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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리뷰

공연비평

현대로 소환된 그 이름이여!: <지워진 이름 정여립–여립(汝立)>

지역문화의 발전과 특히 지역무용의 활성화를 위한 방안으로 특정지역의 역사, 설화, 전설, 인물 등을 탐구해 공연으로 올리는 경우가 많고, 무용은 대중들에게 정서적 공감을 얻기 쉬운 장르이다. 그래서인지 지역을 대표하는 인물을 표면화시켜 작업하거나 재조명하는 작업이 빈번하지만 성공적인 결과를 내놓기란 쉽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물과 작업에 주의를 기울여 살펴볼만한 무대가 있었다.


정여립은 누구인가? 역사 속 인물로 들어본 듯하지만 깊게 각인되지 않은 그에 대해 성찰하며 7월 16일 정읍사예술회관에서 <지워진 이름 정여립–여립(汝立)> 무료공연이 있었다. 공연은 전북문화재단의 무대제작지원사업 & 역사 해설이 있는 공연으로 지원을 받아 이뤄졌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파사무용단(예술감독 황미숙)에 의해 공연된 이 작품은 황미숙 안무가의 무용 50년을 기념한 또 하나의 의미를 담고 있어서 그 긴 여정에 한 획을 그었다. 황미숙은 많은 작품을 통해 실력을 인정받으면서 서울무용제 대상, 안무가상, 올해의 무용가상, 이사도라 예술상, 환경부장관상, 아름다운 시선상과 무용연기상, 코파나스상 등을 수상했다. 그 수상여부와는 상관없이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녀의 현대무용에 대한 열정과 끈기이다. 50여 년간 쉬지않고 활동하며 현재의 위치를 완성하고 파사무용단을 이끌어왔기 때문이다.



<지워진 이름 정여립–여립(汝立)>은 전주출신의 혁명가이자 개혁의 지식인으로 재조명되고 있는 정여립의 사상과 활동의 가치를 현대무용과 역사해설을 함께 구성하여 보다 다양한 관객들과 조우하길 의도했다. 이는 전북의 인물 발굴과 재조명이라는 문화사업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기본골조는 정여립의 일대기, 역사적 사건 속 왜곡된 정치적 가치, 정여립 개인의 고뇌 등을 현대무용을 비롯해 명창의 노래와 태권무와의 조화를 통해 실감나게 그려냈고 서사를 따르기보다는 강조할 부분들을 집중조명해 작품과 인물에 대한 이해와 몰입도를 더했다.


작품에 있어서 안무가는 특정 메시지를 담았다기보다는 정여립이라는 인물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불평등과 차별의 세상을 바꿔보고자 온몸으로 현실에 부딪혔던 그, 자신의 영달을 쫓지 않고 사회의 모순을 고민했던 그를 통해 그의 정신이 이 시대에 온전히 복원되기를 바라는 사회성 짙은 무대였다. 이를 적절히 구현하기 위해 조주현이 탄탄하게 연출과 대본을 맡았고, 파사무용단은 정여립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김종석의 웅장한 규모의 무대, 민천홍의 화려한 무대의상, 서양 악기와 동양적 선율의 조화, 황정남과 황종량이 작화(원화와 동화)로 표현한 영상과 조명 등에도 심혈을 기울여 밀도를 높였다.



구체적으로 첫 시작에는 웅장한 풍경이 펼쳐지고 그 샤막이 걷히면서 황미경이 등장해 역사해설로 포문을 열며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뒤이어 고뇌하는 햄릿형 인간으로서 동학사상의 근간이 된 대동사상을 통해 한국 민주주의를 정립하려 한 역사적 인물인 정여립의 이야기가 솔로로 진지하게 펼쳐진다. 드라마틱한 표정과 움직임은 그를 전북을 대표하는 주요 역사 인물로 재평가하고 전북의 역사를 도민들에게 다시금 일깨워 주는데 일조했다.


뒤이어 춤을 통해 올바른 역사인식을 심어주고 지역사회의 인물을 오늘로 되살려 살펴봄으로써 우리에게 친근하고도 살갑게 느껴지도록 장면들을 구성했다. 특히 명창의 소리와 자연스럽게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현대무용의 움직임이 조화를 이뤄 볼거리, 들을 거리 둘을 모두 만족시키며 잘 구현되었다. 이에 더해 작품의 퀄리티는 무용수들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적인 느낌을 주면서도 현대적인 춤어휘로 능숙하게 춤추는 정여립과 그 주변 인물들의 춤이 완성도에 크게 기여했다.


또 한 가지 K-Culture의 일환으로 백의(白衣)의 태권무를 더한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일사분란하고 절도있으며 역동적인 태권무 군무를 통해 대동단결하는 민중의 모습이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자칫 발레의 디베르티스망처럼 볼거리로 그치거나 세련되지 못한 장면으로 치부되지 않도록 적절하게 구성되면서 그 수준도 높았다. 이밖에도 동인과 서인의 싸움, 대동계 활동 모습, 정여립의 갈등하는 내면을 표현하는 장면 등 다양하게 전개되면서 사실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스토리로 흥미를 잃지 않고 엔딩까지 이어졌다.



역사해설을 표방한 <지워진 이름 정여립–여립(汝立)>은 그 의도에 맞게 인물이나 내용에 문외한(門外漢)이라 할지라도 해설을 통해 난해하지 않게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고, 특히 무료공연이었다는 점에서 지역사회에 문화향유의 기회를 제공해 뜻깊은 공연이었다. 마지막으로 지역문화와 인물을 재조명해 오늘날로 되살려 컨템포러리 댄스로 구현했는데, 인물의 강조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대무용으로 무용극의 형태를 살리며 춤과 내용이 조화를 이룬 안무, 연출, 기획력이 돋보였다. 꾸준히 자신의 색깔을 유지하며 작업을 이어온 황미숙의 노련함과 예술성이 담긴 여정에 함께 한 시간이었다.

                                           


                                          글_ 장지원(춤평론가)

                                          사진제공_ 파사무용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