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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미는 안무가인가? 과도함은, 과감함이 아니다!: 서도와 은미 <만병통치樂>

 

ⓒ서울문화재단 대학로극장 쿼드·BAKi

 

안은미와 관련해서, 대한민국에서 글 쓰는 사람은 두 부류다. ‘파격과 도발’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한 쪽은 저널리즘이다. 다른 한쪽을 아카데미즘이라 해야 할까? 그러한 글에 안은미를 등장시키는 의도는 순수할까? ‘아방가르드 안은미’를 전방위로 내세우지만, 인문적인 기반과 예술적 기반을 두루 충족시키는 글을 쓰고 있음을 은근 자랑하려는 태도가 결국 드러난다. 포스트모더니즘과 페미니즘을 장착(裝着)한 그녀가 대한민국에서 지금 탈 장르 및 탈 경계의 아티스트로 맹활약하고 있음을 부각한다. 

 

‘파격과 도발’이란 단어를 안은미에게 적용한 건 언제부터일까? 1992년 MBC창작무용경연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은 때였다. 당시의 안은미에겐 ‘파격과 도발’을 붙일 만하다. 그녀와 같은 유형의 현대춤 댄서가 당시엔 없었다. 토플리스(Topless)를 생각조차 못했던 시절, 상반신에 꽃을 그려 넣은 바디 페인팅으로 무대에 등장한 그녀는 매우 파격이었다. 


당시 안은미는 안무자로서도 인정을 받았다. 안은미의 다음 행보는 도미(渡美)였다. 실력을 쌓아가는 과정이기도 했지만, 관심을 지속시키는 수순(手順)이기도 했다. ‘춤을 보여주는’ 춤꾼 안은미보다, ‘말로 설명하는’ 인터뷰이 안은미로 특화(特化)돼져 버렸다. ‘노출의 안은미’는 ‘매스컴 노출’도 적절히 활용했다. 미국 동료가 자신을 ‘크레이지 걸, 은미’라고 부른다는 걸 스스로가 알렸다. 당시 현대춤을 추는 자신은 어쩌면 ‘현대판 무당’일 거라는 등 궁금증 유발도 잘해나갔다. 그 땐 안은미에게 많은 걸 기대하던 시절이었다. 안은미가 남다른 건 분명하기에 더 그랬다.


파격과 도발! 그 시절의 안은미에겐 맞고, 지금의 안은미는 아니다! 파격에는 이유가 있어야 하고, 도발에선 원인이 찾아져야 한다. 안은미의 춤은 유감스럽게도 그녀가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와 원인이 전도(顚倒)되면서 희석(稀釋)된지 꽤 됐다. 예나 이제나 설정은 매우 분명하지만, 안타깝게도 설정 자체에서 끝난다는 얘기도 가능해진다. 그런 설정은 ‘춤언어’라고 말하기조차 좀 곤란하다지만, 그것에 기표는 있을지언정, 기의는 모호하다. 


‘은미표 퍼포먼스’는 이미 관습화 내지 브랜드화되어 버렸다. 현명한 안은미가 스스로 그걸 몰랐겠는가? 이걸 극복하거나 무마(撫摩)하려는 노력과 시도가 있긴 했다. 여기서 저기서, 또 이렇게 저렇게, 색다르게 구성한 응원군(커뮤니티)을 ‘아방가르드 안은미’의 존재감을 유지하기 위해서 전방위에 배치하기도 했다.

  

ⓒ서울문화재단 대학로극장 쿼드·BAKi

  

파격과 도발?


30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거기에 존재하는 안은미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자. 안은미는 왜 당시 파격과 도발을 선택했을까? 안은미의 전략은 괜찮았다. ‘넘버 원’이 될 수 없는 상황에서, ‘온리 원’을 택한 거다. 예나 이제나 안은미의 현명한 지략(智略)은 인정해줘야 한다. 


