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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로써 표상된 연극, 그 새로운 도전: 볼쇼이발레단 <갈매기>

2021년 7월에 초연된 이후 볼쇼이발레단의 창작 레퍼토리로 꾸준히 공연되고 있는 <갈매기(Чайка)>는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안톤 체호프(Антон Павлович Чехов)의 희곡 『갈매기』를 발레화한 작품이다. 안무는 유리 포소호프(Юрий Посохов)가, 음악은 일리야 데무츠키(Илья Демуцкий)가 맡았다. 그 둘은 이미 몇 번의 작품을 함께 해 왔다. 최근 볼쇼이발레단과 작업한 작품으로 19세기 러시아 작가 레르몬토프의 동명 소설을 발레로 만든 <우리 시대의 영웅(Герой нашего времени)>(2015)과 <누레예프(Нуреев)>(2017)가 있으며, 2019년에는 자하로바를 주연으로 한 <가브리엘 샤넬>을 창작했다.


러시아 발레에 관심이 있다면 마야 플리세츠카야(Майя Плисецкая)의 1980년 버전 <갈매기>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플리세츠카야 안무, 로디온 셰드린(Родион Щедрин) 음악). 플리세츠카야는 소비에트 시대의 프리마 발레리나이다. 그녀는 50이 넘은 나이에도 활발히 활동하며 <갈매기>에서 니나 역으로 무대에 올랐다. 지금 보아도 플리세츠카야의 <갈매기>는 매우 현대적인 움직임으로 가득하며, 깊은 여운을 주는 작품이다. 유리 포소호프는 플리세츠카야의 작품이 무대에 오를 당시 볼쇼이발레단에서 무용수로서 참여하며, 언젠가 자신만의 색채로 <갈매기>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구상을 했다고 한다. 40여 년 만에 드디어 그 꿈을 실현한 것이다.

 

Photo by Elena Fetisova/ Bolshoi Theatre

 

<갈매기>는 사건성이 강한 내러티브는 아니다. 특별히 큰 사건을 중심으로 기승전결이 뚜렷하다기보다 한정된 공간에서 많은 등장인물의 얽히고설킨 관계로 서사를 이어나간다. 극 중 프리마 발레리나인 아르까지나는 고전발레 미학의 대명사이다. 반면 그녀의 아들 트레플레프는 새로운 춤을 추구하고 고전발레를 배척하는 반항적 인물이다. (원작에서는 아르까지나가 당대 사실주의 전통연극의 대배우로, 트레플레프는 새로운 상징주의극을 추구하는 인물로 그려지는데 안무가는 연극을 발레로 치환했다.) 이들 각자에게는 트리고린과 니나라는 연인이 있다. 아르까지나를 동경하며 유명 무용수가 되고 싶은 니나는 트리고린을 유혹하여 출세를 꿈꾼다. 애증의 관계인 어머니에게 예술적 자아를 부정당하고 사랑하는 니나에게도 버림받는 트레플레프는 자신이 죽여 버린 갈매기처럼 스스로 목숨을 내던진다.


이 네 명의 인물은 움직임에서도 캐릭터의 색채가 확연히 드러난다. 도도하고 자신만만한 아르까지나, 노련하고 능청스러운 트리고린, 순수 발랄하나 욕망이 숨어있는 니나, 젊음의 패기가 넘쳐 위태위태한 트레플레프. 이들 이외에도, 유일하게 트레플레프의 예술적 도전에 관심을 보이는 의사 도린, 트레플레프를 짝사랑하다가 결국 아무런 인간적 매력을 느낄 수 없는 (그래서인지 작품에서 유일하게 더미 인형으로 등장하는) 메드베덴코와 결혼하는 마샤, 아르까지나와 어린 시절 추억을 더듬는 오빠 소린 등이 관계를 풍성하게 하며 연극적 구체성을 더한다.


포소호프는 연극연출가인 알렉산드르 몰로취니코프(Александр Молочников)와의 협업을 통해 작품의 드라마성을 최대한 끌어내고자 했다. 추상적인 춤만으로는 부족한 인물의 감정선과 연기가 매 장면마다 드러난 것은 몰로취니코프의 성과였고, 그것이 이번 <갈매기>의 극적 긴장감과 분위기를 더해주었다. 또한 무대의 빈틈을 채워주는 구체적인 오브제와 연극 요소들은 피나 바우쉬의 탄츠테아터를 연상시키기도 했다. 가령, 실제 개의 등장, 어린 시절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장난감들, 곰인형, 전동자동차, 그리고 농장을 명시하는 건초더미, 트랙터 등의 오브제는 장면과 분위기를 명시적으로 보여주는 효과를 주었다. 이러한 극적 요소들이 이질감이 들지 않는 이유는 무용수들조차 ‘연기를 한다’는 생각으로 춤을 췄기 때문이다. 제작과정을 다룬 인터뷰에서 트레플레프 역을 맡은 이고리 츠비르코(Игорь Цвирко)는 이 작품은 “춤 공연이라기보다 발레 댄서를 위한 연극”이라고 말했다.

