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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예술’의 ‘예술’로 향한 여정 - 장애인문화예술 지원사업 쇼케이스 무용공연 <관계, 약속하다>, <안녕>


지난 8월 28일 부산문화재단이 2018년부터 진행한 ‘장애인문화예술 지원사업’ 결과를 공유한 쇼케이스 <올과 결>에 두 팀의 무용 공연이 있었다. ‘무브먼트 프로젝트 도로시’(도로시)와 발달장애인 무용수의 <관계, 약속하다>(27분)와 ‘홀딩,턴’과 발달, 지체, 시각, 청각 장애인으로 구성한 <안녕>(33분)이다. 두 작품 모두 장애인 5명과 비장애인 3명이 무용수로 출연했다. 일상 움직임부터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이 자유롭게 춤추기까지 3년은 그리 여유로운 시간이 아니었다. 대상을 선발하고,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의 긴장을 풀고,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할 것을 가려내는 과정에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장애인 예술가·단체의 창작 활동과 문화예술 향유를 지원하는 ‘장애인문화예술 지원사업’은 2018년 당시 사업을 하려는 기관이 없어 부산문화재단이 떠안다시피 맡았다. 선례와 기초 데이터조차 없이 사업을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 장애인 예술 지원 방식을 개척한 선도적 역할을 한 것이다. 무용에서 장애인 예술이 수면 위로 드러난 시기가 다른 장르에 비해 오래지 않아 어려움이 더했다. 무용은 다양한 움직임을 구사하는 특성 때문에 비장애인과 함께하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장애인의 역할이 부분적이며 수동적인 경우가 많고,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기량 차이가 쉽게 드러나 관객이 무의식적으로 비교하게 된다. 기량 차이는 장애인을 비장애인 기준으로 일정 수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설정하기 때문에 발생하는데, 이런 상황을 방지하려면 장애인이 창작을 주도해야 한다. 이번 공연은 비장애인의 역할은 최소화하고 장애인의 잠재된 표현을 끌어내는 데 집중한 점에서 어느 정도 성공적이라 할 수 있다. 

 

 

<관계, 약속하다>, 객석에서 한 명이 걸어 나와 벽에 등을 돌리고 서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친다. 무용수들은 술래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스레 무대로 나온다. 술래가 한 사람을 잡아내면 다른 사람들이 다가가 술래에게 잡힌 친구의 손을 끊고 흩어진다. 무대에 금방 활기가 넘친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인간관계를 닮았다. 놀이의 포인트는 상대의 작은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이다.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서로가 지나치게 가까워져 상대가 내 영역을 건드리면, 관계의 균형이 깨어진다. 그래서 관계에는 암묵적인 약속이 있어야 한다.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서로 약속을 잘 지키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작품 중반부에 남성 2명의 춤은 인간관계의 다양한 양상과 복잡한 심경을 두 사람의 간격 변화와 접촉 방식에 강약을 주면서 담아낸 상징적인 춤이다. <관계, 약속하다>는 군무의 군집 변화로 공간을 환기하고 이미지를 풍성하게 한다. 공연 내내 서로를 배려하면서 감정에 몰두한 결과 장애인, 비장애인의 동작은 균질해졌고, ‘관계’의 ‘약속’은 ‘자신’과 약속으로 환원하고 가족을 향한 다짐이 되기도 했다. 

 

 

<안녕>, 작품이 2/3 정도 진행했을 때 휠체어에서 일어난 장애인 무용수가 지팡이 두 개에 의지해 천천히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와 정면을 바라보고 선다. 지팡이 하나를 바닥에 지탱한 채 작은 원을 그리고 이내 몸을 살짝 굽혀 큰 반원을 그린다. 춤은 일상적 움직임을 넘어서는 손짓, 발짓, 달리기, 도약, 굴신을 포함한다. 이 무용수의 행동은 휠체
어로 움직이던 일상을 벗어난 동작으로 자신만의 춤을 추는 것이다. 몸을 지탱한 막대기 두 개로 사람 人을 만드는 과정에서 비틀거리다 겨우 균형을 잡기도 하는데, 이런 긴장된 장면도 하나의 춤사위가 된다. <안녕>에는 해설이 있다. 해설은 각 장면을 설명하는데, 무용수의 등장, 퇴장, 동선, 감정, 소품, 구도까지 자세히 묘사한다. 해설은 두 가지 기능을 한다. 한 가지는 영화, 드라마 같은 영상물에서 이미 익숙한 시각장애인을 위한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기능이다. ‘홀딩,턴’은 시각, 청각, 지체, 발달 등 여러 유형의 장애인과 함께하면서, 각 장애 유형을 이해하고 하나의 지향점에 도달하기 위한 적합한 방식을 찾는 노력을 했다. 작품에 해설을 넣기로 한 결정은 워크숍 기간의 경험 때문일 것이다. 해설은 작품에 의도하지 않은 의미를 생성했다. 해설이 지시하는 내용과 실제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와 지연이 생길 수밖에 없고, 이는 공간 분위기와 서사에 행간(틈)을 생성해 작품 해석의 지평을 넓고 두텁게 만들었다. 해설이 만든 효과와 별도로 <안녕>의 특징은 장애인 출연자의 요구를 충실하게 반영한 점이다. 출연자 중에 이미 시작(詩作), 하모니카 연주, 연기 등을 하고 있던 이들이 있었고, 공연에서 기량을 보이고 싶어 했다. <안녕>은 이런 개인의 소원을 빠짐없이 수용했다. 존재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부분을 모노드라마 형식으로 표현하고, 하모니카 연주를 반주로 즉흥 춤을 추고, 시 낭송과 어우러진 동작으로 작품에 감성을 더했다. 여러 유형의 장애인과 작업해야 하는 어려움을 오히려 작품의 긍정적 요소로 녹여 내면서, 구성을 흩트리지 않고도 개별성을 살렸다. 

 

 

<관계, 약속하다>와 <안녕>은 장애인이 억제했던 감정을 춤을 통해 표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장애인 움직임을 비장애인 기준에서 조정하려는 의도가 보이지 않았고, 오랜 공감의 시간을 거쳤기에 표현에 어색함이나 가식이 없었다. 이 사업의 기획 의도가 장애인의 창작 활동과 문화예술 향유를 지원한다는 다소 건조하고 일반적이지만, 장애인이 자기 의사나 감정을 표현할 예술적 도구를 갖게 한 것은 기획 의도를 넘어서는 결과이다. ‘장애인 예술’의 최종 목표는 ‘예술’로 인정받는 것이다. 운보 김기창이나 툴루즈 로트레크의 작품을 장애인 예술로 말하지 않고, 베토벤을 장애인 예술가로 부르지 않는다. 예술가 앞에 붙었던 ‘여류’라는 수식어가 사라진 것처럼 ‘장애인 예술(가)’에서 ‘장애인’은 예술 주체를 신체 상태로 분류해 대상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폐기해야 한다. <관계, 약속하다>와 <안녕>은 장애가 춤추는 데 걸림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보임으로써 ‘장애인 예술’이 ‘예술’로 나아갈 여정에 하나의 전형을 제시하였다. 춤출 수 있는 몸이 따로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글_ 이상헌(춤비평가)

사진제공_ 부산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