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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인물에 대한 재해석으로 빚어낸 컨템포러리 발레의 고전: 몬테카를로발레단 <로미오와 줄리엣>


안무가 장크리스토프 마요가 이끄는 몬테카를로발레단이 <로미오와 줄리엣>(10.13.-15,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으로 4년 만에 내한했다. 안무가와 단체, 작품 모두 발레 관객들에게 매우 친숙한 이름이지만 단체의 내한은 이번이 고작 세 번째로, <로미오와 줄리엣>을 선보이는 건 심지어 이번이 처음이다. 2005년 첫 내한과 2019년 14년 만에 이루어진 두 번째 내한 무대 모두 <신데렐라>를 선보였다.


내한 공연은 의외로 적은 편이지만 마요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2000년대 이후의 한국 발레 무대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국립발레단은 2000년 이 작품을 초연한 뒤 2002년에는 몬테카를로의 주역 베르니스 코피에테르와 크리스 롤랑을 객원 주역으로 초청해 재연을 올렸다. 이후 2011년부터 2013년까지 3년 연속 공연했고, 2020년에도 공연 계획을 세웠으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취소되었다.

 

발레 무대가 성장하며 그동안 국내에서는 마요 외에도 여러 안무가들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올려졌다. 강수진을 앞세운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이 존 크랑코의 안무작으로 1994년과 2008년 두 차례 한국을 찾았고, 국립발레단은 마요 외에도 유리 그리가로비치의 안무 버전을 2008년 공연했다. 유니버설발레단은 2002년 올레그 비노그라도프 버전을 선보인 뒤 2012년과 16년에는 케네스 맥밀런의 작품으로 레퍼토리를 확장했다. 독일에서 활동 중인 허용순의 작품도 2017년(광주시립발레단)과 2022년(대한민국발레축제) 두 차례에 걸쳐 공연되었다. 이처럼 다양한 <로미오와 줄리엣> 가운데 마요의 안무작은 한국에서 가장 많이 공연된 레퍼토리다.



무능한 메신저 로렌스 신부


<로미오와 줄리엣>을 가장 쉽게 읽는 방법은 원수 가문 출신 두 젊은이가 빠져든 사랑의 격랑이 어떻게 파국으로 달려가는지, 그 파국을 향한 속도와 낙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좀 더 면밀히 살펴본다면 이 작품이 한 인간의 무능과 실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결말이 이미 정해진 이야기에 가정법은 의미 없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은 로렌스 신부가 조금만 더 유능했더라면 해피엔딩으로 끝났을지도 모를 일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사랑에 빠졌고, 그 사랑이 결혼까지 생각하는 진지한 것임을 알게 된 로렌스는 이들의 사랑이 원수 가문의 화해를 이끌어낼 수도 있겠다는 희망에 부풀어 둘의 결혼을 주재한다. 로렌스는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티볼트를 죽이고 절망에 빠져 있는 로미오에게 추방지에서 말썽을 부리지 않고 조용히 지내고 있으면 줄리엣과의 결혼을 공표해 군주에게 사면을 청하겠다고 달래고, 티볼트가 죽은 뒤 줄리엣이 더욱 강압적으로 결혼에 대한 강요를 받게 되자 결혼을 회피할 수 있도록 가사(假死) 상태로 만들어주는 독약을 건네준다.


그러나 플랜B가 없는 로렌스의 계획은 돌발 상황이 일어났을 때 대처가 전혀 되지 않는다는 약점이 있었다. 그가 줄리엣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전하기 위해 로미오에게 보낸 메신저가 발이 묶인 사이 로미오는 줄리엣의 죽음을 사실로 받아들인 채 베로나로 돌아오고, 가사 상태로 장례식을 치른 줄리엣은 로미오가 자결한 뒤에나 깨어난다. 로렌스는 남은 줄리엣만이라도 구하려 하지만 줄리엣은 홀로 살아남는 것을 거부하고 로미오의 뒤를 따른다. 로렌스가 바라던 두 가문의 화해는 젊은이들의 결혼이 아니라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이루어진다.

 

마요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재해석에 도전한 후대의 창작자 가운데 이 로렌스 신부를 가장 입체적으로 구현한 안무가다. 마요는 원작을 발레 무대로 옮기며 원작보다 비중이 축소된 조연이 되기 일쑤였던 로렌스를 극을 이끌어가는 화자로 다시 세우고 있는데, 대사는 없지만 창극에서 장면과 장면을 잇는 도창과 비슷한 역할이라 볼 수 있다. 로렌스가 두 복사(服事)와 함께 등장하는 첫 장면은 앞으로 일어날 비극에 대한 예고편으로, 원작에서는 극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 해설자가 등장해 베로나의 두 원수 가문과 가문의 연인들에게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요약해 전달한다.



극의 외부인인 도창이나 해설자가 극 내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해 철저히 관조자로 머무르는 데 비해 마요의 로렌스는 비극에 직접 개입하는 내부인이라는 차이점을 갖는다. 그는 비극을 예고하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그 비극 앞에서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에 좌절하며 괴로워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겪는 비극은 로렌스의 고뇌라는 렌즈를 거치며 더욱 증폭된다.


