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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에 대한 애정으로 동행하다: 팔구°27 Collective ‘함께 걷는길, 동행’

이화여대 무용과 89학번으로 구성된 안무가들의 공연이 창무예술원에서 4월 11-12일에 있었다. 이들은 1980년대 한국 창작무용의 부흥기에 이화여대에서 김매자 선생의 지도하에 무용에 매진했던 학번이다. 특히나 현재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거나 혹은 비정기적 공연을 갖고 있는 무용가들이다. 팔구°27 Collective라는 뜻 깊은 행사를 통해 애교심과 무용과에 대한 애정을 발휘하는 한편 자신들의 기량과 안무력을 선보이는 기회를 가졌다.


첫무대는 김향의 <심살풀이>였다. 배정혜 신전통 안무작 중 하나로 그 뜻은 ‘마음을 풀어낸다’이다. 배정혜 선생의 살풀이는 기존의 살풀이가 무속적, 형태적 미를 담고 있다면 이와 다르게 내적 심상이 올곧이 춤사위의 결로 이어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녀 특유의 무게감과 역동성을 김향은 잘 표현해냈는데 질박한 느낌도 포함하고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편안하면서도 깊이를 보여주었다. 길게 날리는 흰 수건을 통해 춤추는 이의 마음도 공간의 영역을 넘어 내면으로 확장되는 모습이었다.


윤정아와 유일한 남성 무용수 김석중이 출연한 〈Daring or Enemy〉는 현대인의 불안한 인간관계에서 보여지는 감성을 춤으로 풀어냈다. 두 남녀의 듀엣은 교감 없는 관계가 어떤 불균형을 이루는지를 그려내는 과정에서 다각도로 연대감에 대한 집착, 관계에 대한 불안함. 진정한 관계에 대한 인간의 갈망 등을 진지하고 표현적으로 다뤘다. 움직임에 있어서 역동적인 측면과 정적인 측면의 조화를 유도하며 남녀 무용수의 호흡을 맞추는데 집중했다.


〈Composition〉은 태혜신이 반도의 무희 최승희의 춤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과 사랑, 열정 등을 다뤘다. 이미 무용역사기록학회 도큐퍼포먼스에 올랐던 공연을 일부 수정한 것으로 최승희의 역사적 고증과 자신의 춤이 어우러져 자신만의 최승희관을 완성했다. 편안한 복장에 장고와 의자 등의 소소한 소품이 준비된 공간에서 최승희에 대한 연구를 텍스트로 마련해 읊으면서 ‘Composition’의 의미를 재인식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김영희류 산조춤>을 보여준 김경희는 스승 김영희 선생에 대한 존경심과 춤에 대한 열정을 아름답고 청아하게 그려냈다. 김영희 선생이 김진걸 선생에게 “산조춤–내 마음의 흐름”을 사사하여 1994년 자신만의 산조춤을 만들어낸 이래로 이를 이어받은 김경희는 꾸준히 춤을 이어왔다. 또한 달빛 아래서 내 마음의 풍경을 의식의 흐름에 따라 표현하며, 서사를 넘어 감정의 심연을 바탕으로 개인의 정서를 세련되면서도 정교하게 다룬 원작의 느낌을 잘 살려냈다. 김영희 선생 특유의 응집된 에너지를 강하게 다루기보다는 한국춤의 근원적인 호흡과 춤사위에 기반 해 그녀만의 춤집을 보여주었다.


<숨의 절반>을 춘 정정아는 해외에서도 활발한 공연경력을 가진 실력자이다. 정정아는 춤을 통해 형상과의 동일화에 몰입된 자신의, 누락된 숨을 쉬어가련다는 다소 철학적인 주제를 춤으로 다뤘다. 곧고 아름다운 선과 풍부한 감성이 더해져 그녀 특유의 여성적이지만 관객의 몰입을 이끌어내는 절제되고 돋보이는 춤을 선보였다. 움직임에 있어 탁월한 능력을 지녔지만 과하게 드러내지 않고 한 템포 쉬어가는 여유가 느껴지는 무대였다.


박주영이 선보인 <신관철류 수건춤>은 그 자체가 전북 문화재이다. 한국춤의 대가인 한성준과 김보남을 거쳐 신관철로 이어지는 춤의 계보를 갖고 있는데, 궁중정재가 지니고 있는 정중동의 미와 민속춤의 흥겨운 신명이 절제된 춤의 형식 속에 내재되어 있다. 박주영은 이 같은 신관철류 수건춤의 특징과 자신만의 춤을 통해 연륜과 수련의 결과로서 기품이 담긴 춤을 보였다.


<련>은 손미정의 안무로, 그녀의 다른 공연들에 비해 춤집이 제대로 부각된 경우였다. 제목 그대로 세상과 연을 맺고 거센 풍파에도 함께 아파하고 동행할 수 있는 인연이 있어 살만하다는 내용을 춤으로 표현했다. 흰 치마에 노란 겉옷을 입고 가녀린 몸 선을 통해 유려하면서도 강인한 의지의 춤을 보인 <련>은 외적인 외형과 춤의 기량이 조화를 이뤄 안정적이면서도 인상적인 공연이었다.


김정은의 <포함시키다, 나를>은 알렉스 쿠소의 ‘내 안에 내가 있다’에 바탕을 두고 나에 대한 지각과 관찰 등을 춤으로 풀어냈다. 유연하고 부드러운 이미지이지만 그 속에 내면의 표현을 깊이 담고 있었고, 화려한 테크닉의 과시보다는 내적성찰에 집중함이 역력히 보였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공간에서 진정섬이 담긴 움직임은 관객들로 하여금 몰입도를 높이는 이유이기도 했다.


이번 무대는 20대의 풋풋함과 앳됨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한국춤의 근원과 뿌리를 잊지 않고 창작춤을 이끌어온 중견들의 굳건하고 사려 깊은 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자신만의 색깔이 확고해진 89학번들의 춤에서 편안함과 배려가 드러나는 것은 이들의 삶을 반영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패기와 도전정신은 나이와 반비례하지 않는다. 꾸준한 수련을 통해 새로운 도전을 보여주고 있는 이들에게 격려와 기대감의 박수를 보낸다.





                                                                글_ 장지원(춤평론가)

                                                                사진제공_ 창무예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