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형문화재의 가치는 절대적이다. 반면 인간문화재의 가치는 상대적이다. 무형문화재에는 오랜 기간의 역사의 가치가 투영되어 있다. 한편 인간문화재에게는 개인의 삶이 반영되어 있다. 역사와 개인만큼, 무형문화재와 인간문화재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인간문화재를 존중하는 마음은 변함없지만, 인간문화재의 예술이 늘 절대적일 순 없다. 인간문화재의 기예에는 평생 해 온 공력이 존재하지만, 또한 간과할 수 없는 게 인간문화재의 개인적 취향이다. 취향은 매우 상대적이다. 어느 게 옳은 것이고, 어느 것이 틀렸다고 할 수 없다.
모든 예술가적 활동이 평론의 대상이 되듯이, 대한민국에서 인간문화재의 활동도 그래지길 바란다. 인간문화재를 절대적 가치를 지닌 존재로만 여기고, 그들의 예술에 관해서 상대적인 평가를 불허하는 것은 잘못이다. 한국의 전통예술이 상대적인 가치와 개인적인 취향을 동시에 더욱 인정할수록, 한국의 전통예술의 동시대성은 구호에만 머물지 않게 된다.
무형문화재와 인간문화재 사이에서, 우려되는 지점이 존재한다. 무형문화재 전승제도 안에 존재하는 전승의 계보만을 인정하는 것이다. 무형문화재의 전승에도 이른바 제도권과 비제도권이 있다. 인간문화재와 어느 정도 연관을 맺으면서 전승에 관여하는 ’제도권‘ 전승자뿐 아니라, 무형문화재의 특정 종목에 대해서 다른 교육체계를 통해서 학습한 ’비제도권‘ 전승자도 존재한다.
제도권 안의 전승자 중에서도 기량이 무척 아쉬운 사람이 있고, 이와 무관한 전승자 중에서도 매우 출중한 기량이 돋보이는 사람이 있다. 이들에 대해서 보다 열린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무형문화재 제도 안의 전승자이건, 무형문화재 제도 밖의 전승자이건, 모두 예술적 차원에서 공평한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
2.
인천시립무용단(윤성주 예술감독)의 기획공연 ‘춤담 – 류파별로 본 살풀이춤 시리즈’(7. 23. 인천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다섯 유파의 춤을 보았다. 이 중에는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종목(이매방류, 김숙자류)이 있고, 시도무형문화재(최선류)가 있다. 최선류는 전라남도무형문화재 ‘호남살풀이춤’의 하나로 지정되어 있다. 한영숙류 살풀이는 여러 사람들에게 의해서 전승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비해서 최현류 살풀이춤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춤이다.
이런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살풀이춤은 ‘무형문화재’이자 ‘무형유산’으로서의 각자와 가치와 매력을 지니고 있다. 이번 공연에 참여한 5인의 무용수는 모두 인천시립무용단 단원으로, 무형문화재 내의 전승과는 모두 무관하다. 무형문화재의 계보에 따르자면, 이들은 모두 ‘비제도권’의 전승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이, ‘제도권’과 ‘비제도권’이라는 이분법은 살풀이춤의 예술적 가치를 무대에서 표현해 내는데 있어서는 하등의 변별적 요소가 되지 않는다. 이번 무대에 오른 5인은 살풀이춤이 가지고 있는 유파(流派)별 특징을 잘 포착했다.
나는 가끔씩 이런 의문을 품는다. 어떤 무형문화재의 경우는, 그 무형문화재의 본질을 잘 전승하기 보다는, 자신보다도 앞선 인간문화재 또는 그 인간문화재의 대를 이은 자신(현재의 인간문화재)에 지나치게 초점이 맞춰진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런 분들의 예술적 활동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금은 타계한 과거의 명창·명인·명무·명고들의 자료를 보다 더 면밀하게 연구해주길 부탁하고 싶다.
이런 안타까움이 있는 현실에서, 이번 무대의 5인은 어떤 면에서는, 최초로 지정된 인간문화재 또는 그 춤을 만든 인물의 예술적인 진면목을 보다 더 부각시키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는 모두 과거의 명무가 남긴 영상자료를 귀중히 다루면서, 그것을 충실하게 재현하려는 노력의 결과라 짐작한다.
3.
