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포스트코리아
지난자료보기

로고

무용리뷰

공연비평

인간관계론으로 거듭난 물리적 유희: 김기범 <올려다본 내려다본>

 

ⓒ최태연

 

전통문화의 다양한 요소를 모티프로 창작한 많은 시도가 있다. 거기서 중요한 것은 창작춤이나 현대춤 혹은 최근 주목받는 신전통춤 같은 춤의 영역 구분이 아니다. 눈여겨 볼 것은 고착된 전통의 의미를 새롭고 흥미로운 오늘의 것으로 재현하는 데 있다. 하지만 본래의 속성을 보전하면서도 시대정신에 맞는 담론을 유도하는 작업은 녹록한 것이 아니다. 이는 적지 않은 전통의 재해석 작업이 기존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울남산국악당의 청년 예술가 창작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무대에 오른 김기범 안무의 <올려다본 내려다본> 역시 이런 과제를 안고 출발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민속놀이인 ‘널뛰기’를 모티프로 하지만, 도약과 낙하의 수직적이고 역동적인 유희를 벗어나 수평의 균형에서 새로운 역학관계를 조명한다. 특히 기존의 널뛰기와 재해석한 널뛰기의 접점에서 공통점을 발견해낸 것이 인상적이다. 그것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회의 인간관계와 균형에 관한 것이고, 이는 현대사회의 속성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의미의 확장까지 이뤄낸다.

  

ⓒ최태연

 

‘널뛰기’란 굳이 해석할 것도 없이 단순한 민속놀이다. 중앙에 말린 멍석더미를 중심으로 널의 양 끝에서 두 사람이 번갈아가며 도약을 하는 형식이다. 점점 더 높이를 더해가는 도약의 역동성이 시각적인 쾌감을 제공한다. 또 널뛰기는 상대의 즐거움을 위해 나의 헌신이 필요하고 다음 순간에 그 즐거움이 나에게 곧바로 돌아오는 ‘기브 앤 테이크’의 철학도 담겨 있다. 그 단순하고 명료한 호혜(互惠) 관계의 쾌감이 널뛰기를 즐기게 하는 원동력이다. 하지만 이는 현대에서도 동일한 의미로 인식돼왔기에 이에 대한 해석의 폭은 대체로 좁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 작품은 그런 ‘역동적인 퍼포먼스’로 고착된 널뛰기의 미학에 의문을 제기한 결과물이다. 그 시작은 널뛰기라는 물리적인 현상에 대한 근본적인 고찰이다. 널뛰기의 근본은 역동적인 도약이지만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김기범은 이 부분에 주목한다. 일단 널뛰기는 두 사람이 서로의 무게를 이용해야 하는 놀이다. 또한 두 사람만 필요한 게 아니라 무게 중심을 맞춰주고 안전을 보조해줄 인력도 필요하다. 결국 널뛰기는 높은 도약이라는 쾌(快)의 경지를 이루기 위해 상대방의 양보(발구르기)와 중심추, 보조자 등 다양한 협조를 전제로 한다. 이러한 속성에서 김기범은 시대를 넘어 이어지고 있는 인간관계의 축소판으로 널뛰기를 재발견한다. 본능을 자극하는 경쾌한 도약과 낙하의 유희는 이런 과정을 통해 사회의 알레고리로 치환된다.

  

ⓒ최태연

 

작품이 예의 상하운동의 쾌로 단도직입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신 널과 멍석을 해체하고 고찰해 기존의 놀이를 재구성하려 한다. 공연의 전반부에 널은 공중에서 투명한 선에 묶인 채 내려와 새로운 유희의 도구로서 출발함을 암시한다. 널을 내려놓은 다음에도 춤꾼들은 이를 밟고 뛰는 대신 그 주변을 서성이거나 멍석을 뒤집어쓴 채 다양한 군상을 표현한다. 수직운동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각자의 무게를 이용한 널 위의 균형 놀이와 어깨춤으로 이어지는 수평적 행보는 기존 널뛰기와 확실한 선을 긋는다. 급기야 들어 올린 널과 뒤이어 등장한 또 하나의 널로 조형된 다른 놀이가 재현되기도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기존의 단순한 널뛰기는 새로운 ‘널놀이’로 확실하게 확장된다. 


이러한 <올려다본 내려다본>의 차별화는 근본적으로 널의 용도를 다르게 바라보는 데서 비롯한다. 즉 짚단 위에 올린 널의 형태는 발을 굴러 뛰는 두 사람의 모습을 반사적으로 연상시키지만, 작품은 이러한 ‘널뛰기 공연’의 관성을 끝내 따라가지 않는다. 오히려 수직운동의 고정관념을 배제하고 수평과 균형의 표현에만 집중하며 ‘뛰기’의 스펙터클을 기대한 관객들을 무색하게 한다. ‘언젠가는 뛰어오를 것’이라는 관객의 기대감에 부응하지 않고 뚝심 있게 이어간 널뛰기의 재해석은 기어이 인간관계에 대한 통찰로 수렴한다. 공연의 마지막에야 등장하는 몇 차례의 널뛰기에 객석에서는 참았던 환호성이 터졌지만, 이마저도 서툴게 발을 헛딛는 장면으로 마무리하는 연출은 마냥 순조롭지만은 않은 오늘날의 관계와 소통의 단면을 인상적으로 담아낸다.

  

ⓒ최태연

 


                                                             글_ 송준호(춤평론가)

                                                             사진제공_ 서울남산국악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