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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2019.04.05
여전히 안녕한 블랙리스트


블랙리스트 _경과

 

  9,273. 이 숫자는 이명박 정부에서 시작(20088문화권력 균형화 전략청와대 기획관리 비서실 작성 문건)해 박근혜 정부로 이어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이하 블랙리스트’) 전체 명단 건수다. 개인 8,931, 단체 342곳 등 총 9,273(중복 제외)의 이름이 올랐다. 하지만 블랙리스트는 직접 배제 당한 피해자와 단체뿐 아니라 사찰의 결과로서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문화예술인, 배제를 예견하여 지원 사업 신청을 거부하거나 불이익과 위협을 피하기 위해 자기 검열을 한 문화예술인 등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피해자를 양산했다.’(‘백서 124) 그야말로 단군 이래 국가가 저지른 문화예술에 대한 가장 중대하고 참혹한 범죄행위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 위원회’(이하 위원회’)11개월간(2017.7.31.~2018.6.30.)의 활동 결과를 정리한 총 10권 분량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백서’(이하 백서’)를 지난 227일 발간했다. ‘백서는 주로 외부 전문가들이 필진으로 참여해 블랙리스트 사태를 거시적이고 다각적 시각에서 조망한 본 책 4권과 총 115건의 진상조사 결과보고서를 망라한 부록 6권으로 구성됐다.





  문체부 장관의 사과(2018.12.31.)백서발간으로 정부 측 입장에서는 블랙리스트 사태가 일단락됐다고 보는 것 같다. 하지만 관련자 처벌과 보상 그리고 재발 방지 대책 마련 등 많은 문제가 남아있다. 얼마 전 블랙리스트피해자 집단소송 원고인단 전체 워크숍이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주최로 열렸다. 피해자 입장에서 블랙리스트는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뜻이다.

 

블랙리스트 _거울

 

  적어도 무용계에서 블랙리스트는 일상적이다. 한국 대학의 무용학과에는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 아무도 블랙리스트라고 부르지 못하지만, 그것의 속성을 살펴보면 백 퍼센트 블랙리스트다. 블랙리스트의 일반적 특징 중 하나는 명단이 공식적이지 않고 비공식적인 경우가 많고, 문건으로 남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다. 문건이 없어도 작성자(지시자)의 입을 통해 암암리에 전달되고 실행 방법은 노골적 배제다. 배제 기준을 어렴풋이 짐작은 할 수 있지만 가해자의 주관적 관점이 절대적이라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권위를 강요하고 기득권을 안정화 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애매한 이유에 비해 결과는 확실하다. 명단에 오른 사람은 학점, 공연, 학교생활에서 노골적인 배제와 소외를 당한다. 심할 경우 졸업 후에도 영향이 있다. 명단의 위력을 실감한 학생들은 처절한 자기검열을 통해 명단에 이름이 오르지 않기만을 바란다. 피해자는 휴학을 반복하거나, 학점을 포기하고 겨우 졸업해서 도망치듯 학교와 춤판을 등진다. 모든 블랙리스트의 목표는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암암리에 인식시켜 권력과 체제에 대한 비판을 못하게 하는 것이다. 판옵티콘 감시의 궁극적 목표가 죄수의 자기 감시를 끌어내는 것이듯 학교의 블랙리스트도 학교 권력과 권위에 대한 순응을 학생에게 내재화시킨다. 이런 내재화 습관은 졸업 후에도 남아서 무용계의 온갖 병폐를 고착화하고 심지어 이어받기까지 하는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번 블랙리스트 사태는 규모만 축소된 채 거울에 비친 대학 무용과의 모습이다.

 

블랙리스트 _이후

 

  블랙리스트 같은 장치는 권력자에게 언제나 유혹적이다. 이 사태를 통해 우리는 말뿐인 정의와 개인의 선의에 의지한 신뢰의 기반이 얼마나 허약한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유혹을 무력화하기 위해서 정의와 신뢰는 반드시 제도화해야 한다. ‘위원회가 재발 방지를 위한 법 제정을 주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우리 사회의 인권과 민주주의 기본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긍정적으로 변하는 것 못지않게 삶에 미세하게 파고든 블랙리스트의 신경망을 차단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무용계에 던져진 과제는 무겁다. 국가 범죄로 불리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는 적당한 계기가 있었고 구조도 드러나기 쉬운 것이어서 공식 문제가 됐지만, 무용계는 세상의 이목에서 비켜있고 구성원이 학연을 쉽게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문제가 드러나기 어렵다. 부산에서 몇 년 전 대학 강사가 학생과 졸업생 이름을 마음대로 출연자 명단에 넣고 페이백을 한 정황이 발각됐다. 배경에는 학교에 나오지도 않고 강사에게 자신의 역할을 맡긴 교수의 무책임과 이런 범죄행위를 관행으로 넘기는 무용계의 도덕 불감증이 있었다. 문제가 드러난 것은 그 관행을 거부한 졸업생 한명이 이 사실을 언론에 알렸기 때문이었다. 기사화된 이후 경찰이 내사를 착수했고, 조사가 확대되면서 부산무용협회까지 불똥이 튀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사건이 검찰로 넘어갔다는 것과 조만간 관련자들이 검찰 조사를 받는다는 등의 소문이 있었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사건으로 처벌을 받았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이 사건 후에 어떤 교수가 학생들에게 공연 때문에 특정 기간에 해당하는 수업의 수강 신청을 하지 못하게 지시하는 일이 있었지만 그것도 흐지부지 해졌다. 이런 식으로 사건이 마무리 되는 것은 학연에 얽힌 학생들을 더욱 위축시킨다. 이미 무용계의 20, 30대에까지 파고든 권위에 순응하는 관행 위에서 블랙리스트는 힘을 발휘한다.

 

   이번에 발간한 백서가 문제의 해결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가 드러났고 해결을 위한 노력이 시작됐다는 의미다. 벌써부터 보이는 관료사회의 반발과 무기력한 정부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는 사회의 무관심은 앞으로 블랙리스트 해결의 길이 멀고 험난하다는 것을 예고한다. 우리 무용계는 방관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더욱 적극적으로 사태 해결을 위한 길에 함께할 것인가? 무용계 내부 문제를 드러내고 치유하는 길도 이 선택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젊은 춤꾼과 소장파 이론가들이 문제를 노출하려는 노력을 곳곳에서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용계의 블랙리스트는 여전히 안녕하다





이상헌(춤비평, 문화기획 이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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