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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컨템포러리 발레의 새로운 장: 유니버설발레단 <코리아 이모션>

 

ⓒUniversal Ballet photo by Kyongjin Kim

 

유니버설발레단이 시즌 개막작으로 유병헌 예술감독의 신작 <코리아 이모션>을 3월 17일부터 19일까지 3일간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 올렸다. 이 작품은 지난 2021년 대한민국발레축제 초청작으로 <파가니니 랩소디>, 〈The Butterfly Lovers〉와 함께 트리플빌 공연의 한 작품으로 25분가량의 중편으로 처음 공개되었다가 올해 국립극장 레퍼토리시즌에 초청되며 75분여의 장편으로 길이가 늘어난 개정작을 선보였다.

  

국립극장은 2012년 레퍼토리시즌 출범 이후 전속단체로 남은 무용단, 창극단, 관현악단의 공연을 중심으로 시즌 프로그램을 꾸려오다 재단법인으로 독립했으나 국립 명칭을 유지하고 있는 타 예술단체(주로 서양예술)의 공연들도 레퍼토리시즌에 포함시키고 있다. 법인 독립 전까지 전속단체였던 국립발레단과 오페라단, 합창단, 그리고 단체명에 국립이라는 명칭을 새로이 달게 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와 국립정동극장 예술단 등이 레퍼토리시즌에 참여하며 시즌 프로그램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국립극장은 레퍼토리시즌 참여를 국립단체로만 한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데, 서울예술단,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극단 수 등이 시즌 무대에 참여해 공연을 올린 바 있다. 유니버설발레단의 시즌 참여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가 두 번째로, 국립극장이라는 정체성에 호응하려는 듯 지난해에는 <춘향>을, 올해는 <코리아 이모션>을 선보였다.

  ⓒUniversal Ballet photo by Kyongjin Kim

 

한국과 세계를 한데 담은 한상차림


<코리아 이모션>은 2021년 트리플빌 무대에 올려진 세 작품 중 가장 뜨거운 찬사를 받았던 작품이다. 작곡가 지평권이 2014년 발표한 앨범 ‘다울 프로젝트’에서 ‘미리내길’, ‘달빛 영’, ‘비연(悲戀)’, ‘강원, 정선아리랑 2014’의 4곡을 발췌해 안무했고, 이 가운데 ‘미리내길’과 ‘비연’은 22년 신작 <더 발레리나>에 극중극 형식으로 삽입되어 관객들과 다시 한 번 만났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유니버설발레단은 시즌 레퍼토리 운영에 있어 매우 신중을 기하고 있는데, 꾸준히 선보이던 ‘This is Morden’ 시리즈가 2019년을 마지막으로 시즌 라인업에서 사라졌고(팬데믹 이전에도 〈Minus7〉과 같은 인기작 중심으로 믹스드빌이 구성되긴 했으나) <오네긴> 정도를 제외하고는 <백조의 호수>나 <지젤>, <돈키호테> 등과 같은 클래식 레퍼토리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코리아 이모션>의 등장은 발레단의 시즌 레퍼토리 운영의 한 변곡점이 될 만한 순간이다.


유병헌 감독은 “팬데믹을 보내며 자연스레 그간의 삶을 돌아보고, 한국만의 정서를 전 세계에서 통하는 발레로 풀어내고 싶다는 구상을 했다”며 “한국과 세계를 담아 맛있는 한상차림을 내놓으려 했다”고 안무의도를 밝혔다. 유 감독의 이 같은 언급은 <심청>과 <춘향>으로 대표되는 ‘한복 입은 창작발레’라는 발레단의 창작 방향성과 합치되는 발언인 한편 ‘This is Morden’ 시리즈를 통해 해외 안무가들의 컨템포러리 작품을 꾸준히 소개하며 해외 발레계의 조류에 발 맞춰 온 경향을 일단락 짓고 발레단의 독자적인 노선을 개척하겠다는 선언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는 해외 발레단에서 공연된 적 있는 작품이거나 해외 발레단에서의 경력을 통해 검증된 안무가의 신작이 아닌 발레단이 오리지널리티를 갖는 컨템포러리 작품으로만 구성된 트리플 빌 공연을 선보였을 때부터 착실히 진행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올해의 <코리아 이모션>은 75분으로 늘어난 길이만큼 9개 작품으로 편수 또한 대폭 늘어났다. 기존의 네 작품 외에 국악연주그룹 앙상블 시나위의 앨범 ‘영혼을 위한 카덴차’(2011)와 ‘시간 속으로’(2012)에서 발췌한 ‘동해 랩소디’, ‘달빛 유희’, ‘찬비가’가 추가되었고, 독일 재즈밴드 살타첼로의 작곡가 피터 쉰들러의 2000년 앨범 ‘정’에 수록된 ‘Tristesse D`Amour와 ‘Prelude’의 두 곡을 사용해 ‘다솜 I’과 ‘다솜 II’를 안무했다.

