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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란 결국 ‘원작’이 되어야 하는 것: 이자람 판소리극 <노인과 바다>

“이자람이 부르면 원작이 된다.”


LG아트센터에서 이자람의 판소리극 <노인과 바다>(2022.12.9-10, LG아트센터 서울) 공연을 앞두고 배포한 보도자료의 첫 문장이다.




공연계 최대 성수기로 꼽히는 12월은 관객의 선택을 받기 위한 공연단체들과 공연장의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해지는 시기지만 이자람의 공연을 준비하는 LG아트센터의 공기는 조금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이 짧고도 단호한 문장에는 아티스트에 대한 확신과 공연에 대한 자신감이 글자마다 박혀 있다. 이자람은 LG아트센터에서 2011년부터 13년까지 <억척가>를 3년 연속으로 무대에 올리며 전회 매진과 전석 기립이라는 신화를 쓴 바 있다. 공연장 측이 내보이는 이 같은 자신감은 어쩌면 당연하다. 


잘 알려진 것처럼 이자람은 그동안 브레히트나 마르케스 등 해외 작가의 작품을 판소리 무대에 녹여내는 작업을 해 왔다. 2007년 발표한 <사천가>는 이자람 신화의 위대한 출발점이라 할 것이다. 공연 마케터들이 즐겨 사용하는 표현을 빌자면 ‘전통의 현대화’요, ‘한국 예술의 세계화’다. 예술가로서의 이자람에게는 그저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정진해 온 시간이었을 터이나 그가 발표하는 작품마다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전통예술을 ‘현대’ 그리고 ‘세계’와 연결하는 첨병으로 또 다른 열광이 더해졌다.


현대의 전기수 이자람은 무엇과 싸우는가


헤밍웨이가 1952년 발표한 동명 소설은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출간 이듬해인 53년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그 이듬해인 54년 헤밍웨이의 노벨문학상 수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작품이다. 세계문학 명작선에 항상 포함되어 성인부터 아동청소년에 이르기까지 인생 필독서로 권장되는 작품이며, 할리우드에서는 58년과 90년 두 차례에 걸쳐 영화로 만들기도 했다. 스펜서 트레이시와 앤터니 퀸이라는 당대를 대표하는 명배우들이 영화의 주연을 맡아 작품의 무게감을 더했다. 


태산처럼 느껴지는 원작의 무게를 기꺼이 두 어깨에 올려놓는 이자람의 시도는 일견 무모해 보인다. 그러나 그가 원작자의 거대한 이름 옆에 자신의 이름을 성공적으로 새겨 넣는 것을 목격하고 나면 무모함은 경이로움으로 바뀐다. 과거의 유산을 박물관에서 고이 보전하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후대의 창작자가 다시금 생명을 불어넣어 현재를 살아가게 만드는 것은 그 유산을 물려준 과거의 창작자들이 그 무엇보다 반기는 일일 터다.


앞서 브레히트나 마르케스의 원작을 판소리로 옮기는 것도 그리 녹록한 작업은 아니었겠지만 서사와 인물 간 관계성이 보다 풍부한 앞의 작품들에 비해 늙은 어부가 청새치와 벌이는 일전을 다룬 <노인과 바다>의 작업은 이자람이 원작자 헤밍웨이와, 그리고 주인공 산티아고와 일대 일로 만나 일전일퇴의 용투를 벌여야 하는 어려운 싸움이다. 이 싸움은 이자람에게 작품 내적으로는 산티아고의 고독한 사투를 재현해야 하는 동시에 작품 외적으로는 작가와 작품의 위명은 높지만 실제 독서 인구는 그 유명세에 한참 못 미치는 원작을 새롭게 읽어주는 현대의 전기수(傳奇叟)로서, 또한 전통의 신성한 권위와 판소리는 낡고 지루하다는 편견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며 길을 만들어야 하는 개척자로서 싸우는 세 겹의 층위를 부여한다.




이자람은 2019년 <노인과 바다> 초연을 앞두고 한 인터뷰에서 노인과 청새치의 싸움과 같이 소리꾼 이자람을 싸우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 바 있다. “지금 이 분노하는 마음은 어디서부터 온 것인가, 이기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성취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며 필요 없는 소모는 어느 부분에서 일어나고 있나. 왜 그런 소모를 하는가, 무엇이 아쉬운 건가. 이 싸움에서 내가 얻을 것은 무엇인가, 내가 포기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에 졌는가, 이다음에는 이것을 어떻게 대해 낼지 배웠는가. 포기하는 것에 후회는 없는가. 다시 일어날 동력은 얼마나 남았는가. 삶에서 다가오는 충돌들은 피할 수 없을 거예요. 모두가 그 충돌 앞에서 자신을 껴안고 잘 버티며 한발 또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공연 내내 이자람은 원작의 세밀한 묘사들을 충실하게 소리로 옮기면서도 이 소리가 벌어지는 현장은 헤밍웨이가 소설을 쓰던 1950년대도, 소설의 배경인 쿠바의 어촌 마을도 아닌 2022년 대한민국임을 분명히 못 박으며 작품과 현실의 경계를 허문다. 그는 투어를 지휘하는 유능한 가이드처럼 관객들을 공연장 안에 들어오기 전 공통적으로 거쳤을 경로인 9호선 마곡나루역의 4번 출구에서 LG아트센터로 인도했다가, 갑자기 드론을 띄워 마곡나루역 상공으로부터 쿠바 앞바다로 날아가 산티아고의 배 위에 착지한다. 


