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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2015.04.30
안무의 종말

  이달 초에 서울국제즉흥춤축제가 열렸습니다. 이 축제의 부대행사였던 ‘무용가를 위한 특별 강연’과 ‘즉흥춤 메소드 워크숍’에 초청된 댄스마스터는 70대의 노장 수잔 버지(Susan Burige)였습니다. 수잔 버지는 미국에서 총체예술의 시대를 열었던 얼위 니콜라이의 제자로, 얼윈 니콜라이 무용단의 동료이자 경쟁자였던 카롤린 칼송과 함께 프랑스로 이주하여 누벨당스(한국의 신무용에 해당) 이후의 프랑스의 현대무용, 즉 컨템포러리댄스를 개척했던 인물입니다. 그녀의 이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한국에서 컨템포러리댄스의 새로운 조짐이 꿈틀대던 2003년 무렵입니다. 그 무렵에 무용월간 <몸>지의 편집장으로, 또 창무국제예술제의 프로그래머로 일했던 필자는 교토에서 열렸던 ‘아시아의 컨템포러리댄스’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에 초청받아 발제자로 참가하였습니다. 필자는 이 심포지엄에서 전통춤을 기반으로 하는 한국창작춤을 “컨템포러리 스타일의 한국춤”으로 소개하였습니다. 심포지엄이 종료된 후 필자를 발제자로 추천해준 일본의 현대무용가로부터 자신들은 한국창작춤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춤을 소개받기를 원했다는 말을 듣고 당혹감에 휩싸였습니다. 그런 춤은 도대체 어떤 것인가라고 되물으며 당시의 유명한 안무가들의 이름을 열거하자 그런 안무가들의 ‘현대무용(Modern Dance)’이 아니라고만 했습니다. 심포지엄 당일의 밤샘 토론회에 참가하면서, 또 주최측이 준비한 일련의 공연들을 보면서 컨템포러리댄스의 실체가 어렴풋이 다가 왔습니다.  


  당시에 일본의 신세대 안무가들이 펼쳤던 컨템포러리댄스 공연은 한국의 신세대 안무가였던 이경은과 정영두의 안무스타일과 유사해 보였습니다. 현대무용도 아니고 부토댄스도 아닌 제3의 스타일로 보였던 컨템포러리댄스의 발생 경로가 궁금해서 일본의 무용가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자신들도 정확한 발생 시점이나 경로는 모르겠으나, 일본인들의 ‘프렌치 문화’에 대한 동경, 젊은 무용가들의 프랑스로의 유학, 일본과 프랑스의 친밀한 문화교류 등 프랑스의 영향이 근저에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이경은과 정영두가 연수를 다녀 온 프랑스의 안무센터에 관심이 갔습니다. 당시에 이경은과 정영두는 공식 인터뷰에서나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공공연히 자신들이 다녀 온 안무센터에서 새로운 세례를 받은 듯이 묘사했습니다. 그 안무센터가 바로 수잔 버지가 예술감독으로 재직하던 르와요몽 재단의 안무센터입니다.


