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 선 교단(敎壇) 아래 학생들이 무리지어 앉아있다. 교단(敎壇)이 가르치는 자의 신분을 나타내고 권위를 표출하는 갑(甲)의 상징이라면 교단 아래 학생들은 얻고자 하고, 오르려고 하며, 받고자하는 을(乙)의 자리를 표상한다. 단(壇)을 경계로 신분이 갈리고 가진 자와 가지려는 자가 나뉘며 그 사이에 갈등이 표출되고 변화가 촉발된다. 인간의 내면과 외면도 이와 같을 것이다. 안성수는 이러한 점에 착안한다. 그의 신작인 <단>이 그려내고자 하는 세계는 하늘과 땅이, 남성과 여성이, 서양과 동양이, 그리고 흑과 백, 적(赤)과 청(靑)이 대비되는 세상의 외형이며 인간의 본성이다. 그 외양적 대비를 넘어 중립의 자리에서 갈등을 조화시키고자 하는 힘을 그는 인간심리 혹은 영혼의 존재로 파악하는 듯하다.
작품 <단>(2013.4.10~14 해오름극장)은 국립무용단(예술감독 윤성주)이 현대무용가 안성수를 초청하여 안무를 맡긴 ‘안무가초청프로젝트’의 첫 번째 시험작이다. 국립무용단이 제공하는 무용수 자원과 무대에 현대적 안무를 융합하여 기존 무용장르를 뛰어넘는 예술적 가치를 창조하고자한 의욕적인 시도였다. “2013, 가장 패셔너블한 공연”이란 부제가 붙은 이 작품을 위해 안성수는 패션디자이너 정구호를 무대감독으로 픽업하여 의상과 무대미술을 맡겼다. 음악은 호적 시나위 중 장구와 북, 꽹과리, 태평소 등 국악기와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서곡을 연주하는 서양악기를 번갈아 배치하면서 동서양 음악의 융합을 꾀했다. 동서양의 철학에서 완전체를 구성한다는 3의 숫자를 활용하여 작품전체를 이체동심(異體同心), 자중지난(自中之難), 혼연일체(渾然一體)의 3막으로 구성하고 각 막을 다시 3장으로 구분했다. 남녀 무용수 9명씩을 3개의 단에 배치시킨 공간구성 역시 3의 표현이다. 예술적 표현수단을 통해 철학적 혹은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고 현대와 한국무용의 크로스오버를 통해 새로운 무용미학을 창조하고자 한 안성수의 시도는 충분히 창의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무대미학을 위해 패션디자이너를 영입한 시도는 좋았다. 정구호 의상의 기본 콘셉트를 ‘상체는 최대한 가볍고 밀착되게, 하체는 주름을 넣어 가능한 풍성하게’라고 말한다면 검정과 흰색, 검정과 녹색으로 특징지어지는 색채의 대비는 또 다른 콘셉트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상체의 콘셉트는 가볍다못해 벌거벗은 무용수들의 상체를 드러내기도 한다. 무대 역시 색채의 대비가 두드러진다. 조명이 꺼진 검은 공간에 하얗게 빛나는 형광등이 매달려 있다. 하부에 마련된 가변식 무대는 붉은 색과 녹색조명을 극명하게 대비시키면서 베네통식 원색의 대비를 통해 작품의 볼거리를 제공해준다. 무용작품을 구성하는 개별적 요소만을 볼 때 안성수의 시도는 대부분 성공적이다. 그러나 공연된 작품의 완성도로 볼 때 <단>은 몇 가지 약점을 보여준다. 첫째로 인간의 내면과 외면의 대립을 상정하고 중립적인 심리의 존재로서 갈등을 조화시키고자 한 그의 주제는 지나치게 관념적이다. 그는 인간의 본질, 영혼의 모습을 부각시키기 위해 무용수 각자의 개성을 배제하고 감정이 드러나지 않도록 개성과 표정을 최대한 지워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안무자의 의도는 춤의 자연성 상실과 관객에의 감정이입 차단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3이란 숫자에의 집착역시 작품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제약하고 작위의 틀 안에 작품을 가두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볼 수 있다. 작품의 주제가 복잡한 갈등에서 시작하여 조화와 평정으로 나아간다는 ‘대립에서 조화로’라는 것을 염두에 두었다면 안무자는 주제와 무대미술과의 조화, 국악기와 양악기의 조화, 자연스러운 흐름을 통한 관객과의 소통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하지 않았을까. ‘뛰어난 음악성과 세련된 도시미’로 특징지어지는 안성수 춤의 캐릭터가 새로운 무용미학을 창조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무대미술과 조명기술의 현란한 효과만을 기억에 남긴 채 관객과의 소통점을 상실하고 관객감동을 뒤로했다는 아쉬움을 남긴 작품이었다.
글_ 이근수(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사진_ 국립무용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