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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비평

오브제의 활용으로 강화된 움직임: 시나브로 가슴에 <태양>

 

ⓒ옥상훈

 

가장 밝고 뜨겁게 빛나는 태양. 그 아래에서 인간은 태양이 뜨고 지는 시간의 순환과 맞물리며 강인한 생명력으로 지금까지 존재해왔다. 그런데 약하면서도 강한 존재인 인류는 뜻하지 않게 코로나라는 위기상황을 맞이했다. 어느 정도 코로나의 정점에서 벗어난 지금, 사회와 자연, 인류의 근본적인 생명력에 대해 질문을 던진 공연이 있었다. 2023년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 공연 중 시나브로 가슴에의 <태양>(2월 10-12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이 그것이다. 안무를 맡은 이재영(시나브로 가슴에 예술감독)은 주제의 특성을 명확하게 파악해 감각적이고 재치 있게 다루지만 신중한 움직임으로 표현해내는 안무가로서 정평이 나있다. 그는 이번 작품을 통해 인간의 모습에서 ‘생명력’과 ‘공존’을 포착해 아크로바틱하거나 테크닉적인 춤보다는 확연하게 주제를 담은 오브제와 밀도 있는 연출로 표현했다. 


<태양>은 일본의 작가 마에카와 토모히로의 동명의 희곡을 모티브로 했다. 이재영은 2021년 두산아트센터에서 초연된 연극 <태양>에 움직임과 관련해 참여하며 이 작품을 접했고, 그때의 작업 과정에서 받았던 영감을 발전시켜 새롭게 춤으로 완성했다고 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바이러스로 인해 세계인구가 급감한 21세기 초를 배경으로, 항체가 생겨 우월한 신체적 조건을 갖췄으나 자외선에 취약해 밤에만 활동하는 신인류 ‘녹스’와 고립된 마을에 소수만 살아남은 구인류 ‘큐리오’의 대립된 모습, 삶, 희망, 절망 등을 그려냈다. 스토리라인이 명확한 연극과 비교해 추상적인 표현의 무용공연을 보고 관객들은 상상의 나래를 펼쳤을 것이다. 어느 쪽의 승리가 아닌 더불어 살아감의 메시지가 명확하게 전달되었을지는 장담할 수 없으나 그는 집요하게 움직임을 반복하며 실타래를 풀어갔다.

 

ⓒ옥상훈

 

공연이 독특했던 점은 실시간 폐쇄형 음성해설과 개방형 한글 자막이 준비되었고, 자막에는 공연에 사용되는 음악에 대한 설명이 표시된다는 것이다. 자막이 있는 공연들은 일반적이지만 작품내용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음악에 대한 설명은 드물다. 또한 해설자가 나와서 하는 음성해설이 아니라 소리로만 접하는 폐쇄형 음성해설에 좀 더 귀를 기울이게 되는 측면도 있었다. 이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해설로 배리어 프리(barrier-free)의 일환인 듯 했다. 다만 의문이 든 것은 이 작품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이었다. 왜 작품해설이 아니라 음악을 위한 해설이 필요했던 것인가? 여기에 대한 명확한 답변은 얻지 못했다. 


공연장에 들어서자 가장 눈길을 끌었던 대형 구조물은 원형의 금속물로, 태양을 상징했다. 조명기가 가득 담긴 구조물은 우선적으로 그 크기로서 관객을 압도했다. 이후 조명이 들어와 환하게 빛나며 오브제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했고, 태양의 감성은 작품의 완성도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강렬하게 발산되는 빛은 태양의 이미지를 강화하기도 했지만 관객들이 그 속에 합류해 대립되는 두 인류 중 어디에 속해 활동하는 듯한 착각 속에 빠지게도 만들었다. “나는 신인류인가, 구인류인가?”를 따져보기 전에 살아남은 존재로서의 내가 더욱 실감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공연 시작 전 이미 개방되어 있던 무대는 어둠 속 신체가 주목받기 시작할 때 비로소 생명력을 얻었다. 어두운 무대는 암흑의 시간을 의미했고, 거대한 조명이 밝혀지고 그 속에서 인간의 생존이 시작된다. 초반부 긴 시간 집요하게 반복되는 움직임은 점프였다. 기술적인 점프가 아니라 단순히 빛을 향한 상승욕구를 드러낸 ‘큐리오’의 점프였다. 반면에 낮은 자세로 기계적인 움직임을 구사하는 무용수들에게서 ‘녹스’가 느껴지면서 이들의 대립과 조화가 더욱 확연하게 드러났다. 거대한 조명 아래 불안정한 상태를 표현한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그렇기에 잘 짜여진 구조나 정제된 움직임이 아닐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반복을 거듭하면서 의미를 증폭시켰다.

 

ⓒ옥상훈

 

움직임 어휘를 구사하는데 있어서는 조안무를 맡은 권혁의 역할도 컸음은 예상 가능했다. 직접 출연하지는 않았으나 절제된 움직임과 반복을 통한 강조는 그의 안무색깔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재영과 권혁의 조화는 그래서 시나브로 가슴에의 전체적 조성을 맡아 급성장한 것이라 하겠다. 7명의 무용수들(김소연, 김혜진, 박성율, 변혜림, 양진영, 이대호, 이재영)이 만들어내는 시간의 흐름과 좁혀진 공간에서의 구성은 진지했는데 진정성이 수반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지루하다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다면 이번 프로그램에 기재된 접근성 매니저인 권지현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생소한 단어가 궁금증을 유발시켰다. 접근성 매니저가 명확하게 정의되고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다면 앞으로 다양하게 쓰일 것이다.  


<태양>은 시나브로 가슴에의 움직임에 대한 탐구가 돋보인 반면에 현대예술의 난해함에 또 한 번 봉착하게 되는 작품이었다. 그럼에도 제목만을 보고 <태양의 서커스>의 스펙터클이나 연극의 구체적 서사를 생각했던 관객에게 신체의 물성이 제공할 수 있는 광범위한 해석의 영역에 참여시키는 공연이었다. 절실하게 다가왔던 것은 우리가 처한 불안정한 환경에의 경고, 살아남은 신인류의 생명력과 희망이 아니었을까!

 

ⓒ옥상훈

  


                                                                 글_ 장지원(춤평론가)

                                                         사진제공_ 한국문화예술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