살풀이춤에서, 신문 등의 기록에서 가장 먼저 발견되는 건, 한영숙의 할아버지인 한성준에 의해서 시작된 살풀이춤(살푸리춤)이다.
1938년 5월 2일, 부민관 대강당(현,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고전무용대회’는 한성준을 중심으로 한 조선음악무용연구회가 총동원된 공연이었다. 여기서 살풀이춤(살푸리춤)은 한영숙((韓英淑, 1920~1989), 이강선(李剛仙), 장호심(長紅心) 3인이 출연하였는데, 당시 춤의 해설은 이렇다. “조선에 전해오는 풍속을 제재로 하여 웃음과 해학과 통속미가 있는 춤이다. 고전무용과 비교하여 민간에 전해온 춤으로 또한 독특한 묘미가 있다” 1938년 6월 23일, 살풀이춤은 같은 장소에서 또 공연했는데, 그 때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 춤은 가장 통속적인 춤으로 처녀가 수건을 쓰고 흥에 겨워 추는 춤입니다“
지금의 살풀이춤은 여성 독무로 추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선음악무용연구회의 살풀이춤은 3~4인이 추었다. 무엇보다도 지금의 살풀이춤은 한(恨)을 대변하는 춤인데, 그 시절에는 이 춤 안에 웃음 해학 흥이 담겨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대에서의 살풀이춤은 이렇게 시작이 되었으나, 이미 오래전부터 살풀이(춤)은 존재했다. 무속에서 시작된 춤이 자연스럽게 교방을 거쳐서 기방으로 이동했다. 1920년대에 한 기생의 기예를 얘기하면서, ”춤에는 살풀이(국거리) 승무“라는 기록 등 여러 기록이 있다. 이로써 살풀이춤은 이미 100년전 권번(券番)의 기예(技藝)로서 승무와 함께 살풀이춤이 자리 잡았음을 알게 된다.
4.
한영숙流의 신은진
다섯 개의 살풀이춤 중에서, 이번 무대에 가장 먼저 보여진 춤도 ’한영숙流‘. 신은진은 ‘한영숙流’의 ‘여성적(女性的) 단아미(端雅美)’를 잘 표현해냈다. 그동안 한영숙류 태평무에서 호평을 받은 바 있다. 그녀가 한영숙류에 매우 잘 맞는 춤꾼임을 확인한다. 전체적으로 춤의 태(態)가 아름다웠다. 많은 무용수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하다. 신은진의 살풀이춤은 매우 정돈되었으나, 반면 생동감이 약했다. 앞으로 이 유파의 특징을 잘 지키면서도 ‘유연하게 흘러가는’ 느낌을 어떻게 살려내야 할까? 이 무용수에게 던져진 숙제다. 보여지는 춤보다는, 느껴지는 춤을 지향해야 한다.
이매방流의 김도희
‘이매방流’는 남도적(南道的) 농염미(濃艶美)가 특징이다. 이매방류 살풀이춤은 치마저고리에 두루마기를 덧입고, 조바위 또는 남바위의 모자를 쓰게 된다. 김도희는 생전 이매방 명무가 입었던 의상을 재현하며 춤추었다. 과거 남성인 이매방 명무의 이런 살풀이춤 의상은 일반인이 보기에 일반적이지 않을 수도 있었다. 다른 춤에서의 남성춤꾼의 복장과는 사뭇 다르다. 따라서 좀 익숙하지 않은 느낌일 수 있으나, 오히려 여성인 김도희가 이 의상을 입었을 땐 무척 잘 어울렸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개화기 시기의 여성의 느낌이 살아났다. 따라서 의상을 입은 모습만으로도 일단 춤을 살려내고 있다.
김도희는 모든 동작이 진중하면서 기본에 충실한 느낌이 좋았다. 찰진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매방류 특유의 에너지가 잘 느껴졌으면서도, 지나치게 끈적거리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학구적인 진지함이 살아났다고나 할까? 그러나 춤이라는 것이 결국 관객과의 소통을 생각한다면, 김도희는 너무도 자신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앞으로 자신의 진지한 태도를 지켜나가면서도, 어떻게 춤을 통해 관객과 즐겁게 소통할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즐거운 고민을 해야 한다. 때론 다소 과중하게 들어가 있는 몸의 힘을 뺐으면 좋겠다.
