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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낸 한국춤: 늘휘무용단 〈Rest.Art ‘Oars’〉


고요하고 자연친화적이며 정적인 춤사위와 현대적 움직임의 조화를 통해 ‘늘휘 스타일’을 보유하고 있는 늘휘 무용단이 새롭게 오픈한 LG아트센터 서울 U+스테이지에서 3월 18-19일 기술과 예술이 결합된 신작 〈Rest.Art ‘Oars’〉를 선보였다. 어느덧 창단 27주년을 맞이한 늘휘무용단은 1996년 김명숙(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을 주축으로 창단된 단체이다. 그간 다양한 시도를 바탕으로 융복합 과정의 공연을 보여주었고, 창작과 전통의 수용이라는 어려운 과제 속에서 나름의 색깔을 유지해왔다. 특별히 이번 공연은 늘휘무용단의 기획시리즈 ‘공간, 그 무한의 가능성’의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공연이라는 점에서 뜻깊다. 


그리고 시간을 뛰어넘어 현재 늘휘무용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젊은 안무가들(김민지, 최시원)과 무용수들이 주축이 되어 미디어 아트와 첼로 음악, 한국춤의 어우러짐을 감각적으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동시대성을 드러냈다. 우아함을 추구하는 무용단의 작품성향에 맞게 “격조 있는 한국적 움직임을 극대화해 예술적 신선함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제시한 목표를 달성하고 있었다. 김민지와 최시원은 국립국악고등학교 출신으로 전통무용에 대한 기초가 단단하고 이화여대에서 창작춤의 다양한 측면을 경험하고 안무작업을 해 온 실력 있는 안무가들이다. 무용수들 역시 안무가의 의도를 이해한 상태에서 진지하고 아름답게 표현력을 갖춰 춤췄기에 관객들의 공감대를 얻었다.



〈Rest.Art ‘Oars’〉는 제목 그대로 ‘휴식을 통한 생생한 생명력의 회복’을 다뤘다. 앞서 언급한 미디어 아트는 다원예술그룹 이스트허그(EASThug)가 맡았고, 첼로 음악은 첼리스트 지박(Ji Park)이 담당했다. 이 두 매체와의 협업(미디어+클래식 음악)은 기존에 전혀 없던 조합은 아니지만 그 완성도나 감각이 뛰어났다는 점에서 춤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특별히 이번에는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컨템포러리 댄스의 특성을 담았다. 영상을 통해 시공간을 뛰어넘어 예술표현의 확장을 시도했고, 3차원의 공간을 촬영하는 포인트 클라우드 기법과 실시간 기반의 게임 엔진을 활용해 무대 내 가상현실을 구현했다. 따라서 무용수들의 ‘몸’이라는 물성이 더해지면서 관객들은 테크놀로지의 발전뿐만 아니라 기술과 감성의 조화를 감상하는 무대를 경험했다. 여기에 더해진 첼리스트 지박의 첼로 선율을 배경으로 늘휘무용단이 현대적이면서도 한국적인 예술표현을 추구했다.


작품 구성은 1부 ‘Hourglass’, 2부 ‘균형의 Oars’, 3부 ‘빛의 소거, 침묵’으로 이뤄졌다. 시간과 소리, 빛과 어둠을 주제로 각 장면들을 살려냈으며 무용수들은 열정적이면서도 탄탄한 기본기가 받쳐진 춤사위를 보여주었다. 늘휘 무용단은 정적으로 시작해서 동적으로 마무리되는 스타일이 다수이다. 복잡한 동선 내에서 모이고 흩어지는 가운데 다 같이 합을 맞추는 듯하다가도 다시 복잡다단하게 변화하는 과정을 특징으로 한다. 상수 한쪽에서 라이브로 이뤄지는 첼로연주는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깊게 전했다. 특히나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 것은 웅장하고 섬세하고 스펙터클한 영상이었다. 백드롭 전체를 감싼 영상이 뿜어내는 아우라는 무용수들과 조화를 이루며 3차원의 공간을 이질적으로 만들어냈다.



흰 의상에 깔끔하고 단정한 머리를 한 6명의 여성 무용수들(배진일, 여길랑, 남선희, 윤혜수, 김민지, 최시원)은 느린 움직임에서 시작해 속도감을 더해가며 감정을 증폭시켰다. 뒤이은 삼각구도의 3인무와 김민지, 최시원의 응축된 이인무, 여성적이면서도 느리게 진행되는 또 다른 이인무, 5인무 등이 이어지면서 유동적 흐름 속에서 기존의 춤사위와 유사한 듯하지만 좀 더 강렬한 내면의 힘이 돋보였다. 또한 구음과 어우러진 낮은 저음의 첼로 소리는 그로테스크하지만 현대예술이 보여주는 정형화되지 않은 자유로움을 안겨주었다.


늘휘무용단은 그동안, 세계적인 키네틱 아트의 선구자 최우람, 뮤지션으로 국내 아티스트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는 선우정아 등 감각적인 예술가들과의 협업을 통해 실험적 예술을 선도해왔다. 이번 무대 역시 실험적이었지만 그간의 늘휘 스타일이 한 폭의 동양화 같았다면 에너지 넘치고 정형화 되지 않은 추상화 같은 인상을 주었다는 점에서 차별화되었다. 부드러운 상체의 움직임으로 연둣빛 색감의 공간에서 표류하는 그녀들의 마지막 모습에서 늘휘무용단의 젊은 안무가들이 감각적으로 선사하는 예술적 신선함이란 예술을 통한 휴식과 힐링의 시간을 다룸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는 점이라 느껴졌다.




                                            

                     글_ 장지원(춤평론가)

사진제공_ 늘휘무용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