그러함에도 지금의 안은미에까지 계속 ‘파격과 도발’이란 수식을 하는 건 진짜 아니다. 파격과 도발이란 단어 자체에 대한 진의(眞意)적 측면에서도 일단 그렇다. 무엇보다도 안은미 이후(以後) 진정으로 파격과 도발을 통해서 ‘춤’ 또는 ‘현대춤’의 새 판을 구축해보려는 젊은 춤꾼에 대해서 매우 죄송스런 표현이다. 젊은 춤꾼, 그들은 아마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춤판에서의 ‘바람직한’ 파격과 도발은, 춤판을 구성하는 다른 비주얼적인 요소에 있는 게 아니다. ‘춤 자체’를 통해서 그래야 한다.


무대에 오른 ‘막춤’이 어찌 파격이요 도발일 수 있겠는가? ‘해프닝적 퍼포먼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무대에서 소통되는 ‘춤언어’로서의 가치를 지니기 위해선, 또 다른 단계, 더 좋은 방식으로의 변이(變移)가 요구된다. 


연극과 비교해보자. 연극은 일상의 말을 바탕으로 하는 게 분명하지만, 일상의 말을 그대로 무대에 올렸다고 그게 연극은 아니지 않는가? 일상의 언어를 무차별적으로 배치해보자. 그런 ‘막말’이 연극일 수 있는가! 그런 연극에 ‘말의 인류학’ 운운할 수 있겠는가! 


춤이라고 하기 어려운 것을 날 것 그대로 무대에 올리는 것에 큰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그걸 주조로 한 공연에 ‘춤의 인류학’ 또는 ‘몸의 인류학’이라고 이름 부치는 건 나가도 훨씬 나갔고 틀려도 너무 틀렸다.


안은미와 같이 그간 다소 천착(舛錯)하게 보였던 것의 가치를 재인식하면서, 그것으로 소통했던 세대들에 대해서 애정과 연민을 보내는 것에 대해서, 나 또한 매우 긍정적이다. 그러나 노스텔지어(연민)와 레트로(복고)를 적절하게 융합시키면서 세대별 또는 성별의 ‘감성 공략’에 성공한 공연이라고 해서 ‘몸의 인류학’으로 확대하는 건 너무 부풀린 건 아닌가?   


‘몸의 인류학’은 누구에게 부칠 수 있는가.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몸을 인식하면서, 그 몸을 통해서 세상을 향해서 새로운 메시지를 만들어내는 사람에게 부칠 수 있다. ‘춤의 인류학’은 어떨 때 합당한 찬사인가. 이전 시대의 춤언어와 지금 시대의 춤언어의 차이성을 인식하면서, 그렇게 변화시키게 만든 동인(動因)을 찾아내려는 사람에게 부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춤이라는 존재가치’를 통해서 역사와 사회에 대해서 천착(穿鑿)하려는 사람에게 ‘춤의 인류학’이런 말이 합당하지 않겠는가. 


안은미와 관련한 모든 저널리즘이 그러하고, 공연계와 비평계의 종사자들마저 ‘파격과 도발’은 남발하지만, 이건 이미 안은미에겐 시효가 지나도 훨씬 지난 표현이다. 어쩌면 현명한 안은미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다른 말들을 찾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안은미 작품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단어는 무엇일까? 안은미를 ‘부추겨’ 올리지도 말고, 안은미를 ‘깍아서’ 내리는 것도 아닌, 안은미에게 가장 적절한 단어는 무엇인가. 그건 키치(Kitsch)와 위트(Wit)다.

  

ⓒ서울문화재단 대학로극장 쿼드·BAKi

 

은미는 복도 많지


안은미는 복도 많다! 안은미가 ‘무엇을 하든’, 안은미가 ‘어떻게 하든’, 저널리즘은 안은미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손바닥 뜨겁게 박수 쳐 줄 준비가 되어 있는 ‘충성도 높은 팬’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조금 말을 바꿔보자. 실제 안은미는 매우 다양하게 ‘무엇을’ 했을까? 여러방식으로 다르게 ‘어떻게’ 해보려고 했을까? 안은미는 춤꾼이다. 안은미는 안무가이다. 오직 ‘몸’과 ‘춤’으로 안은미를 진단해보자. 그러면 실제의 답, 현재의 결론이 나온다. 


