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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비평

거기에 이애주가 있었다. 거기에 이애주는 없었다: ‘다시 천명(天明), 춤의 길’

‘다시 천명(天命), 춤의 길’이란 제목이었다. 고(故) 이애주 명인의 춤 세계를 재조명하는 자리였다. 이애주한국전통춤회와 이애주춤·장단연구회가 출연했다. 두 단체에 소속된 사람은 누군가? 생전 이애주 문하에서 춤을 중심으로 한국의 전통을 오래도록 학습한 사람들이다. 춤에 대한 진정성과 숙련도를 전제로 해서, 무대에서 높은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들이란 점도 확실히 밝힌다. 그러함에도…




불편하고, 불편하다


2023년 5월 9일, 경기아트센터 소극장에서 이 춤판을 바라보는 나는 편치 않았다. 왜 그랬을까? 긴 승무(완판 승무)를 볼 수 있는 귀한 자리였다.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승무 보유자 이애주 명인의 완판 승무는 그동안 무대에서 자주 선보이지 않았었다. 이애주의 스승인 한영숙의 춤에 충실하면서 이어진 ‘살풀이춤’도 함께 했다. 


‘태평춤’도 선보였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현장에서, 이애주가 민중의 죽음을 달래준 진혼의 춤이다. 1980년대의 이애주는 이와 연관된 춤을 여러 현장에서 계속 추었다. 당시 이애주의 이러한 춤을 ‘시국춤’이라고 불렀다. 비유컨대, 백기완은 연설로, 이애주는 춤으로, 부당한 세상에 항거하면서, 민중들의 역량을 결집한 거다. 이애주 자신은 ‘바람맞이춤’이라 불렀다. 이른바 ‘시국춤’ 안에도, 한국전통춤의 계보가 존재한다. ‘태평춤’은 한성준· 한영숙 선생의 태평무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여기에 ‘바람맞이춤’의 춤사위를 창조적으로 재구성한 춤이다. 


이 세 개의 무대를 지켜보면서, 나는 불편하고 또 불편했다. 2023년 5월 초에 본 공연을 두 달이나 지나서 7월초에 이렇게 리뷰를 쓴다. 나는 그동안 리뷰를 쓰기 힘들었다. 이애주 명인의 2주기를 준비하면서 애쓴 무대 위 춤꾼 모두에게 결국 상처가 될 글을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 두 달 동안, 나는 내 기억 속의 이애주춤을 계속 불러냈다. 혹시 내가 쓴 글이 너무도 내 주관에 치우친 글이 아닐까 싶어서 그랬다. 두 달의 시간은 내게는 매우 귀중했다. 이 기간 동안 이애주 명인이 살아계셨을 때보다도 더 집중해서 마음으로 이애주의 춤을 귀하게 영접(迎接)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는 동안 이제 이렇게 글을 써야한다는 확고한 신념이 생겼다. 


이애주 명인의 2주기와 연관된 이 공연엔, 이애주가 있었다. 이애주가 있었다는 건 무엇을 말하는 걸까? 이애주의 춤을 잇는 사람들의 ‘진정성’이 존재했고, 그들은 이애주의 춤을 충실히 재연(再演)하려 했다.




“내 안에 이애주 있다”

 

반면 여기엔 이애주 또는 이애주춤이 없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이애주 춤의 외형성은 존재했어도, 이애주 춤의 내용성이 약했다. ‘진정성’과 ‘내용성’은 다르나, 여기서는 구구하게 설명하려 하지 않겠다. “이애주에게 수년간 교육을 받았다고 해서, 그걸 모두 이애주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것이 내가 이 공연을 지켜보면서 불편한 상태에게 계속 들었던 의문이다. 


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려 한다. 그들 각각의 춤 속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모두 ‘내 안에 이애주 있다’라는 태도로 춤을 추는 듯 보였다. 이것은 이애주춤을 계승하는 입장에선 당연할지 모르나, 내게는 그런 태도가 느껴지면 느껴질수록, ‘저건 이애주춤이 아니다’란 생각이 더욱더 들게 됐다. 나아가 이애주를 저렇게 재연한다는 건 제자로서의 의무이고, 스스로 의미일지는 모르나, ‘실제(實際) 이애주’의 춤을 너무도 보고 싶은 입장에서는, 이애주춤과의 ‘실재적(實在的) 거리감’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무대 위의 춤꾼들에게는 이애주와 연관된 무용적인 적통(嫡統)임을 증명하는 자리일 수 있겠으나, 이것을 뛰어넘어서 또 다른 ‘숭고한’ 가치를 발견하기 힘들었다. 


특히 내가 보기 힘든 춤은 ‘태평춤’이었다. 이 춤이야말로 ‘이애주’와 ‘1980년대’가 결합되어서 만든 춤이다. 따라서 더욱더 ‘이애주적(的)’ 진정성이 중요하다. 내 눈에 비친 모습은 이보다는 딱 재현성(再現性)이었다. 이애주가 아닌 사람에게서, 이애주적인 삶과 예술을 느끼게 하는 일종의 강요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도저히 지울 수가 없었다. 나는 앞으로 이번 무대에 섰던 춤꾼뿐 아니라, 또 다른 춤꾼이 추었다손 치더라도, 이런 생각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1995년 8월, 텔레비전에서 무용가 최승희의 삶을 다룬 드라마가 방영되었다. 광복 50주년 특집드라마 ‘최승희’에서 배우 채시라가 최승희 역할을 했고, 춤을 재연했다. 나는 이 때를 생각했다. 그 때는 그런 춤을 보는 게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흥미로웠다. “저건 최승희가 아니다. 저건 배우가 하는 거다.” “배우가 저렇게 열연하는 모습을 통해서, 최승희 춤의 ‘진짜’ 모습을 상상하게 해주니 참으로 의미가 있구나” 그 때 들었던 생각이다. 그러나 이번은 전혀 달랐다. “저건 이애주가 아니다. 저건 다른 춤꾼이 하는 거다”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 뿐더러, 그런 태도로 보는 걸 무대의 춤꾼이 원치 않는 것으로 보였다. 


