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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_ Re-collection


2015년 1월
2015.01.28
신무용의 선구자이자 최승희의 라이벌 배구자 (1905-2003)



[사진1] 무용가 배구자


 한국 ‘신무용’에 대해 거론할 때 누구나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은 바로 최승희일 것이다. 그러나 최승희 못지않게 신무용사에 있어서 중요한 인물로 배구자(1905~2003)를 꼽을 수 있다. 배구자는 여러 가지 이유로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어 그녀에 대한 연구의 양도 최승희의 것과 비교했을 때 절반에도 못 미치는 실정이다. 그 중 한 가지 이유가 바로 그녀의 출생에 대한 정보가 다소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언제, 어디서,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났는지에 대해 몇 가지 가능성만 열려있을 뿐, 지금까지 분명한 사실로 밝혀진 바가 없다는 점은 그의 삶을 조명하는데 있어서 큰 제한점으로 작용해왔다. 그 중 가장 유력한 설에 따르면 배구자는 1905년 경성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보통학교를 재학하였다는 설이다. 그 후 12살이 되던 해에 그녀는 일본의 유명 곡예단인 덴까쯔에 입단하여 본격적인 무용학도의 길을 걸었으며, 경성을 비롯한 세계 각국을 순회하며 스타무용수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사진2] 철거 전 동양극장의 모습


 이렇듯 스타무용수로서 승승장구하고 있던 시기인 1926년 6월 3일, 배구자는 덴까쯔 곡예단의 평양 공연 도중 돌연 곡예단을 탈출하여 경성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후 배구자는 호텔 지배인 출신의 홍순언과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는데, 이는 예술가로서 그녀의 인생에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결혼 후 배구자는 활발한 개인 작품 발표뿐만 아니라 한국 최초의 무용 연구소인 ‘배구자 무용연구소’를 설립하여 한국 전통무용을 현대화하고 서양의 무용을 한국적으로 수용, 재해석하여 널리 알리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배구자는 국내활동은 물론이고, 당시 일본의 유명흥행사와의 계약을 통해 1년간 일본순회공연을 할 정도로 예술가로서 입지를 단단히 굳히며 활동영역을 넓혀갔다.


 순회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해인 1935년 배구자와 홍순언은 한국 예술사에 길이길이 기록될만한 역사적인 업적을 남기게 되었는데, 이는 바로 국내 유일의 연극전문 극장인 ‘동양극장’의 설립이었다. 현재 문화일보 사옥이 자리 잡고 있는 서대문 충정로가 바로 동양극장의 옛터로, 이 극장은 홍순언의 죽음 후 재정난에 시달림으로써 영화극장으로 전락하여 끝내 철거되기 전까지 연극인들의 살아있는 산실로서 기능하였다. 동양극장은 신식 무대장치를 구비하고 있었으며 후진양성기능, 기존의 부조리한 관행에서 벗어난 월급제도 실시 등을 통해 연극인들의 묵은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극장으로 평가되며, 2001년 6월 <동양극장>이라는 드라마로 방영되어 재조명 된 바 있다.



[사진3] 춤추는 배구자의 모습


 배구자와 최승희는 서로 닮은 듯 다른, 다른 듯 닮은 삶을 살았다. 따라서 이들의 삶을 다양한 측면에서 대조해보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최승희는 유복한 엘리트 가문에서 나고 자란 반면, 배구자는 보통학교를 간신히 나왔다는 점에서 출생과 성장, 교육 환경의 차이점을 갖는다. 또한 최승희의 남편 안막은 일본 유학파 지식인이었던 반면, 배구자의 남편 홍순언은 보통학교 출신의 호텔 지배인이었다는 점에서 그녀들의 예술 활동에 미치는 영향 또한 서로 다른 형태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동양극장 건립에 참여했던 최독견의 말에 따르면, 배구자는 최승희의 큰 키와 매끈한 다리를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다고 하는데, 이를 통해 두 사람의 외모적 조건에서도 상당한 차이가 있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배구자는 해방 전에 이미 은퇴를 선언하였으나 최승희는 월북 후 숙청되기 전까지 활동을 지속했다는 점에서 또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한편, 배구자는 미국, 최승희는 북한에서 말년을 보내게 되었음으로 두 사람이 서로 이유는 달랐지만 타국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점에서 공통분모를 형성한다. 이러한 공통점은 배구자와 최승희의 예술 활동 행보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두 사람 모두 일본에서 무용을 배우고 첫 활동무대로 삼았다는 점, 귀국 후에도 국내외 순회공연을 활발히 했다는 점 그리고 각각 포리돌과 콜롬비아 음반사를 통해 음반을 취입, 발매 하는 등 악과 무에 능통했다는 점에서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었다.


 배구자와 최승희는 이와 같이 서로가 지닌 공통점과 차이점을 바탕으로 그동안 ‘시대의 라이벌’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공통점과 차이점 그리고 우열을 가리기에 앞서, 후세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신무용의 선구자로서 그녀들이 남긴 발자국의 무용사적 역할과 가치를 동등한 입장에서 조명하고 평가함으로써 어느 한쪽이 부풀려지거나 혹은 가려지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글_신찬은(성균관대 예술학협동과정 석사2기)


    
참고문헌:
전은자, 이재연(2005), 신무용 기점에서 본 배구자 연구, 『대한무용학회 논문집』, 제45호.
이영아(2012.11.5), “선택! 역사를 갈랐다(33)배구자와 최승희”, 서울신문.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1105021002

사진출처:
[사진1]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1105021002
[사진2]
http://www.epnews.net/news/news_print.html?section=81&category=84&page=37&no=9065
[사진3]
http://www.epnews.net/news/news_print.html?section=81&category=84&page=37&no=9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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