우리는 왜 늘 안은미가 ‘무언가를’ 다르게 하고, ‘어떻게든’ 새롭게 하고 있다고 생각(착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건 우리가 안은미의 ‘비주얼적인 측면에서의 현란함’에 현혹된 거다. 난, 지금 여기서 안은미를 비난하는 게 아니다. 안은미의 탁월한 능력과 현명한 수완을 정확히 밝혀내고 있는 거다. 그러면서 이제부턴 안은미를 제대로 자리매김해보자는 얘기다. 내가 이 글을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이거다.

 

“안은미는 능수능란(能手能爛)한 안무가가 아니다. 용의주도(用意周到)한 기획가이다.”


다른 것을 생각지 말고, 오직 안은미의 춤(움직임)만을 떠올려보자. 안은미 공연에서의 춤만을 따로 떼어놓고 생각해보자. 안은미의 공연에서는 의외로 ‘춤’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그래서 틀렸거나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우리가 확실하게 인지해야 할 사실은, 안은미와 관련한 공연에선 ‘안무’라고 당당하게 이름을 붙여줄 만한 것이 얼마만큼 존재할까? ‘팩트 체크’ 차원에선 꼭 필요하다. 


안은미의 공연에선 안무라 붙이길 주저하게 되는 춤은 존재한다. 그건 주로 현란한 자극일수는 있어도, 속 깊은 감동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안은미 자신은 오직 재미를 추구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재미는 어떻게 출발하고, 감동은 어떻게 전달되는가? 재미와 감동은 어떻게 다른가?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결국은 고민의 양과 고민의 질에 따라서 결정된다. 


그의 춤에선 어떤 고민을 발견하기 어렵다. 동서고금의 남다른 예술가와 뛰어난 작품은 어느 정도의 고통을 기반으로 해서 탄생한다!  안은미의 춤이 그렇다곤 생각지 않는다. 그래서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그렇다는 걸 같이 점검해보자는 얘기다. 그러하기에 난 피나 바우쉬(1940-2009)와 안은미를 결코 동일 선상에 놓을 수 없다. 피나는 ‘감동’을 주고, 은미는 ‘재미’를 준다. 


“피나는 안무가이고, 은미는 기획가이다.” 안무(按舞, choreography)란 무엇인가? 사전적 풀이는 이렇게 ‘일련의 움직임을 디자인하는 예술로, 이 움직임 안에서 운동이나 형태가 규정된다’고 풀이되어 있다. 언제부터였을까? ‘은하철도 000’에서도 그러했을까? 그 때는 아니었을 것 같다. 언제부턴가 ‘안무가 사라진’ 안은미 작품의 행간에서, 그녀가 이렇게 말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가져다 써. 그래도 괜찮아.”


안은미 공연엔 가져온 게 참 많다. 그래서 어떻다는 게 아니다. 그렇다는 걸, 정확히 알자는 거다. <만병통치樂>(7.7.-9., 대학로극장 쿼드)의 서도밴드의 보컬(리더)의 등장을 떠올리자. ‘드랙퀸 쇼‘의 문법을 그대로 가져왔다. 1990년쯤 이태원 ‘여보여보클럽’에서 했던 걸, 2023년 대학로극장 쿼드로 옮겨 온 거다. 이게 파격인가? 이게 도발인가? 이건 재미다. 대한민국의 보편적 사람들을 향한 색다른 재미다. 


안은미의 작품 <바리>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이희문이었다. 성인 남성임에도 소년성과 여성성이 묘하게 내재해 있는 이희문에게서, ‘바리’의 캐릭터를 끄집어낸 안은미의 기획적, 연출적 능력에 감사한다. 이희문팬으로서 그렇다. 나는 서도밴드의 팬이기도 하다. 


