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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계장을 떠난 닭은 어떻게 되었을까: 판소리공장 바닥소리 <닭들의 꿈, 날다>


서울남산국악당에서 올해부터 개최하는 남산소리극축제는 창극 형식의 다양한 창작 판소리 공연을 만날 수 있는 축제 무대다. 5월 5일부터 20일까지 3주간 진행되는 올해 축제에는 판소리트레블러KA2729, 판소리공장 바닥소리, 창작하는 타루, 이상 세 단체가 참여한다. 5월에 열리는 축제이니만큼 단체들은 어린이극과 가족극으로 관객들과 만난다.


지난 13일 공연된 판소리공장 바닥소리의 <닭들의 꿈, 날다>는 바닥소리의 레퍼토리 중에서는 물론이고 국악계로 시야를 넓혀 보더라도 매우 드물게 장수하며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공연이다. 바닥소리의 첫 번째 레퍼토리 작품이기도 한 이 공연은 2008년 <닭들의 꿈>이라는 제목으로 처음 세상에 선보인 뒤 2010년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의 ‘꿈꾸는 문화열차’에 선정되며 단체의 주요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고, 2014년에는 제1회 창작국악극대상에서 최우수상과 음악상을 수상했고, 2020년 <닭들의 꿈, 날다>로 제목을 변경해 새로운 버전으로 일신했다.


판소리공장 바닥소리는 2002년 소리꾼 최용석이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춘향가 보유자인 성우향 명창의 제자들 중 창작판소리에 관심 있는 이들과 함께 만든 단체로, “밑바닥 사람들 소리를 내주는 것이 판소리”라는 생각으로 ‘바닥’과 ‘소리’를 결합해 단체명을 지었다.


이 같은 단체의 방향성은 사회성 짙은 작품색으로 드러나는데, 분단 현실을 다시금 상기시키며 통일의 염원을 담은 <닭들의 꿈, 날다>, 간첩 조작 사건을 다룬 <닥터 2478>, 5.18 민주화투쟁을 주제로 한 <방탄철가방-배달의 신이 된 사나이>, 해녀들의 항일운동을 다룬 <해녀탐정 홍설록>, 전태일 열사를 모티브로 삼아 노동 현장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판소리 TALE〉, 평원 고무공장 여직공 파업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고공 투쟁을 벌인 노동운동가 강주룡을 다시 불러낸 <판소리 체공녀 강주룡> 등 바닥소리가 내놓는 작품 하나하나마다 과거에는 ‘민초’라고 불리던 사람들, 이른바 ‘민중’의 삶과 투쟁에 대한 묵직한 메시지로 가득 차 있다.




하늘을 자유롭게 날고 싶다는 불온한 꿈


<닭들의 꿈, 날다>의 무대는 UFO를 목격했다는 이들의 증언으로 시작한다. UFO라니, 촬영기기가 고도로 발달하면서 그에 대한 목격담도 덩달아 사라지고 있는 현대에 황당하기 짝이 없는 증언이다. 그러나 새도 아닌 것이 새처럼 날아가는 것을 봤다며, 새처럼 날았지만 결코 새로 보이지는 않았기에 UFO가 틀림없다며 증언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더없이 진지하다. 이들이 본 것이 과연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처음 등장한 증인은 양계장에 살고 있는 닭 꼬비다. 하늘을 날고 싶어 하는 닭 꼬비와 꼬끼, 비무장지대에 사는 외눈박이 독수리와 개 멍구 등이 차례로 등장해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안 UFO의 실체도 서서히 드러난다.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우화 형식을 취해 어린이와 가족 관객들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공연이지만 내용은 그리 가볍지 않다. 하늘을 날고자 하는 꼬비의 꿈은 그가 살고 있는 양계장에서는 매우 ‘불온’한 것으로 여겨진다. 양계장의 닭이 알을 낳는 것 외에 다른 생각을 하다니, 절대 안 될 말이다. 당장 양계장의 매출과 직결된 일이니까. 양계장은 이처럼 불온한 꿈을 꾸는 자가 있는지를 감시하는 눈으로 에워싸여 있다. 꿈은 전파력이 강하기 때문에 꿈꾸는 자가 나온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주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전염병처럼.