김숙자流의 송미록
이번 무대에서 가장 돋보였던 건, 김숙자 流 특유의 ‘무녀적 (巫女的) 일탈미(逸脫美)’를 잘 표출해낸 송미록이다. 욕심 같은 건 애초에 버리고, 김숙자의 춤에 깊게 빠져 있었다.
무형문화재 계보 상으로 볼 때, 김숙자류를 잘 추는 춤꾼은 꽤 있을 거다. 김숙자류 살풀이춤(도살풀이)의 제도권 내에서 볼 때, 송미록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송미록을 매우 인정한다. 1980년대 김숙자 명무의 춤을 보는 것 같았다. 김숙자류는 치마저고리를 입고, 허리에 끈을 질끈 동여매고 춘다. 살풀이춤을 추는 많은 여성 춤꾼이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나 여성성(女性性)을 드러낸다. 김숙자의 살풀이춤, 곧 ‘도살풀이춤’을 추는 춤꾼도 그러한 모습이 많다. 그러나 다른 춤이 여성이 춤을 춘다면, 이 춤은 굿판의 느낌을 잘 살려내야 한다. 그걸 송미록은 잘 알고 있었다.
송미록은 여성성이나 아름다움을 내려놓고, 살풀이춤이 가지고 있는 본질에 맞게 접근했다. ’과감하지만, 과장되지 않는‘ 춤의 수위 조절이 매우 원숙했다. 긴 살풀이천을 움직이는 자연스러운 자신감이 돋보였다. 마지막 긴 살풀이 수건을 두르고 무대 밖으로 사라지는 모습까지 이 춤의 특유의 무속적(巫俗的) 현장성을 살려냈다.
최선流의 김윤서
김윤서의 최선류 살풀이춤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나로서도 다소 모호할 수밖에 없다. 이건 앞의 세 유파의 춤에 비해서, 매우 아쉽게도 무용수가 자신이 이 살풀이춤에 깊이 빠져들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일반적인 여성무용가들을 볼 때에서도, 앞의 세 유파에 비해서 최선류를 잘 아는 무용가는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을 여기서 꼭 밝힐 수 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김윤서의 최선류 살풀이춤은 그 누구보다도 도전적인 의미가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김윤서라는 춤꾼을 응원하고 싶다.
최선류 살풀이춤은 ‘풍류적(風流的) 격조미(格調美)’가 돋보인다. 김윤서에게는 최선류를 탄생시킨 전라도적인 정서가 존재하고 있다. 김윤서는 또한 여러 춤에 대한 적응력이 뛰어나다. 작년 ‘춤담’에서 보여준 송범의 ‘황혼’도 매우 우수했다. 김윤서의 이러한 ‘모방에 의존한 창조성’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김윤서의 춤은 자신에게 체화(体化)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니까 ‘모방을 넘어선 전통성’에는 아쉬움이 있다.
김윤서의 춤은 아직은 깊은 감동을 주기에는 부족한 것이 느껴진다.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 전통무용과 신무용적인 정서가 그 안에 공존한다. 좀 다르게 말한다면, ‘신무용과 전통무용의 중간’에서 다소 모호한 춤을 이어간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이런 두 요소를 자신의 특성으로 삼을 것인지 아니면, 이 두 춤을 매우 분리해서 접근해야 할 것인지는 이 무용수의 선택이자 숙제인 것 같다.
김윤서의 춤이 앞으로 자연스럽게 잘 이어지길 바란다. 춤이 잘 ‘흘러가는’ 느낌보다는, 아직은 외웠던 순서대로 잘 ‘보여주는’ 모습이 들키는 것 같다. 마치 콩클에 참가한 무용수가 다양한 동작을 심사위원에게 보여 주면서 뭔가 어필을 하는 느낌이라면, 나의 주관적인 생각일까?
김윤서의 춤이 아직은 곰삭은 맛이 배어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언젠가 배일 것이라는 가능성이 있다. 그 때 나는 지금의 이런 지적을 흔쾌히 거두어들일 날을 기대한다. 대한민국의 많은 무용수 중에서 최선류에 익숙한 무용수는 많지 않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김윤서는 선방을 했으며, 도전정신에는 박수를 보낸다.
최현流의 임승인
마지막으로 최현류 살풀이춤을 선보였다. 최현은 무용가이자 영화배우였다. 최현이 만든 춤을 보면 남녀노소의 구분이 누구보다 엄밀하며, 그 안에서의 캐릭터가 아주 잘 살아있다.
