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공감, 리서치 등을 통한 언어적 표현이 트렌드인 요즘 이를 반영하는 공연이 2월 22~23일 강동아트센터 소극장 드림에서 안애순 무용단에 의해 <거기 쓰여 있다>라는 제목으로 있었다. 늘 새로운 방향성을 가지고 변화를 추구해 온 안애순무용단은 강동아트센터, 페스티벌 봄과 공동제작으로 일본인 안무가 잔 야마시타를 초청해 이번에도 색다른 무대를 완성했는데, 컨템퍼러리 댄스의 흐름 속에서 어찌 보면 다분히 아날로그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어서 오히려 그 부분이 인상적이다. 이번 작품은 야마시타가 2002년 공연했던 것을 한국의 정서나 언어적 표현에 맞게 재창작했다는 점에서 안무가의 관점을 읽을 수 있었고 무용수들의 기량이나 움직임은 우수했다.
입장과 함께 100페이지에 달하는 책자를 전해 받은 관객들은 호기심 반 걱정 반의 감정을 가지고 관람을 시작했다. 그 이유는 두꺼운 책자에 쓰인 알 수 없는 지시어 혹은 활자화 된 글들이 어떻게 춤으로 표현될 수 있을까라는 호기심 그리고 어렵게 느껴지는 이 작품을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은 무용수들의 신체언어가 맞물리고 정제되지 않은 일상적인 움직임이 더해지면서 현실성을 갖췄고, 언어적 표현과 실제 움직임의 어휘가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동시에 실험적인 요소가 곳곳에 배치되었다. 한상율, 최효선, 윤보애가 펼치는 다양한 모습들은 웃음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저 몸짓이 무엇을 표현하는가라는 생각으로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하기도 했다. 안무가의 생각은 언어와 글로, 움직임은 안애순무용단 특유의 어휘가 충분히 반영되면서 조화를 이뤘다.
실제로 안무자 혹은 무용수가 책의 페이지를 외치면 관객은 그 부분을 펼쳐야 했다. 일정 부분에서 한상률은 관객들이 책에 나열된 단어들 중 몇 개를 선택하게 하고 용어를 몸으로 코믹하게 실연하는 방식을 취했고, 때로는 음향이나 대사만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한 장면에서는 전문 무용수가 아닌 음악가가 일본 지진이 일어났던 3·11이란 숫자에 대한 의미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설명하기도 했고, 이후 안무자는 수화로 행하는 노래를 지휘하기도 했는데, 이는 목소리 부재의 수화는 무용어휘와 크게 벗어나지 않음을 보여주고자 한 듯 했다. 또한 안무자 목소리로 백드롭 영상에 내용이 뜨면 안무가는 열변하듯 대사를 읊어대고 무용수들은 강렬한 움직임을 수반했다. 초반의 가벼운 분위기와 달리 후반부의 주제는 감정을 증폭시켰고, 이후 안무자는 모노드라마를 하듯 소리치기도 하고 땅을 구르며 자신의 의사를 전달했다. 그리고는 조용히 끝을 맺었다. 후반부 페이지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채 여운을 남기는데 그 빈 부분에 상상의 영역이 포함될 수 있겠다.
작품에 있어서 안무가는 스토리텔러로서의 역할, 공간 전체를 총괄하는 주재자, 주체인 동시에 객체인 인물로 존재했다. 이렇게 세 개의 역할을 하면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우리 모두에게 전달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그의 의도가 100% 전달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관객은 관객의 눈높이에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느끼고 인식할 뿐이다. 관객들의 반응은 확연히 양분되었는데 “거기에 쓰여 있는” 의미를 파악하고 공감한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속에서 공통적으로 특별한 감동을 얻기는 힘들었다.
결국 다양한 미학적 관점이 공존하는 현실에서 잔 야마시타 역시 현재 진행형인 그의 작품세계를 그 속에 반영하고 있었다. 그를 선택한 안애순 무용단과 봄 페스티벌의 앞서가는 안목이 또 어떤 세계적 추세를 담은 작품을 소개하고 실연할지는 모르겠으나 관객들의 개안(開眼)까지는 시간을 필요로 했다.
글_ 장지원(무용평론가, 한국춤문화자료원 공동대표)
사진_ 안애순무용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