  2004년에 중국의 북경공항에서 우연히 이 거장을 만났습니다. 북경무용학원 창설 50주년 기념행사에 초청받은 우리는 픽업 나올 동일한 차를 기다리며, 그녀의 한국 제자를 주제로 소소하게 대화를 나누었고, 명함을 주고받았습니다. 2005년이 되자 한국의 무용계에서도 컨템포러리댄스라는 용어가 빈번하게 오르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해에 창무국제예술제를 준비하던 필자는 수잔 버지를 초청해서 컨템포러리댄스의 개념과 실체를 제대로 알려보기로 작정했습니다. 적은 예산으로 허덕거렸지만 그녀를 기필코 초청했고, 한국에서 처음으로 그녀의 “안무워크숍”을 개최했습니다. 인천공항에서 그녀를 픽업해가는 동안 내내 이 “안무워크숍”이라는 용어 때문에 질책을 받았습니다. 자신은 단 몇 일간의 워크숍 동안에 절대 “안무”를 가르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워크숍은 “콤포지션(구성)”에 대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너는 도대체 컨템포러리댄스가 뭔지 아느냐?”고 몰아쳐서 우물주물거리며 진땀만 흘린 기억이 납니다. 그렇다고 수잔 버지는 단호함과 엄격함으로만 무장한 댄스마스터가 아닙니다. 그녀는 철학적, 문화적 소양이 깊고 넓은 스승이었습니다. 그녀의 친절한 가이드 덕분에 <몸>지를 통해 한국의 무용가들에게 컨템포러리댄스의 개념을 명확히 알릴 수 있었습니다. 수잔 버지는 창무국제예술제 이후에도 한국을 몇 년간 더 방문하여 워크숍을 지도했고, 그녀의 워크숍에 참가했던 많은 무용가들이 안무에 대해 개안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컨템포러리댄스가 본격화될 수 있었던 기저에는 수잔 버지라는 존재가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70세를 훌쩍 넘긴 이 노장을 서울국제즉흥춤축제를 통해 다시 만났습니다. 국경과 세대를 넘어 친구와 같은, 아니 멘토와 같은 분과 나누는 대화는 지적으로 충만했고, 즐겁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런데 프랑스의 컨템포러리댄스를 주제로 나누었던 대화 중에 그녀는 충격적인 발언을 했습니다. 작년에 자신이 <르 몽드>의 무용컬럼니스트인 친구와 함께 100명의 프랑스 문화엘리트들에게 “현재 프랑스의 안무가라고 하면 생각나는 인물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아무도 대답을 못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무용가들이 “춤이 없는 춤”이라는 뜻의 ‘농당스’를 비롯해 춤을 지나치게 해체해 버리고서 ‘안무’를 하지 않으니 진정한 의미에서 ‘안무가’는 없다는 것이지요. 미술비평가 아서 단토의 표현을 차용한다면 ‘안무의 종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새로운 미술의 흐름을 표현했던 아서 단토의 ‘예술의 종말’과는 다른 차원입니다만.


  그런데 우리 무용계에도 이런 ‘안무의 종말’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컨템포러리댄스를 추구한다면서 자신을 차별적, 우월적 지위로 포장하고, 자신의 지식과 의지는 찾아볼 수 없고 타인들이 ‘리서치’라는 과대한 공정으로 풀어준 잡다한 개념으로 안무를 해체해버리는 무용가들이 많아지고 있으니까요. 컨템포러리댄스의 특징이 다원성과 안무가의 탐구정신에 있는데, 어떤 공공기관에서는 ‘아카이브 춤’, ‘과학적 연구’, ‘인류학적 리서치’ 등 학술지에 발표할 꺼리도 못되는 잡설을 새로운 개념인냥 내세우며 ‘동시대적 흐름’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이러한 흐름에 끼지 못하는 안무가들은 거대한 컨템포러리댄스의 조류에서 ‘낙오’된 창작자라며 오만하기 짝이 없는 발언도 서슴지 않습니다. 이런 조악한 언술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나옵니다. 무식함과 무지함이 용감함을 낳는 것일까요. 어느 사회에서도 환영받지 못할 황소개구리들이 무용생태계를  교란시키는 행위를 보는 듯 합니다.


  고대 그리스어 ‘코러스(choros: 춤)’와 ‘그라포(grapho: 쓰다)’에서 유래된 안무(choreography)는 ‘춤쓰기(dance-writing)’ 혹은 ‘춤구성(dance composition)’이라고도 합니다. 백과사전에는 안무를 “움직임을 구조화하거나 이런 움직임 구조를 탐색하거나 조합하는 예술”이며, “그 조합의 결과”라고 풀이합니다. 즉, 안무는 “움직임에 대한 고도의 기술적 수련을 거치고, 무용뿐만 아니라 극장, 음악, 미술 등에 대한 역사적, 미학적 이해와 지식을 쌓은, 독창적인 표현력을 지닌 무용가에 의해 이루어”지며, 이런 전문가를 안무가(choreographer)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안무의 개념을 해체해 버리고 등장한 비전문가들을 안무가로 인정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그리고 무용사에 대해 일면의 지식이 없고, 안무를 분석할 줄도 모르는 비평가에게 ‘안무비평가’라는 지위를 부여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이 듭니다. 이러한 현상을 우리 무용가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또 컨템포러리댄스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 여러 생각이 드는 즈음입니다.

 

 

글_ 편집주간 최해리(무용인류학자, 한국춤문화자료원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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