안은미는 대한민국에서 주목 받는 ‘코스튬 퍼포머’이다. 안은미를 규정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표현이 바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코스튬 퍼포머이다. 그의 이런 태도는 자신의 작품에 출연하는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서도와 은미>에선 어떠했나? 안은미는 왜 ‘서도’를 하리수처럼 보이게 하는 걸까? 


안은미에게 묻고 싶다. 복장도착을 통해서 얻어지는(?) 가치는 무엇인가? 그것이 <서도와 은미>라는 공연과 서도밴드의 보컬에겐 어떤 의미부여가 가능할까? 이제 더 이상 식상할 때로 식상했고, 사고의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 ‘젠더’ 운운은 제발 하지 말아주길 바란다.


ⓒ서울문화재단 대학로극장 쿼드·BAKi 


“섞어서 써. 그래야 먹힌다.”


“예술이 고민을 먹고 사는 것이라면, 안은미는 컨셉을 먹고 산다.” 안은미에게 있어서 컨셉은 곧 공연이다. 안은미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작품의 행간에서 이런 얘기가 또 들린다. “섞어서 써, 그래야 먹힌다” 이건 일찍이 안은미의 전매특허인지도 모르겠다. 


안은미는 과거 일반인 또는 아티스트가 ‘못’ 하던 걸 했다. 그런 안은미에게 박수를 보냈다. 요즘의 안은미를 보면, 지금의 일반적인 아티스트가 ‘안’ 하려 하는 걸, ‘안은미라는 이름으로’ ‘안은미라는 브랜드로’ 과감하게 ‘해버리고 마는’ 경향이 있다. 


안은미와 연관해서 작품에서의 ‘과감함’과 ‘과도함’을 엄격하게 구분 지을 필요가 있다. 저널리즘에 소속하건, 아카데미즘을 표방하건 간에, 스스로 글쟁이 또는 오피니언 리더라고 자부하는 이들이여! 대한민국 문화예술 또는 공연예술과 관련한 생태계에서, 모두가 형평성있게 존재하면서 공존하길 바라는 사람이여 명심하라. 안은미의 작품에 대해서 그간에 반복되었던 관습과 타성, 외부에서의 찬사와 인용을 뒤로 하고 냉철하게 그녀가 만든 작품을 바라보자. ‘과감함’과 ‘과도함’을 잣대로 삼아서, 저울추가 어느 쪽으로 훨씬 기울어지고 있는지 확인하라.

 

그녀에게 아직도 과감함이 남아있거나, 그녀가 이제 새롭게 과감함에 도전을 한다면, 크게 박수치면서 그야말로 고무(鼓舞)해야 한다. 그러나 반면에 과감함처럼 보이나 실제는 그게 과도함이라면 엄중하게 바라보면서 경종(警鐘)을 울려줄 필요가 있다. 그게 안은미와 안은미 작품을 위한 일이다.


안은미 작품을 보면서 ‘정서(情緖)적 과도(過度)함’은 취향의 차이라는 이름으로 용인될 수 있을지 모르나, 그의 공연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요소들의 ‘가져옴’과 ‘섞어 씀’은 엄중하고 냉정하게 바라볼 시점에 당도했음을 절감한다. 바라건대 차기작 <여자야 여자야>에서 진정성이 있는 깊은 감동이 전달되길 바란다.


안은미가 ‘가져왔던 것’이, 그저 날 것 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선 안은미가 ‘섞어 놓은 것’이 <여자야 여자야>라는 공연의 지향점과 작품의 내용성 속에서 정교하고 치열하게 용해되어 존재하길 바란다. ‘정서적 과도함’을 넘어선 ‘정치(精緻)한 과감함’을 경험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 때는 ‘못’했고, 지금은 ‘안’한다.


