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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토피아 속에서 유토피아를 찾는 여정 - 이루다 블랙토의 <디스토피아>

ⓒ옥상훈


유토피아를 꿈꾸는 현대인들에게 닥친 환경문제와 질병의 재앙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사회문제에 주목해 디스토피아 속 유토피아를 꿈꾸며 환경문제를 풀어낸 이루다 블랙토의 공연이 2021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의 일환으로 10월 30~31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있었다. 안무자인 이루다는 검은 발끝, 발레슈즈를 뜻하는 이루다 블랙토라는 단체를 만들어 뉴욕 댄스페스티벌 〈Black Bolero〉를 시작으로 크리틱스초이스 우수상, 독일 탄츠테아터 국제안무대회 3등, 최근 여성을 주제로 〈W〉로 한국춤평론가상 작품상을 수상하는 등 최근 발레 분야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성 안무가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이루다의 <디스토피아>는 초연 작품의 더 많은 부분을 보완함으로써 완성도를 높이려는 노력을 보였다. 

 

 

ⓒ옥상훈

이번 작품은 유토피아의 반대개념인 디스토피아를 통해 서로 극한의 대치를 보여주었다. 이루다는 작품에서 안무와 연출, 영상, 사운드디자인, 출연까지 1인 5역을 하며 활약을 펼쳤다. 전반적으로 감각적인 무대연출, 은유성을 담은 오브제, 동시대를 다룬 주제, 이루다 특유의 모던한 움직임이 조화를 이뤄 현대발레의 특성을 잘 갖췄다. 그러나 기존 작품의 러닝타임을 늘리다보니 다소 밀도가 떨어지는 아쉬움과 무용수 간의 호흡이 맞지 않는 부분만 보완하면 좋겠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녀가 이 작품을 통해 주목받는 이유는 자신의 색깔과 주장이 선명하며 발레 특유의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판타지보다는 어둡고 비관적인 전망을 담아 경각심을 일깨우고 인간의 유토피아를 향한 의지를 선명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최랄라

인류가 지구에서 살아남을 시간은 얼마나 남았을까?를 상상하며 이루다는 무대 위 공간 모니터 화면 속에 정해진 시간을 지정해 두었고,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웅장한 레퀴엠 음악 속 무용수들의 춤은 현재와 미래의 암울함을 표현했고, 비닐 인형을 안고 춤추는 남성 솔로에도 나름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대부분 비닐 의상을 사용함에 있어서 미세 플라스틱 문제나 환경오염 문제에서 자주 등장하는 비닐이 은유적으로 쓰이면서 관객들의 이해를 도왔다. 이후 흰 러플 드레스를 입은 여성 솔로는 구름 낀 하늘의 하늘색이 선명한 바닥조명 속에서 발레 움직임에 기반을 두지만 느낌에 충실한 춤을 보여주었다. 그밖에도 2층 베란다 위의 남성이 투명한 비닐 인형을 이리저리 흔들거나 검은 비닐을 씌워 끌어올리기도 하고, 살색 서포트만 입은 여성의 듀엣과 남성의 트리오가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이어서 엔딩에 이르기까지 출연진들(고동훈,김강민, 김다운, 김민송, 손대민, 이규현, 이루다, 이루마, 정민찬, 최낙권, 최정홍)의 강렬한 움직임으로 에너지를 발산한 부분, 선명한 붉은색의 꽃가루의 분출, 머리 위 전광판의 숫자가 0에서 정지하는 등 여러 의미심장한 장면들이 연출되었다.    

 

 ⓒ옥상훈

 

전체적으로 <디스토피아>는 여러 형태로 등장하는 비닐이라는 오브제 자체에 의미를 두고 이를 적절하게 활용했으며 무용수들 역시 어두운 현실과 인간으로서의 미래를 향한 절박한 의지를 진솔하게 그려냈다. 안무자의 의도는 본인이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만큼 1인 5역의 이루다는 무용수로서, 연출자로서 충실히 자신의 목표를 이루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특별히 그녀 특유의 응집되어 있다가 강렬하게 분출되는 에너지와 고전과 현대를 오가는 변화무쌍한 움직임 어휘가 서사 없이 주제를 표현함에 있어서 강력한 힘을 발휘한 작품이었다. 

 

글_ 장지원(무용평론가)

사진제공_ 이루다 블랙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