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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비평

춤에서 존재의 이유를 찾는 5인의 무용가들: 스페셜 발레-존재의 이유

춤이란 무엇인가? 가장 원론적인 춤의 본질은 인간 신체를 사용해 사상과 감정을 움직임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고된 훈련과 지난한 노력을 펼치는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인생에서 춤을 살아가는 혹은 존재의 이유로 여기며 춤과 함께 한 원로 현역 발레리나, 발레리노 5인의 삶이 펼쳐졌다. ‘스페셜 발레-존재의 이유’라는 타이틀로 12월 20-21일 나루아트센터 대공연장에서 열린 5인의 무대는 2022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원로예술인공연지원 사업 선정작으로, 공연기획은 MCT가 맡았다.



공연은 그 진정성과 전성기 시절에 대한 그리움, 현재까지 이어오는 열정, 몸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이어질 이들의 춤의 미래 등이 파노라마처럼 그려졌다. 교육 현장에서 그리고 무대에서 자신의 인생을 다해 온 이들의 춤이 아름답게 느껴졌던 이유는 그대로 안주하지 않고 지금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김순정은 <… 머물며 2022>로 첫 무대를 열었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로 활약했던 그녀는 누구보다도 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금까지도 여러 무대에 참여해 활동하고 있다. 음악에 따라 동작와 마음이 움직이고, 과거와 미래가 자신의 곁에서 춤추는 상황을 꿈꾸는 모습에 진정성이 담겼다. 얼마 전 춤작가 12인전에서 보여줬던 작품의 완성된 형태로, 구성과 움직임은 심플해졌지만 밀도는 높아졌다.


문영철의 <소풍>은 인생의 희노애락의 삶을 기대에 부푼 소풍에 비유했다. 기대와 희망으로 들뜬 소풍의 인상을 추상적으로 그려낸 가운데 천상병 시인의 <귀천> 시는 문영철이 의도한 바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했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그의 유연하고 섬세한 라인은 과거 대단한 상들을 휩쓸었던 전성기를 기억하게 만들었고, 남성무용수들과의 조합은 남성춤이 가질 수 있는 역동성을 담아냈다.   


백연옥의 <꿈의 끝자락 Ⅲ>에서 그녀는 지난 추억에 대한 그리움과 기억, 그 기억들의 소환을 춤으로 풀어냈다. 발레의 테크닉보다는 미겔 안토니오 칼보와 보여주는 라틴 댄스가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작은 체구이지만 아름다운 춤선과 가녀린 라인에 맞춰 미겔 안토니오 칼보는 나름의 카리스마로 호응했다. 교육자로서의 위치도 보람을 느끼지만 본인이 무대에서 춤출 때 가장 행복한 순간임을 확인할 수 있는 무대였다. 어떻게 보면 발레 테크닉보다 더 능숙하게 라틴 댄스를 소화하는 듯 했다.



제임스전은 부인인 김인희와 듀엣 <산조[시절인연]>을 선보였다. 부부 무용가인 만큼 호흡과 춤의 연결이 자연스러웠고, 이 두 사람을 위해 창작한 강미선의 안무는 한국무용의 정적인 면과 서양발레의 테크닉이 각자 장점을 살리며 상호보완이 이뤄졌다. 특히 결혼 33주년을 맞이한 발레리노와 발레리나의 춤에 대한 애정을 모던 발레의 형태로 구현하면서 오랜 세월을 함께 한 부부의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감정의 교류가 관객들에게도 전달되었다. 


조윤라와 김희현이 춘 <내 마음의 수채화>는 조윤라의 저력을 확연하게 보여준 무대였다. 그녀의 아름다운 발등과 탄탄한 근육, 어린 남성 발레리노와의 듀엣에서의 조화는 연령을 뛰어넘어 춤으로서 만나는 순간이었다. 연습벌레라 불릴만한 꾸준함과 다부진 체격, 작지만 큰 아우라는 아직까지도 그녀를 무대에 있게 하는 힘이었다. 노익장을 과시하다라는 말을 사용하기 어색할 만큼 젊은 에너지로 공간을 채웠다.

 

5인의 무용가가 함께 한 <인생은 아름다워>는 제임스 전이 안무를 맡았다. 조윤라, 제임스 전, 백연옥, 문영철, 김순정이 오롯이 집중한 무대는 각자 다른 색깔로 아름답게 그려졌기에 기억 속에 저장되었다. 발레리나 강수진의 험한 발을 보면서 발레가 얼마나 고된 훈련과 노력을 요하는 예술 장르인지 알고 있는 대중들의 눈에, 그리고 꾸준히 이런 활동을 신체의 한계를 이겨내고 이어나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아는 후배들에게 한국 발레계의 원로로 자리 잡은 5인의 무대는 귀감이 될 만했다. 또한 과거의 최상의 무대와 지금의 무대가 동일할 수 없지만 그 회한과 현재의 삶이 교차하는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글_ 장지원(춤평론가)

                                                            사진제공_ M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