예전의 안은미는 그 시절의 우리가 ‘못’ 하는 걸 했다. 그런 과감함이 오늘의 안은미를 존재케 했다. 그러나 오늘날 안은미의 일련의 작업을 보면, 그것은 우리가 결코 ‘못’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우리가 ‘안’ 하려는 것이 있다. 먼저 시작한 사람에 대한 ‘예의의 차원’으로, 조금 부족하지만 진정성이 충만한 부류에 대한 ‘예우의 차원’으로, 함께 가고 있는 사람들과의 예술생태계를 바람직하게 조성하기 위한 ‘공존의 차원’으로, ‘못’하기도 하고, ‘안’하기도 하는 것들이 참 많다. 가져가 쓰는 게 석연치 않고, 섞어서 쓰는 게 찝찝한 ‘도덕적’ 또는 ‘합목적적’ 아티스트들이 꽤 많다.


안은미는 언제부터 설치미술가였을까? 안은미가 설치미술과 관련한 것에 관해서 딴지를 거는 건 아니다. 안은미의 춤 작업을 대한민국의 저널리즘에서 ‘파격과 도발’이라고 했다면, 안은미의 미술작업은 저널리즘에선 이젠 뭐라고 할까? 안은미를 위한 가장 우호적인 키워드는 ‘모방과 해석’이라고 할까? 그래도 안은미의 춤은 처음엔 신선했지만, 안은미의 설치작업은 내겐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불과 최정화를 떠올리게 한다. 다행이랄까? 구르는 돌이 박힌 돌을 뽑아내지는 못할 것 같다.


하지만 자신이 존재하는 공간을 모두 ‘클럽화’ 시키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안은미이기에, 대한민국의 전시공간을 몇 년간 ‘클럽’으로 바꾸는 ‘즐거운 유행’은 탈 것 같다. 그리고 미술관의 큐레이터와 매스컴의 저널리스트는 ‘새로운 얘깃거리’를 찾았기에 얼마간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질 것이다.

  

ⓒ서울문화재단 대학로극장 쿼드·BAKi

 

앙드레 김과 안은미, 닮아도 참 많이 닮았다.


안은미를 이렇게 돌이켜보며, 앙드레 김과 참 닮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앙드레 김에게 디자이너, 안은미에게 안무가란 칭호가 따라다니지만, 앙드레 김이나 안은미는 모두 ‘기획자’라고 하는 편이 더 맞다. 이미 기획에서 ‘쇼’의 80-90%가 다 나오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실상 ‘업계’가 인정하는 사람은 아니다. 업계가 거부한 것인지, 그들이 거부한 것인지, 서로 그런 것인지는 모르나, 앙드레 김을 서울패션위크 같은 곳에서 만난 적은 없고, 안은미도 춤페스티벌에서 만난 기억은 적다.


두 사람의 가장 큰 공통점은 무얼까? 저널리즘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점이다. 저널리즘이 만들어낸 키워드는 힘을 발휘했고, 그런 키워드는 재생산되거나 재변형되었다. 이런 것들이 대중들에게 인지도를 높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 다른 얘기를 해볼까? 앙드레 김의 패션쇼에는 ‘시즌’을 적용하기가 어렵다, 해가 바뀌어도 실제적으로 작품은 바뀌지 않는다. 이게 좋다는 얘기도 아니고, 나쁘다는 얘기도 아니다. 앙드레 김이 그렇듯이, 실제 안은미의 작품이 매우 흡사하다는 얘기다. 


앙드레 김의 패션쇼의 공식은 이미 알 것이다. 그럼 무엇이 바뀔까? 사람이 바뀐다. 패션모델에서 영화배우와 같은 유명인으로 바뀌고, 그러다가 스포츠 스타로 바뀌고 때론 외교사절로 바뀌기도 했다. 앙드레 김이 그런 것처럼, 안은미도 실제 그런 것을 인지했는가? 전문무용수뿐 아니라 할머니, 아저씨를 등장시켰고, 북한춤까지 연관되었다. 앙드레 김이 북한의상을 다룬 적은 없지만, 북한어린이기금모금 패션쇼를 개최한 것은 있다. 