‘미얄할미’ ‘고풍’ ‘남색 끝동’은 모두 여성춤이나, 춤 속의 여성 화자(話者)는 매우 다르다. 최현류 살풀이춤을 ‘한(恨)’이라고 명명하듯이, 최현은 살풀이춤을 통해서 조선시대의 여성수난사(女性受難史)를 표출한다. 매우 연극적이며, 매우 감정적이다.
연기력이 출중한 임승인은 ‘최현류’ 살풀이춤을 추기에 안성맞춤이다. 가부장 제도 하의 여성의 ‘근원적(根源的) 비애미(悲哀美)를 잘 표현했다. 따라서 한국의 여성사 또는 지난 20세기의 춤에 대한 애정이 큰 나와 같은 평자에겐 임승인은 아주 훌륭한 춤꾼이다.
그러나 세대에 따라서, 입장에 따라서 그녀의 춤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과연 요즘의 젊은 세대들은 임승인의 연극적이고, 감정적인 춤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 춤은 20세기의 사회문화적 맥락과 여성무용의 흐름과 연관해서는 매우 가치가 있다. 그러나 21세기의 무용미학이라거나 한국전통춤의 동시대성적 소통과 관련해서는, 이 시대의 젊은 세대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해진다. 물론 이 또한 개인에 따라서 매우 다른 편차를 보일 것이다.
5.
한국의 전통춤 중에서 승무, 태평무, 살풀이춤이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이런 무형문화재의 지정에 관해서, 시대에 따라서 그 평가는 달라지는 것 같다. 무형문화재 지정만으로 과거에는 무척 반가웠으나, 지금은 꼭 그렇지도 않지 않은가! 체계적인 전승 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잘못하면 특정인과 특정 계보로 쏠릴 위험이 크다. 예술의 미덕 중의 하나가 바로 상대적인 가치의 공존이지 않은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춤의 가치와 취향은 다양할수록 좋다. 어느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매우 경계해야 한다. 이런 한계를 없애기 위해선, 이른바 ’제도권‘과 ’비제도권‘의 조화로운 공존이 매우 절실하다.
이런 현실에서 인천시립무용단이 살풀이춤의 다섯 유파를 가져와서 벌린 춤판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성과가 크다. 살풀이춤이란 과연 무엇인가? 이런 화두(話頭)를 던지면서, 각각의 살풀이춤의 본질에 대해서 파악하려는 자세가 아름다웠다.
무형문화재 등과 연관된 한국의 전통춤이 더욱 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중의 하나가 바로 한국춤에 있어서의 특정한 사람 또는 유파에 쏠리는 ’절대적 가치‘를 지양하고, 다양한 유파와 다양한 사람에 대한 ‘상대적 가치’를 더욱더 인정하는 것이다. 무엇을 지양하고, 무엇을 지향할 것인가는 아주 분명하다. 필요한 것은 각자의 실천적 자세다. 이렇게 될 때, 한국춤의 예술적 스펙트럼은 더욱 넓어지고 깊어질 것이다.
인천시립무용단의 ’류파별로 본 살풀이춤 시리즈‘의 성과는 무엇인가? 전통춤의 가치를 살피면서, 그 본질은 지켜나가면서도 어떻게 다양한 취향을 수렴할 수 있는가? 이에 대한 진지한 질문과 실천적 행보가 돋보였다.
여기에 출연한 다섯 무용수는 앞으로 무형문화재라는 제도권과는 일정 거리를 둘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들이 앞으로 이런 제도권 안에서의 전승과는 별도로, 각자의 살풀이춤이 갖는 정서적 본질과 그에 기반한 유파적인 특성과 가능성을 무대에서 더욱 더 잘 보여줄 것으로 예상한다. 다섯유파의 살풀이춤에 관련해서, ‘익숙하면서도 낯선’ 실력자로서 살풀이춤의 예술적 다변화에 매우 크게 공헌할 것이다. 다섯 유파의 살풀이춤에 심도있게 첫발을 내딛은 다섯 춤꾼을 마음 깊숙이 존중하며, 앞으로도 계속 응원하겠다.
글_ 윤중강(공연평론가)
사진제공_ 인천시립무용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