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SI Dance 폐막작으로 선정된 전인정의 “문 없는 문<Gateles Gate>(10.27, 자유소극장)은 들어갈 수는 있지만 나올 문이 없는 불교의 무문관(無門關)이다. 본성을 깨치고 해탈에 이른 자에게만 무문관은 열린다. 전인정의 ‘문 없는 문’은 어떻게 열릴 수 있을까. 작품에서 제기되고 있는 주제다. 성균관대를 졸업한 전인정은 일본에서 잠깐의 무용수생활을 거친 후 90년대 말 독일로 건너갔다. 뒤셀도르프에 블루 엘레판트 무용단을 창단하고 솔로파티(2008)', '원(2010)', ‘BARA(2011)' 등 현대무용테크닉과 섬세한 한국적 감성을 접목시킨 작품들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전문무용가로서 현지에서 살아남았다. 이러한 그녀에게 문없는 문은 한국과 독일 두 국가 간의 문화적 이질성일까, 아니면 20대 젊은 나이에 발 디딘 후 불혹의 나이가 되도록 벗어날 수 없는 무용가로서의 숙명일까. 무대에 선 그녀의 질문이 심각한 만치 춤은 진지하다.
무대 한 쪽에 호주에서 날아온 재즈드러머 사이먼 바커(Simon Barker)가 자리잡고 있다. 몸 앞에 크고 작은 드럼을 층층이 쌓아놓고 오른 쪽에 통나무 토막, 공중에는 종을 매달았다. 심벌즈와 갖가지 효과음을 낼 수 있는 소리기구들도 알맞게 배치된 가운데 우리 대표 관악기인 대금도 보인다. 우레같이 요란한 소리부터 물방울 돋는 섬세한 소리까지, 번개 치듯 빠른 소리부터 나비의 날갯짓 같은 부드러운 소리까지 다양한 음이 가능할 듯하다. ‘동해안별신굿’에서 한국의 소리를 발견했다는 그는 판소리와 장구 등 우리 전통음악에 재즈를 접목시키는 실험을 계속하는 한편 무용가와의 협업을 통해 춤과 소리의 일체화를 시도하는 듯하다.
긴장된 채 무대로 나아오는 전인정의 작은 몸을 감싸고 있는 옷이 편안해 보인다. 아래 위가 모두 검은색이고 민소매 상의에 헐렁한 바지아랫단을 묶어 풍만감을 부여한 윤숙경의 의상이다. 움직임을 따라 음악이 흐른다. 춤사위가 클 때는 소리도 높아지고 소리가 자지러들면 춤도 가라앉는다. 한 달 동안 리듬을 맞춘 때문인지 춤과 소리는 미세한 부분까지 정교하게 일치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체감은 자연스럽기보다 인위적인 느낌이 강하다. 즉흥적인 춤과 소리가 무언의 교감을 통해 자연스러운 조화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아쉽다. 전인정의 춤사위에서는 도인술(導引術; 복식호흡을 기본으로 하는 중국 전래의 양생술)이나 태극권 투로(套路)에서 따온 듯한 익숙함도 발견된다. 신체 각 부분을 골고루 쓰다듬으며 전후좌우로 느리게 움직이고 선 자세에서 점차로 몸을 낮추더니 결국은 바닥에 누워 손발을 버둥거리다가 이윽고 죽은 듯 자지러든다. 최대한의 인위를 통해 성취되는 것이 무위라는 전인정의 주장이 읽혀지는 장면 들이다.
드러머가 중앙으로 걸어 나와 무용수를 안아들고는 등에다 커다란 꽃송이를 피워낸다. 해탈의 꽃을 피웠으니 이제 자유로워진 것인지 무대 가로 걸어나와 관객과의 대화를 시도한다. 객석을 향한 그녀의 말은 ‘사랑합니다.’, ‘사랑받고 싶어요.’로 시작된다. 갑자기 돌아서 관객을 향해 ‘Fuck' 소리를 연발하기도 한다. 70분의 공연시간 중 처음 60분이 춤이 무문관 속에 갇힌 구도의 과정처럼 어둡고 난해했다면 마지막 10분은 고삐를 놓은 듯 가볍고 자유롭다. 단순하고 어두움 위주의 부분조명을 선호했던 이관형의 조명이 밝아진 것도 무용가의 말문이 트이고 고삐가 풀린 듯 자유로워진 이 때부터다.
풀어 내린 머리를 다시 곱게 감아올리고 전인정은 “나는 아직 그렇게 나이 들지 않았다”고 외쳐본다. 정밀함 속에서 새로운 에너지로 충만한 그녀는 이제 문 없는 문을 열어젖히고 경계를 넘어 새로운 곳으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 그러나 애당초 경계자체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억지로 경계를 만들고 문을 찾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마지막 10분 동안 보여준 것처럼 전인정의 춤이 경계를 의식하지 말고 음악의 굴레에서도 벗어나 타고난 DNA대로 진솔하고 자유로운 자신만의 예술혼을 꽃 피워가기를 바란다.
글_ 이근수 (무용평론가, 경희대 회계학과 명예교수)
사진_ LIG 아트센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