그들의 이런 일련의 작업은 ‘국위선양’과 같은 것이어서, 한국과 어떤 나라와의 수교 등 연관행사에, 과거 앙드레 김은 패션쇼로 참여를 했던 것처럼, 지금의 안은미가 춤으로 그런 비슷한 역할을 해나가고 있다.


반면 앙드레김과 안은미의 취향과 지향은 무척 다른데, 이 또한 두 사람이 아직까지도 확실하다는 점이다. 앙드레 김은 ‘오페라 아리아’를 안은미는 ‘한국 가요’를 자신의 쇼에 잘 활용한다. 앙드레 김이 청담동, 압구정동 지향이라면, 안은미는 이태원, 보광동 지향이다.  


이번 <서도와 은미> 공연은 한국의 여성디바의 노래를 중심으로 전개했는데, 비슷한 유형의 공연이 이미 오래 전에 있었다.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다. 안은미와 오래 함께 하고 있는 이희문, 안이호, 정은혜가 출연을 했다. 그들은 직접 노래를 라이브로 불렀다. 


앙드레 김의 공연에서의 메인모델이 때론 장동건에서 이서진으로 트랜드와 대중적 인지도에 따라 변하듯이, 안은미의 이번 공연에선 이희문과 같은 비중이 서도로 바뀌었음을 주목할 만 하다.


이렇게 ‘얼개’는 똑같고, ‘사람’만 바뀌면서, 그 안에서 많은 것을 늘어놓으면서 관객을 쉴 틈없이 잘 즐기게 (놀게)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매우 비슷하다. ‘본성과 의미에 의거(依據)한 철학적 사유’보다는, ‘타성과 재미에 의존(依存)한 미학’을 표방한다는 점에서도, 앙드레 김과 안은미는 닮아도 참 많이 닮았다.


이러하기에 둘 다 “눈요기가 많은 버라이어티쇼”로서 만족도가 높다. 반면 안은미에게선 ‘몸과 춤’, 앙드레 김에게선 ‘몸과 옷’의 상호관련성이 다른 작가에 비해서 다소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안은미는 아직도 자신을 ‘현대판 무당’이라고 생각할까? 선무당이 사람을 잡을 순 있다. 그것이 선무당의 능력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선무당에겐 갈수록 흥미를 잃게 되는 건 사실이다. 우리는 안은미와 같은 무당에게 즐겁게 속아줄 수 있는 자세를 갖추고 있다. 안은미라는 무당에게 재밌는 공수를 받을 준비가 되어있다. 안은미에겐 무당과 같은 카리스마가 있는 건 사실이다.


무당은 자신을 찾아온 사람을 향한 ‘설정’은 다를지언정, 그들과 자신을 엮어가는 ‘과정’은 비슷하다. 레벨이 낮은 무당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속임을 당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레벨이 높은 무당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지금 속아주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그래서 레벨이 높은 무당은 ‘그들(고객)을 위하여’ 자신이 어떻게 하면 더 그럴듯이 보일까 연구하면서 스스로 채워나간다.


장터에서 약장수가 만병통치약이라고 광고를 할 때, 그 약이 만병통치약이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약장수가 오면 즐거운 볼거리가 있다는 걸 믿기에 사람들이 오는 것이고, 그 약의 효과를 ‘속는 셈치고’ 약을 구매하는 거다. <만병통치樂>이라고 제목 부친 공연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60세 때 기막힌 춤을 출거에요. 물질에 얽매여 황폐해져가는 사람들에게 한 줄기 정화수가 될 수 있는 그런 멋진 춤을 말입니다. 가만히 서 있는데도 천 가지의 아름다운 변화가 느껴지는 춤을 추고 싶습니다." (1996. 9. 7. 경향신문) 


안은미가 자신의 춤이 정화수(井華水)와 같길 바라던 때가 있었다. 안은미는 지금도 비슷한 생각을 품고 있을까? 



                                         글_ 윤중강(공연평론가)

                                      사진제공_ 서울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