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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은 어디로부터 와서 무엇이 되는가 - 콜렉티브에이 <원형하는 몸: round 2>

 

  차진엽 안무의 <원형하는 몸: round 2>가 지난 12월 23일부터 26일까지 플랫폼엘 플랫폼 라이브에서 공연되었다. 2020년 10월 파라다이스 아트랩 페스티벌에서 첫 선을 보인 <원형하는 몸: round 1>에 이은 두 번째 버전이다. <round 1>은 초연 이후 같은 해 12월 LDP무용단 20주년 정기공연 무대에 다시 올려졌고, 이듬해인 2021년 5월 문체부가 주최한 ‘2021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의 개막 공연으로 온라인에서, 7월에는 광주문화예술회관 소극장에서 열린 ‘11시 음악산책’ 무대에서, 그리고 11월에는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공연되며 일 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무려 다섯 차례에 이르는 부지런한 무대 사이클을 소화해냈다. 하늘극장 공연으로 <round 1>을 일단락 지은 차진엽은 한 달여의 간격을 두고 <round 2>에 돌입해 새로운 몸의 이야기를 펼쳐가기 시작했다.

 


 

  <round 1>이 물의 속성에 집중해 움직이는 몸과 생명의 근원을 탐구했다면 <round 2>에서는 생명의 가장 작은 단위인 세포를 파고들어 생명이 어디로부터 와서 무엇으로 진화해 가는지 탐색한다. 두 가지 버전은 별개의 작품으로 각각의 완결성을 지니고 있지만 작품을 이어서 관람한다면 생명의 진화가 몸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안무가의 생각을 따라가는 흥미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두 공연 사이의 시차가 불과 한 달 남짓인 이유도 이 흥미로운 경험을 권장하기 위해서인지 모른다. 관객들이 첫 번째 버전의 잔상이 기억에서 사라지기 전에 두 번째 버전을 이어 관람한다면 안무가와 함께 물의 입자에서 세포로, 최종적으로는 몸에 도달하는 사유의 여정에 동참하게 될 테니까.

 

  물의 입자에서 출발해 움직이는 몸을 거쳐 삶으로 이행한 <round 1>과 달리 <round 2>의 출발점은 살아 있는 몸이다. 공연은 비어 있는 무대의 흰 벽 위에 짚신벌레가 꿈틀거리는 영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광학현미경으로 몇 십 혹은 몇 백 배 확대된 관찰 영상 속에서 단세포의 원생생물들은 수축포를 통해 수분이나 노폐물을 몸 밖으로 배출하고 섬모를 움직여 이동한다. 이 같은 대사작용이나 움직임은 벌레들의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것으로, 이때 ‘살아 있음’과 ‘몸’은 분리되지 않는다. 몸은 살아 있음 그 자체다. 움직이는 몸으로 물을 건너야 삶에 도달할 수 있었던 <round 1>과는 다른 출발이자 다른 경로다.

 


 

  관객들이 영상에 몰입해 있는 동안 무대에 등장한 무용수들의 움직임도 영상 속 벌레들의 그것을 닮았다. 검은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이 무대에 띄엄띄엄 흩어져 납작 엎드린 채 배를 밀며 이동하는 모습은 방금 전까지 보고 있던 영상 속에서 벌레들이 빠져나온 듯하다. 무용수들은 몸을 일으킨 뒤에도 서로 몸을 얽거나 접촉해 움직임을 만들거나 대형을 이루어 움직임을 수행하는데, 이 모습 역시 벌레들의 거대한 이동 혹은 대사처럼 보인다.

 

  <round 1>에서는 거울을 통해 한 명의 움직임을 군무의 움직임으로 보이도록 하는 착시를 일으켰다면 <round 2>에서는 렌즈를 사용해 몸의 크기를 왜곡하는 착시를 일으킨다. 차진엽과 유수경은 무대에서 따로따로 움직이지만 곽유하가 비추는 렌즈를 통해 그들의 움직임은 2인무가 된다. 이 2인무는 착시에 의한 것으로, 무용수와 짝을 이루어 춤을 추는 것은 무대 벽에 비친 다른 무용수의 커다란 그림자다. 또한 무대 한쪽에는 작은 아크릴 박스가 놓여 있고 그 안에는 역시 아크릴로 된 몇 개의 직사각형 구조물이 세워져 있는데, 곽유하의 렌즈에 비친 이 작은 구조물은 커다란 빌딩처럼 보이고 그 빌딩 사이를 커다란 몸이 이리저리 누비는 것 같다. 자연 속(실제로는 실험용 슬라이드 글라스 안이겠지만)에 있던 벌레의 몸은 어느새 복잡한 세포로 이루어진 사람의 몸이 되어 도시 한복판에 떨어지기라도 한 것일까. 

 


 

  두 버전 모두 공연 중반부에 일어나는 이 착시의 과정은 매우 중요한데, <round 1>에서는 삶으로 이동하기 위한 통로가 되고 <round 2>에서는 이 과정을 거쳐야 마지막 단계인 죽음에 도달할 수 있다. 사람의 몸을 얻은 무용수(차진엽)는 이제 몸의 부위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도달한 지점은 두피에서 흘러내린 머리카락이나 피부에서 떨어져나간 각질 같은, 몸을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들이다. 가장 작은 벌레의 살아 있는 몸에서 출발한 여정은 몸을 가진 사람을 거쳐 그 사람의 몸에서 탈각한 세포들에서 끝난다. 죽음으로 마무리된 것이다. 

 

  안무가가 ‘원형하는 몸’을 통해 보여준 것은 삶에서 죽음에 이르는 몸의 여정이며, 삶에 도달한 <round 1>과 죽음으로 향하는 <round 2>를 이어 봐야 하는 이유가 이로써 설득력을 얻는다. 두 버전이 두 개의 분리된 작품이 아니라 하나의 작품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다음 공연에서는 두 버전이 통합된 세 번째 버전을 보게 될까. 아마도 우리가 알아온 차진엽이라면 앞서와는 다른 형태의 순환으로 관객들을 데려갈 것이다. 그러니 그가 앞으로 펼쳐 보일 몸과 삶과 죽음의 순환을 담담히 기다리면 될 것이다.

 

 

글_ 윤단우(무용칼럼니스트)

사진제공_ 콜렉티브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