이다. 새가 인도하는 영혼은 샴발라로 날아오르고 현세의 주검은 사람들의 어깨에 실려 이승을 떠나간다. 소쿠리에 채색모래를 가득 담은 사람들이 차례로 등장해서 만다라를 완성해간다. 공동농장에 씨를 뿌리듯 붉은 색과 녹색, 흰색과 검정, 황색의 5색 모래가 출연자들 모두에 의해 질서 있게 뿌려지면서 완성되어가는 만다라는 불교가 추구하는 이상세계인 우주를 상징한다. 무대를 가득 채우며 완성된 만다라가 화려하게 빛나는 순간 그림은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색들이 뒤섞이며 공중에 모래가 날고 사람들은 모두 한 덩어리가 되어 뒹굴며 무대를 누빈다. 색즉시공(色卽是空)이고 공즉시색(空卽是色)이다. 색을 통하지 않고는 공에 도달할 수 없지만 공은 색을 잊음에 의해서 비로소 완성된다. 정성들여 만다라를 그리고 순식간에 이를 파괴함으로써 그들은 만법을 모두 통달하고 해탈에 이르더라도 결국 남는 것은 공(空)일 뿐이라는 진리를 보여주는 것이다. 달을 찾기 위해 손가락으로 달을 가르치지만 달을 찾은 후에는 손가락을 잊어야한다는 것과 같은 논리일 것이다. 동자승이 다시 등장하고 소라고둥을 불어댄다. 세찬 파도소리가 들리고 바람이 불고 있다. 소승이든 대승이든 금강승이든 불교의 가르침은 다르지 않다. 자연이 영혼의 고향임을 깨닫는 것이 바로 해탈의 진실일 것이다.

 


 

 <샴발라(SHAMBHALA)>는 밀교(密敎; Esotericism) 혹은 금강승(Vajrayana)으로 알려진 티베트불교의 핵심사상을 모티브로 삼은 컨템퍼러리 작품이다. 티베트 불교 춤의 바탕인 전통춤에 현대무용 테크닉이 결합된 춤사위로 80분간 지속된 공연은 신선했다. 낯선 관객들에게는 지루하게 비쳐질 수도 있는 수행부분의 10분정도를 줄인다면 짜임새가 더욱 돋보일 것이다. 수행자를 연상케 하는 무용수들의 단련된 몸매는 아름다웠고 그들의 춤에서는 수행자와 같은 진정성이 느껴졌다. 만다라를 완성시킨 오색모래의 물결은 불교미술의 정수일 뿐 아니라 무대미술의 완성된 미학을 보여준 소중한 기억이었다. 티베트불교를 소개하는 교육적 효과와 함께 민속춤의 컨템퍼러리성을 함께 획득한 이 작품이 조명과 음향이 완비된 대극장 무대에서 더 많은 관객들에게 보여지지 못한 것은 아쉽다.

 

 

글_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사진_ 이인숙 북경수도사범대학교 교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