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진’과 <나비부인>으로 이목을 끌었던 이번 공연은 명성만 확인했을 뿐, 안무자의 진실성은 찾아볼 수 없었던 무대였다.
7월 4일~6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 된 강수진과 인스부르크발레단의 <나비부인>은 국내 최초라는 타이틀과 함께 세계가 인정한 극적 발레(dramatic ballet)의 대명사 강수진이라는 무용수로 인해 전회 매진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이미 지난해인 2013년 오스트리아에서 초연 될 당시에도 전회 매진의 기록을 남긴바 있지만 이번 공연은 국립발레단 단장 ‘강수진’으로 무대에 선다는 점이 시선을 집중시켰을 것이다.
작품의 내용은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의 원작과 같이 집안의 몰락으로 게이샤가 된 초초(Ciocio)와 나가사키 주재 미국 해군중위 핑커톤(Pinkerton)의 비극적인 사랑이 주제다. 존 루터 롱(John Luther Long)의 소설에 영감을 받아 데이빗 벨라스코(David Belasco)가 쓴 희곡을 원작으로 한 <나비부인>은 오페라로 유명하지만, 이번 무대는 엔리케 가사 발가(Enrique Gasa Valga,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발레단의 예술감독)가 강수진을 염두에 두고 11년 동안 구상한 발레작품으로, 강수진 외의 다른 부분에서는 작품의 타당성(妥當性)에 대한 의문을 갖게 했다.
1부와 2부로 구성된 90여분 동안의 무대는 <나비부인>의 이미지를 위해 일본 다다미방을 연상하게 하는 무대장치와 기모노 의상, 나막신, 일본 검 등이 등장하였고 고전발레(classic ballet)의 테크닉과 함께 군무의 모던댄스, 과장된 나막신을 신고 움직이는 탭댄스, 일본 부토의 움직임, 스윙재즈댄스 등의 춤들이 총출동되어 무대의 화려함을 선사했다.
그러나 화려한 무대 가운데 음양(陰陽)을 상징하는 무용수들의 등장은 모호함으로 난해한 요소였고 심저(心底)를 자극해야 할 ‘다이코(太鼓)’와 꽹과리는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함으로써 공연에 도움을 주지 못했으며 특히 초초의 자결 장면이 갑작스럽게 전개되며 급한 마무리로 공연은 끝이 난다. 막이 내려가는 순간 허무한 기분은 아마도 안무자의 진실성 문제가 아닐까? 전시 효과로서의 잡다한 춤들과 동양적 분위기 연출을 위한 타악기 연주, 특이성을 위한 무용수의 구음 등은 안무자가 작품 근저(根底)의 동양문화에 대한 분석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황에서 시각적인 부분만을 신경 쓴 것 같았고 이로 인해 안무자의 작품에 대한 진실성이 결여되어 보였다. 그래서 부자연스럽고 어색한 공연이었다.
발레의 기량과 창작의 수준이 국제적으로 향상된 한국의 현실에서 볼 때 강수진과 외국발레단의 공연이라는 이유만으로 찬사를 보내던 시절은 지났다. 특성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동양의 타악기와 움직임을 방해하는 의상, 과도하게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무대장치와 효과, 발레 기교의 완벽함 속에 어설프게 보이는 무용수의 걸음걸이, 감정전달의 몫을 강수진 혼자 감당해야 했던 무대 등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발레의 수명이 짧은 만큼 ‘노장은 살아있다’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강수진은 발레를 하기에 힘겨운 나이(만47세)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무대에서 그의 명성을 재확인시키는 기회였을 것이다.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그녀의 세계적인 명성을 등에 업고 내년에 국립발레단 정기공연의 레퍼토리로 예정된 <나비부인>을 무대에 올린다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이다. 더불어 국립발레단의 위상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글_ 전주현(발레전문 리뷰어, 한국춤문화자료원 공동대표)
사진_ 크레디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