 

ⓒUniversal Ballet photo by Kyongjin Kim

 

하나의 신체, 두 개의 움직임


‘동해 랩소디’는 안녕과 풍년, 풍어를 기원하는 동해안별신굿의 자진모리장단을 재구성하여 가야금, 아쟁, 장고, 피아노로 신명나는 즉흥연주를 펼치도록 구성한 곡으로, 무대에서는 여성 무용수와 남성 무용수 여덟 커플의 파워풀한 군무로 전개된다. 뒤를 잇는 ‘달빛 유희’는 경기지방의 무속음악에 많이 사용되는 6박 도살풀이 장단을 바탕으로 달빛 아래 춤추는 선율들을 주고받는 즉흥연주로 전개되는 곡으로, 무대에서는 여성 4인무로 달빛 아래 한과 신명을 드라마틱한 춤사위로 표현하고 있다. ‘찬비가’는 조선 중기 문인 임제의 시 ‘한우가(寒雨歌)’에서 모티브를 얻은 곡으로, 본디 임제와 한우(寒雨)라는 평양기생이 주고받은 연시(戀詩)이나 안무가는 이를 사모하는 여인을 그리워하는 남성 4인무로 재해석했다. 


‘다솜I’과 ‘다솜II’는 자매 혹은 모녀간의 정, 그리고 형제간의 정을 여성 2인무와 남성 2인무로 표현한 작품인데, 여성 무용수와 남성 무용수를 짝 지운 파드되가 안무의 기본이 되는 발레에서는 드물게 보는 동성 간 2인무인 것이 이채로웠다. ‘동해 랩소디’의 힘찬 군무로 공연의 막을 열어젖힌 뒤 서로 춤사위를 주고받듯 여성 무용수의 춤과 남성 무용수의 춤이 차례로 이어지다 ‘미리내길’부터는 다시 파드되 중심의 안무가 펼쳐진다. 죽은 남편에 대한 아내의 그리움을 애절한 파드되로 표현한 ‘미리내길’, 서로 닿을 듯 닿지 않는 안타까운 인연을 네 커플의 군무로 풀어낸 ‘비연’,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는 남편의 애틋함을 표현한 ‘달빛 영’으로 이어지는 무대는 감정을 담뿍 실어낸 움직임으로 관객들의 마음도 촉촉이 적시며 무대를 바라보는 객석의 온도를 한껏 높였다. 마지막으로 아홉 커플의 군무로 전개되는 ‘정선아리랑’은 작품의 하이라이트이자 장엄한 마침표다.

 

ⓒUniversal Ballet photo by Kyongjin Kim

 

<심청>에서 왕비가 된 심청이 아버지와 재회하는 장면에서 한국무용의 춤사위를 일부 안무에 녹여내는 시도를 한 바가 있긴 하지만 발레단이 그동안 보여주었던 창작무대가 한복을 입되 발레의 문법을 엄격하게 지키는 방향이었던 것에 비해 <코리아 이모션>은 상체에는 한국무용의 움직임을, 하체에는 발레의 움직임을 적용하며 하나의 몸 위에서 두 가지 다른 문법의 움직임을 공존하게끔 하는 방향으로 안무를 완성했다. 이는 한국의 전래동화 등 익숙한 서사에 의존하지 않고 움직임을 작품의 중심에 두는 매우 용기 있는 시도로, 이러한 움직임을 매끄럽게 소화해낼 수 있는 무용수들이 있기에 가능한 시도이기도 하다. 이번 공연으로 <코리아 이모션>은 유니버설발레단이 그동안 쌓아온 컨템포러리 발레의 역량을 증명하는 장이 되었음은 물론 앞으로 한국식 컨템포러리 발레의 새 장을 여는 서막이 될 수 있을지도 지켜볼 일이다.



글_ 윤단우(공연칼럼니스트)

사진제공_ 유니버설발레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