그러나 로미오와 줄리엣을 비롯한 다른 등장인물들이 극중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과 달리 로렌스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결혼식을 주재할 때 외에는 자신의 삶이란 것이 없는 비극의 예고자로서만 존재한다. 그렇기에 로렌스와 다른 등장인물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막 같은 것이 존재하며, 줄리엣 외의 인물과는 거의 눈을 맞추지도 않는다(국립발레단에서 로렌스 신부 역을 맡았던 이영철은 로렌스가 줄리엣을 사랑하는 연출적 의도가 있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움직임의 질감 또한 다르게 표현된다.


안무가 김용걸은 로렌스 신부에 대한 이 같은 마요의 해석에 영감을 받아 지난해 대한민국발레축제에서 로렌스를 주인공으로 한 단편작 <로렌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줄리엣과 캐퓰릿 부인, 여성들의 이야기


로렌스가 화자로 극을 이끌어가는 중심인물이라면 극 내부에서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중심인물은 줄리엣과 캐퓰릿 부인이다(로미오와 줄리엣이 아니라). 마요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무대의 어느 지점에 렌즈를 가져다대느냐에 따라 상이한 이야기를 읽어낼 수 있는 흥미로운 텍스트로, 상술한 것과 같이 로렌스의 무능과 실패의 이야기로도, 로렌스와 줄리엣의 사랑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버전이 근 30여 년 동안 400회 이상 공연되며 10여 개 발레단의 레퍼토리로 자리잡은 근본적인 저력은 줄리엣과 캐퓰릿 부인이라는 두 여성 캐릭터의 매력에 있다. 마요는 “‘로미오와 줄리엣’은 저의 신앙고백과도 같다”며 “이 발레에서 제 작품의 본질을 뒷받침하는 모든 것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마요가 재탄생시킨 줄리엣과 캐퓰릿 부인은 발레 무대 여성 인물들의 전형적인 상을 한 뼘씩 늘려 무용수들에게 운신의 폭을 넓혀준 중요한 캐릭터들이다.


줄리엣은 원작에서도 (비록 독백이긴 했지만) 로미오에 대한 사랑을 먼저 고백하고, 결혼 의사를 피력하는 적극적인 여성으로 그려지는데, 마요는 이러한 줄리엣의 적극성을 좀 더 강화한다. 줄리엣은 무도회에서 만난 로미오에게 먼저 키스하고, 티볼트를 죽인 로미오의 뺨을 때리며 분노를 표현한다. 아직 인형을 가지고 노는 어린 소녀로 묘사되는 다른 버전과 달리 마요의 줄리엣은 유모 앞에서 이렇게 성숙한 여성이 되었다는 듯이 가슴을 드러내 보이기까지 한다.


각색에서 줄리엣의 아버지 캐퓰릿이 사라지며 캐퓰릿의 가부장 역할까지 부여받고 있는 캐퓰릿 부인은 딸에게 원치 않는 결혼을 강요하는 권위적인 가부장인 동시에 조카와 은밀한 사랑에 빠져 있는 한 여성이기도 하다. 조카 티볼트가 무도회에 참석한 영애들에게 간보듯 가볍게 플러팅하고 다니는 데 비해 티볼트를 단속하는 캐퓰릿 부인의 감정은 좀 더 진지하고 무거워 보인다. 티볼트가 광장에서 벌어진 결투로 목숨을 잃자 캐퓰릿은 정숙한 귀부인의 품위도 잊은 듯 머리를 풀고 등장해 온몸으로 슬픔을 표현한다. 캐퓰릿 부인이 공연 내내 검은색 의상을 입고 등장하는 것은 상중(喪中)임을 표현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처음 등장했을 때는 남편이 죽었다는 것을, 티볼트가 죽은 뒤에는 연인을 잃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마요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현재 몬테카를로발레단 트레이너인 베르니스 코피에테르를 빼고선 말할 수 없다. 마요의 강인한 줄리엣은 코피에테르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는데, 180센티미터에 달하는 큰 키로 로미오를 압도하는 숏컷 헤어의 줄리엣은 당시 발레 무대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여주인공상이었다.



코피에테르가 은퇴하고 나서 마요의 줄리엣은 그가 보여주던 강인한 신체의 전사 같은 여성상에서 벗어난 캐릭터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뒤를 이어 줄리엣을 연기하는 무용수들은 길고 시원시원한 움직임으로 자신들의 줄리엣을 새롭게 창조하고 있다. 필자가 관람한 13일 공연의 카트린 슈레더 역시 활기차고 적극적인 줄리엣을 만들어내는 민첩한 움직임이 돋보였다.


마요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초연을 선보인 것이 1996년, 3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작품은 어느덧 컨템포러리의 고전이 되었다. 작품은 세월의 무게를 견디며 견고해졌지만 동시에 창작자의 낡은 성 인식을 드러내는 창구가 되었다. 마요가 유머코드로 즐겨 사용하는 인물들의 성적 유희는 더 이상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성희롱이다.


로미오의 친구들인 머큐쇼와 벤볼리오는 로미오를 만나기 위해 광장으로 나온 줄리엣의 유모에게 가슴과 엉덩이를 만지는 성추행을 하며 즐거워한다. 줄리엣이 유모 앞에서 맨가슴을 보여주는 장면도 성숙한 여성이라는 기호를 가슴으로 표현해야 했는지 의문이 남는다. 이 작품이 컨템포러리의 고전으로 새로운 정전(正傳)이 되고자 한다면 이 같은 장치들에 대해서도 현대인의 의식 수준에 뒤처지지 않도록 손질이 필요할 것이다.



글_ 윤단우(공연칼럼니스트)

사진제공_ 라보라예술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