비단 이 순서뿐만이 아니다. 내가 이번 춤판을 보면서 힘들었던 건, 모두가 자신의 안에 ’이애주‘를 불러들이려 했던 모습들이다. 저마다 자신이 이애주춤을 보다 더 잘 재연하려고 하고 있다고 여기는 건, 내가 지나치게 과한 것일까? 내 눈에는 그리 보였다. 



이애주와의 객관적 거리감 


그런데 여기서도 또한 아이러니가 존재했다. 오히려 어떤 춤꾼들에게서 느껴지는 ’이애주와의 객관적 거리감‘이었다. “이애주가 아닌 사람이 왜 이애주가 되려 애쓰고 있지?” 이런 마음이 들었던 상태에서도, 어떤 춤꾼을 보니 그에게서는 오히려 얼굴에서 이애주의 모습 또는 이애주 특유의 표정이 읽혀졌다. 그가 이번 춤판에서는 내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바로 저런 것이구나! 모두 다 이애주가 되려고 공연 등을 하면서 노력을 하지만, 이애주와의 객관적인 거리감을 두고 결코 자신은 이애주가 될 수 없다는 태도로 접근을 하니, 저런 모습으로 춤을 추는구나! 어쩌면 그가 누구인지는, 내가 이 글에서 실명(實名)을 거론하지 않아도, 그 춤판을 깊숙이 들여다 본 사람은 대개 같은 생각일 것이란 생각도 한다. 


이애주춤의 순서를 틀리지 않고, 이애주춤을 잘 추려는 의식이 팽배할수록 그건 이애주춤이 아니다. 생전 나는 방송과 공연을 통해서 이애주춤과 연관된 적이 적잖았다. 그 때 마다 느낀 게 있다. 이애주는 분명 명무(名舞)라는 타이틀로 불리는 훌륭한 춤꾼이지만, 내가 관련된 무대에서 이애주 선생님이 이른바 춤의 순서를 정확하게 지킨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 날 솔직한 내 심정은, 저기 저 무대 위의 춤을 좀 줄이면서, 우리가 생전에 춘 이애주춤을 좀 더 깊이 바라봤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이애주 사후(死後), 이애주춤과 관련된 자리에선 늘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이런 생각이 들게 된다. 




이애주, 백기완에 가까운가? 함석헌에 가까운가? 


이 날, 이애주 공연장에는 많은 사람이 와 있었다. 여기서 나는 백기완을 떠올렸다. 1980년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모두 백기완과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연결된 분도 많았다. 객석에 앉아있는 많은 사람들! 그 누구보다도 한국 근현대사의 격랑(激浪), 그 거센 파도를 헤쳐 온 그들이 대단했다. 많은 사람의 의식 속에 존재하는 ’이애주 춤‘ 또는 ’태평춤‘ 또는 ’시국춤‘은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은 달라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돌이켜보니, 이애주는 비유컨대 백기완이라기 보다는, 함석헌에 더 가까웠다. 이애주를 함석헌과 연관해 생각해 볼 때, 이애주춤의 넓이와 깊이는 달라질 수 있다. 또한 그런 자세로 ’태평춤‘을 추게 된다면, 지금과 같은 모습의 ’태평춤‘이 아닌, 보다 초연하고 초탈하면서도 역사의식이 충만한 ’태평춤‘이 무대에서 재연(再演)내지 재현(再現)될 것이고, 그것이 진정한 이애주춤의 계승(繼承)이 아닌가 싶다. 

  

여러 불편함을 뒤로 하면서, 내가 이글을 쓰는 목적은 이제 이 문장들에 있지 않나 싶다. 이애주는 격랑(激浪)의 세월을 살아왔고, 그 ‘거센 파도’를 때론 ‘거센 파도’와 같은 춤으로 맞섰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이애주의 춤은 달라졌다. 이애주춤은 어쩌면 그런 격랑, 거센 파도를 잠재우는 만파식적(萬波息笛)과 같은 춤이 되려 했는지 모른다. 내가 앞으로 무대에서 이애주춤을 재연하는 춤꾼들에게 바라는 것도 딱 이것이다. 


‘씨알의 소리’가 있다면, ‘씨알의 몸짓’이 있지 않을까. ‘씨알의 사위’가 있지 않을까. 두 달간의 불편함을 이제 뒤로 하면서, 나는 이제 이애주의 춤을 백기완과 같은 ‘운동’의 차원이 아닌, 함석헌과 같은 ‘사상’의 차원으로 옮겨 놓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게 어리석은 우공이산(愚公移山)일지라도. 이 글을 쓰는 2023년 7월, 함석헌 선생의 이 글을 떠올린다. 이애주춤 또는 앞으로 이애주춤의 계승이 이런 차원으로 승화되길 간절히 바란다. 


주님은 참이시어 / 참 맘에만 오신다니 / 참 맘이 어디 있나?

주님은 겸손하셔 / 낮은 데만 오신다니 / 낮은 맘이 어디 있나?

내 맘은 더러워 / 추한대로 여오니 / 참인 님 오십소서!


  

글_ 윤중강(공연평론가)

사진제공_ 이애주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