쿠바 앞바다와 공연장을 능수능란하게 오가는 이자람을 따라다니는 동안 관객들은 이 이야기가 원래 헤밍웨이의 것임을 잊어버린다. 이자람은 19년 초연 당시 원작에서 산티아고와 마놀린이 먹었던 쿠바 음식 ‘모로스 이 크리스티아누스’의 맛을 표현하기 위해 이태원 일대 식당가를 헤매다가 결국 찾지 못하고 대신 먹었던 아보카도 과카몰리와 퀘사디아에 대해 묘사하고, 22년의 최신 버전으로 한국에도 쿠바 음식점이 생겨 해당 메뉴를 맛볼 수 있었음에도 작창된 소리를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음식점 방문을 포기했다는 에피소드를 덧붙이며 이 현장이 ‘지금’ ‘이곳’임을 끊임없이 주입시킨다. 그가 ‘얼씨구’, ‘좋다’, ‘잘한다’ 같은 전통 추임새 시범을 보이고 나서 ‘대박’, ‘어머’, ‘맙소사’ 같은 구어로 된 감탄사를 슬쩍 끼워 넣으면 관객들도 박장대소로 화답한다. 마당이 아닌 프로시니엄 무대에서 주고받음이 가능해지는 순간이다.


‘지금’ ‘이곳’에 살고 있지 않다면




이자람의 <사천가>가 공연계에 상륙한 지도 어느덧 15년이 지났다. 해외 원작을 판소리 무대로 옮기는 것은 더 이상 낯선 시도가 아니게 되었으며, 젊은 소리꾼들을 중심으로 옛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시도 역시 매우 활발해지고 있다.

 

지난 11월 소리꾼 김율희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판소리로 옮긴 <괴물>을 선보였고, 7월 페미니즘연극제에서는 소리꾼 김은경의 작창으로 고전소설 『허생전』을 재해석해 허생의 처를 주인공으로 한 <허생처전>을 공연한 바 있다. 소리꾼 이승희는 <동초제 춘향가-몽중인>(2018)과 <몽중인-나는 춘향이 아니라>(2020)를 통해 춘향과 향단을 재조명하며 고전소설 속 전형적인 인물들에게 동시대성을 부여했다.


레퍼토리시즌 출범 이후 창극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는 국립창극단은 <메디아>, <오르페오전>, <트로이의 여인들>, <코카서스의 백묵원> 등 해외 원작을 창극 무대로 옮기는 작업을 통해 창극에 대한 고정관념을 부수고 관객층을 넓히고 있다.

 

‘전통의 현대화’나 ‘한국 예술의 세계화’ 같은, 특히 전통 분야에서 발견되는 그럴듯한 슬로건은 예술가 개개인들이 자신의 세계를 내보이는 야심찬 일성이라기보다 고사 위기에 몰리고 있는 전통예술이 생존을 도모하며 내지르는 비명에 가깝다. 그렇다 보니 슬로건이 아예 작품이 무엇인지 그 알맹이를 설명해야 하는 자리에서 콘텐츠를 밀어내고 주인 행세를 하는 경우도 많다.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소리와 달리 움직임을 전달하는 전통춤 분야는 이러한 슬로건에 잠식되어 길을 잃어가고 있다. 전통춤 분야에서 말하고 있는 ‘현대화’는 주로 정구호 스타일의 세련된 의상과 비주얼 디자인을 입히는 데에서 멈추기 일쑤다. 그러나 ‘현대화’를 말하기 전 먼저 돌아봐야 할 것은 스스로가 ‘지금’ ‘이곳’에 살고 있는가 하는 점이며, 또한 현재를 살지 못하는 예술가에게 ‘현대화’를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을 리 만무하다. 이자람이 보여주고 있듯이 예술은 전통과 컨템포러리의 문제가 아니라 원작이 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며, 원작이 되지 못하는 예술이 굳이 살아남아야 할 이유 또한 없기 때문이다.




 

글_윤단우(공연칼럼니스트)

사진제공_ LG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