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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임의 탄생에서 춤이 되기까지: 유빈댄스 <감각자료>


안무가 이나현이 이끄는 유빈댄스의 신작 <감각자료>가 지난 9월 14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올려졌다. 올해로 26회째를 맞이한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와의 공동기획이다. 무용수들의 신체와 신체의 유기적인 연결을 통해 새로운 움직임을 선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이나현의 2021년 작 〈16〉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

<감각자료>에서 이나현은 다음의 네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춤의 철학적 규명을 위해 춤이 춤이기를 거부하는 아이러니를 반복해야 하는가?

무용을 위해 춤을 추지 말아야 하는가?

안무와 춤은 서로를 배제해야 하는가?

춤을 설명하기 위해 춤을 밀어내고 다른 무언가를 끌어와야 하는가?



나는 지난 6월 국립현대무용단 기획공연으로 선보인 뭎(Mu:p)의 신작 <캐스케이드 패시지>의 공연 리뷰에서 “공연을 펼치는 공간이 프로시니엄 무대 바깥으로 확장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창작자들의 관심은 이제 그동안 극장 무대에 걸맞은 것으로 인정되어 온 움직임을 완성도 있게 구현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창작자들은 그러한 움직임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움직임의 경계를 허물고 그 범위를 확장하는 데 보다 집중하고 있다”라고 썼다.


그러면서 이를 컨템포러리 무용 창작의 한 경향성이라고 짚었는데, 이나현의 <감각자료>는 이러한 경향성과는 완벽히 대척점에 있는 작품이다. <감각자료>에서 몸은 춤추기 위해 존재하며, 그 외의 것들은 모두 부수적인 요소들이다.



춤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나현은 몸과 몸의 연결에서 새로운 움직임을 찾아내는 데 능한 안무가다. 그는 어떤 특정한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메시지를 다듬거나 움직임을 통해 서사를 전개해가는 것보다 서로 다른 두 개의(혹은 그 이상의) 몸이 만났을 때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인가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작업을 해왔는데, <감각자료> 역시 연결된 몸으로부터 어떤 움직임이 나와 춤으로 발전해가는지 한눈에 보여주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감각자료>는 무대에 몸선이 그대로 드러나는 언더 차림의 무용수들이 한 덩어리로 뒤엉켜 있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무용수들은 단세포 동물이 분열되는 것처럼 몸의 덩어리에서 떨어져 나와 하나의 개인이 되었다가, 다시 두 명에서 세 명, 세 명에서 네 명, 네 명에서 여덟 명 등으로 숫자를 늘려가며 움직임을 전개해간다.

 

무대 뒷벽 전체에 스크린을 설치해 보여주는 영상은 시각적인 스펙터클로 압도적인 무대를 만들어낸다. 영상 속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무대 위에서 무용수들이 펼쳐내는 움직임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영상은 이 움직임이 어디서 발원했는지 보여주려는 듯 근육의 미세하고도 섬세한 움직임을 클로즈업으로 담아내며, 영상과 무대로 이어지는 움직임은 손끝에서 시작되어 감각의 시원과 연결의 의미를 함께 보여준다. 감각적이고 미니멀한 사운드 디자인은 그러한 영상과 무대 위 움직임에 리듬감을 더한다.



무용수가 두 명에서 네 명으로 늘어날 때까지만 해도 몸과 몸이 서로 접촉하고 연결되면서 각자의 움직임을 찾아가는 듯하더니, 여덟 명에서 아홉 명으로 무용수의 숫자가 배로 늘어나자 연결된 몸이 만들어내는 유기적이고 구조적인 안무로 움직임의 형태도 변화한다. 의상 또한 언더에서 버건디색, 홍매색, 청회색 등 각각의 색감이 살아 있는 바지로 바뀌었다가 마지막 군무에서 다시 언더로 돌아오는 변화를 보인다.


이 같은 움직임과 의상의 변화는 〈16〉의 작업을 설명하며 이나현이 “무용수들은 각각 우리 몸속의 살아 있는 세포들과 같이 각기 다른 생명을 갖고 있지만 하나로 연결되어 새로운 생명체로서의 역할을 한다”고 말했던 것과 유사한 맥락 위에 있다. 이 과정은 춤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이나현의 고민이 응축된 질문이며, 움직임의 탄생이 어떻게 춤으로 발전해갔는지 춤의 역사를 보여주는 듯하다.


무대 위에 펼쳐지는 이러한 춤의 역사는 몸을 가진 인간이 움직임을 차곡차곡 누적한 춤의 보편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안무가 이나현이라는 개인의 특수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후자의 렌즈로 본다면 <감각자료>는 이나현이 자신의 안무 출발점으로 삼는 초기작 〈Below the Surface〉에서 그의 안무작 중 가장 많은 인원이 출연하는 〈16〉에 이르기까지 이나현의 안무사(史)를 축약해놓은 듯하다. 움직임의 발원지를 찾아가는 이나현의 탐색은 <감각자료> 이후 어떤 무대로 이어질지, 다음 무대가 더욱 궁금해진다.




글_ 윤단우(공연칼럼니스트)

사진제공_ 크림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