아니나 다를까, 꼬비가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다 사냥개에게 잡혀가자 친구 꼬끼는 꼬비의 꿈 이야기에 반신반의하며 힘을 실어주지 못한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꼬비와 함께하려 한다. 이 두 마리의 닭은 양계장에서 탈출해 새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비무장지대로 향한다. 거기 가면 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그러나 막상 도착한 비무장지대는 듣던 것과는 다르다. 새들의 천국은 새들이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는 곳이 아니라 각자가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는 잔혹한 야생이었다. 꼬비와 꼬끼는 굶주린 외눈박이 독수리와 개 멍구의 먹잇감이 될 뻔하지만 기지를 발휘해 조류독감에 걸렸다는 거짓말로 위기를 넘긴다. (<닭들의 꿈>에서는 조류독감이 퍼진 양계장에 방역대원들이 들이닥치는 게 꼬비와 꼬끼의 양계장 탈출 계기가 되었으나 <닭들의 꿈, 날다>로 개정하며 조류독감 모티브는 다소 축소되었다. 이는 코로나 팬데믹의 광범위한 피해를 겪은 뒤 조류독감의 위력을 전만큼 치명적으로 느끼지 못하게 된 시대 분위기 영향일 수 있다.)


양계장이 있던 남원에서 한반도 군사 분계선이 있는 비무장지대까지, 꼬비와 꼬끼가 이 만만치 않은 거리를 이동할 수 있었던 것은 화물트럭 운전사 덕분이다. 자칫 심각한 분위기로 흘러갈 수 있는 극에서 운전사가 벌이는 ‘화장실 유머’는 객석의 폭소를 자아내고, 운전사를 비롯해 양계장의 할아버지 닭, 멍구를 키우는 비무장지대 내 마을의 할머니 등 멀티캐릭터를 맡은 바닥소리 대표 정지혜의 능청스러운 연기는 무대를 장악하며 ‘씬 스틸러’ 역할을 수행한다.



동물들의 목소리를 빌려 인간의 문제를 이야기한다는 것


‘비무장지대’라는 명칭이 무색하게 이곳은 남북 양측의 무장 군인들이 상시 주둔해 서로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대치하는, 군사적 긴장감으로 가득 찬 곳이다. 지뢰 폭발로 이미 한쪽 눈을 잃은 독수리는 다시금 두 다리를 잃는다. 비무장지대의 야생성은 자연에서의 약육강식 때문이 아니라 인간들이 미처 끝내지 못한 전쟁에서 기인한 것이다.



비무장지대 내 마을에서 혼자 사는 할머니에게 거두어져 살고 있는 개 멍구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할머니를 위해 북쪽에 있는 쌍둥이 언니에게 할머니의 소식을 전해주고자 한다. 이에 다리를 잃은 독수리와 날 줄 모르는 꼬비와 꼬끼는 서로에게 날개와 다리가 되어 날아서 군사 분계선을 넘으려 한다.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가는 용감한 꼬비 역의 임지수, 겁은 많지만 꼬비를 믿고 힘을 보태는 꼬끼 역의 이부영, 눈을 잃고 다리를 잃는 거듭된 피해 속에서도 의지를 꺾지 않는 독수리 역의 이진주, 무거워질 수 있는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할머니와 동물들 사이를 연결하며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멍구 역의 박소영까지, 출연자들은 노련한 연기와 노래로 완급을 조절하며 극을 이끈다. 


본디 동물이나 식물 등에 인격을 부여해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우화 형식의 이야기들은 인간 세상을 우회적으로 풍자해 인간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고안된 것이지만 이렇듯 <닭들의 꿈, 날다>가 보여주는, 양계장에 갇혀 인간이 먹을 식량을 생산하기 위해 알을 낳고 분단이라는 특수한 현실 위에서 인간으로 인해 삶의 터전이 훼손되고 생존을 위협받는 동물들의 이야기는 평화와 인권, 동물권, 환경과 생태 등 현대사회와 관련된 문제의식을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아동극이나 가족극이 가족의 소중함을 재발견하고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며 성장해가는 서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을 떠올린다면 이 같은 작품을 만든 것은 당시로서는 매우 무모한 시도라는 평을 들었을 법하다. 메시지는 훌륭하지만 장르적으로 어울리지 않는다거나 상업 관객에게 소구하기 어렵다는 훈수도 이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초연 이후 15년째 여러 극장과 축제에 초청되며 단체의 레퍼토리로 살아남은 이 작품의 저력은 ‘바닥’의 ‘소리’를 노래한다는 단체의 방향성, 그 방향성에 맞춰 메시지를 밀어붙인 창작자의 뚝심에 있다. 서로의 날개와 다리가 된 독수리와 꼬비, 꼬끼는 군사 분계선을 무사히 넘어 할머니의 소식을 쌍둥이 언니에게 전해주었을까. 언젠가는 무대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글_ 윤단우(공연칼럼니스트)

사진제공_ 서울남산국악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