 

Photo by Elena Fetisova/ Bolshoi Theatre

 

총 4장으로 구성된 이번 <갈매기>는 한 차례의 휴식 시간을 포함하여 2시간 동안 압축적으로 전개되었다. 포소호프는 극의 시공간을 19세기 러시아의 영지에서 20세기 러시아의 농장마을로 옮겨왔다. 인물들은 드레스나 민속의상을 입는 대신 고급스러운 수트(아르까지나 커플)나 하늘하늘한 원피스, 작업 바지와 셔츠 등의 일상복을 입었다. 마을의 공간은 몇 개의 문을 경계로 집이나 정원이 되고 낚싯대와 함께 바닷가가 되며, 헛간과 농장이 된다. 벤치 하나로 기차역이 되기도 했다. 구획이 지어지고 춤이 시작되면 공간의 구체성은 크게 상관이 없어졌는데, 중요한 것은 인물이며 그들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트레플레프는 작품을 통틀어 크게 세 번의 저항적 행위(퍼포먼스)를 하는데, 이를 전후로 감정과 상황이 변화했다. 첫 번째는 1장 첫 장면이다. 발레 공연을 성황리에 끝낸 아르까지나 앞에 트레플레프가 가죽점퍼와 문신 차림으로 나타나 반항을 표현한다. (가죽점퍼와 문신은 저항의 상징이다. 실제로 사회주의 소비에트 시절 젊은이들이 문신으로써 저항을 드러내고자 했다.) 그리고 아르까지나의 꽃다발을 뭉개버리고서 무례하고 불손한 느낌의 파괴적 춤을 춘다. 아르까지나와 트레플레프의 관계는 고전 예술과 새로운 춤의 첨예한 갈등을 상징한다. 이는 아마도 당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라면 누구나 갖는 고민일 것이며, 지금을 살아가는 수많은 체호프나 포소호프들의 고민일 것이다.


이 갈등은 트레플레프가 선보이는 새로운 춤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사이보그 차림의 니나와 검투사 차림의 남성 무용수들은 3.3m의 커다란 일본식 징과 스틱을 두드려 내는 타악 리듬에 맞춰 춤을 추었다. 마치 그리가로비치(Юрий Григорович)의 <스파르타쿠스(Спартак)>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데, 이 혁명적인 춤이 20세기 중반 러시아 발레계에 불러왔을 충격을 짐작케 하여 흥미로웠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혼돈의 도가니는 얼마 가지 않아 우아하고 매혹적 춤을 추는 아르까지나에 의해 중단되고, 결국 찬사는 아르까지나의 몫이 된다. 이로써 트레플레프는 예술적 성취와 니나의 사랑 모두에서 좌절하고 갈매기를 잡아 죽이는데, 그의 미래를 예감하게 만든 장면이다.

 

Photo by Elena Fetisova/ Bolshoi Theatre

 

두 번째의 퍼포먼스는 니나와 트리고린의 관계에서 촉발된다. 트레플레프가 죽인 갈매기를 보며 니나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트리고린을 선택한다. 그 둘의 듀엣은 트리고린과 아르까지나의 듀엣과 사뭇 달랐다. 이미 성공을 거둔 아르까지나와 트리고린의 듀엣이 동등한 위치에서 주고받는 균형이라면 니나와 트리고린은 유혹하는 자와 그 관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자가 교차되며 깊이 파고드는 밀당이 있었다. 아르까지나는 찬사를 받는 데 익숙한 듯 도도하게 움직이는 반면 니나는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발랄함이 자칫 촌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래서인지 그녀가 트리고린을 유혹하는 몸짓은 더 저돌적이었고,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왔을 때의 절망적 움직임은 견딜 수 없을 만큼 처절했다.


니나와 트리고린의 장면을 목격한 트레플레프는 그 둘이 사랑을 나누던 농장의 트랙터에 홀로 들어가 불을 지르고 분신자살을 시도한다. 실패에 그쳤지만 이로써 그는 연인도, 어머니도 잃어버린다.


마침내 트레플레프 앞에 비애로 가득 찬, 버림받은 니나가 나타난다. 마치 날개가 꺾인 갈매기처럼. 트레플레프는 병든 모습의 니나를 여전히 사랑하지만, 그녀는 흐느적거리면서도 그 마음을 거부한다. 잔잔하고 슬프게 시작하지만, 사랑과 분노, 미련과 욕망, 좌절과 절망으로 치달아 가는 그 둘의 이인무는 작품의 강렬한 클라이맥스였다. 증폭되는 볼레로 음악과 함께 고조되는 춤의 감정은 관객들의 숨통마저 조이는 듯했다. 두 사람이 안타까운 이인무를 추는 공간 너머로 희끗희끗 보이는 마을 사람들의 평온한 모습은 상대적으로 니나와 트레플레프의 처연함을 더욱 드러냈다.


더 큰 세상을 꿈꾸고 그곳을 향해 날고 싶었던 니나, 새로운 예술을 추구하며 희망을 품었던 트레플레프. 이들은 모두 각자의 꿈과 사랑, 예술적 열망으로 날고 싶어 했던 갈매기였다. 이 젊은이들의 좌절과 절망은 결국 트레플레프의 죽음이라는 마지막 퍼포먼스로 막을 내린다.

 

Photo by Elena Fetisova/ Bolshoi Theatre

 

특별한 계기의 사건이나 이야기 구조가 없이 두 시간 가까이 작품의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솔로와 이인무, 삼인무, 군무가 등장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의 흐름처럼 끊임없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마치 체호프의 희곡 속 인물들이 대사를 이어나가는 것처럼 그들의 춤은 서로를 향해 움직임을 주고받았다. 춤으로써 사건을 만들고, 감정을 쌓았으며, 춤으로써 자아를 그려내고 인간관계를 만들어냈다. 이것은 안무가 포소호프와 연극연출가 몰로취니코프의 만남, 발레와 연극이 서로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그들만의 ‘어떠한’ 방식이었다. 이것을 나는 체호프가 <갈매기>를 통해 그려내고자 했던, 새로운 예술 형식을 추구하는 도전으로 이해하였다.



글_ 이희나(춤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