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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_ Re-collection


2016년 2월
2016.02.29
이념을 초월한 세기의 춤꾼 미하일 바리시니코프(Михаил Николаевич Барышников, 1948-)



 영화 <백야(White Nights, 1985)>에서 한번에 11바퀴의 피루엣(pirouette)을 멋지게 도는 발레리노 미하일 바리시니코프를 기억하는지?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혹시나 그의 모습에 매혹되어 발레에 입문한 사람은 없는지…. 1980년대 우리나라에서는 실제로도 그가 이 영화의 주인공과 같은 운명을 겪은, 구소련에서 춤을 위해 망명한 무용수라는 그의 존재가 더 부각되었다. 요즘 세대들에게는 미드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에서 캐리를 파리에서 하염없이 외롭게 만들었던 러시아 남자친구라 말하면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그의 춤에 대한 열정은 여전히 뜨겁다. 발레를 넘어 융복합 공연과 왕성한 예술활동을 펼치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05년 뉴욕 맨해튼에 BAC(Baryshnikov Arts Center)를 건립하여 젊은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그는 망명 전 구소련에서만이 아니라 세계현대무용사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바리시니코프는 1948년 리가(현재 라트비아의 수도)에서 태어나 리가발레학교에서 수학하였다. 그는 1964년 라트비아 오페라 발레단의 일원으로 레닌그라드의 키로프극장(현 마린스키극장)에 순회공연 당시 극장관계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당시 그의 춤을 본 극장관계자들과 관객들은 ‘춤의 신’이 나타났다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그 이후 그는 레닌그라드 발레학교로 전학가게 되고 1967년 졸업과 동시에 키로프 발레단(현 마린스키 발레단)에 입단했다. 그가 출연하는 공연의 표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웠다고 하니 그의 인기는 현재 한국의 K-POP 스타들 못지않았던 듯하다. 그러나 당시 소련사회는 예술가들의 창작물을 철저히 검열했고, 특히 당시 키로프극장은 사회주의 정권을 옹호하는 보수세력들의 집합체로 더욱 규제가 심했으며, 바리시니코프의 새로운 작품에 대한 검열은 유독 엄격했다.


 그 이유는 공연예술이 거부감 없이 관객들에게 쉽게 전달되고, 그 파급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에 소련정부는 공연예술을 사회주의 이념을 전파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련사회의 모든 공연예술은 사회주의예술창작이념인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틀 안에서 창작되어야만 했다. 스탈린사후 이런 예술작품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예술은 국가의 철저한 통제 안에서 창작될 수 있었다.




 소비에트사회에서 그가 마지막으로 출연한 작품은 <다프니스와 클로에(Дафнис и Хлоя 1912)>, <돌아온 탕아(Блудный сын, 1929)>이다. 이 작품들은 현재 신고전주의양식으로 그 작품성이 높이 평가되고 있음에도 1974년 키로프 극장공연에서 극장 예술평가회의 혹평을 받고 바리시니코프는 심한 슬럼프에 빠져 며칠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두문불출 했다고 한다. 사실 이 평가회에는 그를 옹호해 줄 비평가들의 불참으로 작품의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소지가 있다. <다프니스와 클로에>의 첫 장면에 그리스 조각상처럼 앉아있는 바리시니코프의 모습은 한편의 시를 춤으로 표현했다는 극찬을 받았다. 그러나 국가이념에 맞지 않은 작품에 대한 철저한 통제로 인해 바리시니코프는 문책, 자아비판, 사상교육 그리고 끊임없는 청문회를 감당해야 했다. 그는 커가는 창작욕과 그것을 펼칠 수 없는 현실과의 괴리감에 괴로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바리시니코프는 1974년 6월 볼쇼이발레단 단원들과 캐나다, 남미 순회공연 중에 토론토공연을 성황리에 마치고 공연장을 떠나는 관객들의 인파 속에 묻혀 사라졌다. 그 날 밤, 그를 찾기 위해 투입된 KGB요원들이 삼험한 탐색전을 벌였지만, 화려했던 7년간의 키로프발레단 생활은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이 사건으로 레닌그라드는 한동안 공황상태에 빠졌다고 한다.




우리에게 정말 안타까운 일은 바리시니코프가 뉴욕에서 춤을 추고 있다는 것이다.

– 바짐 주크(Vadim Zhuk)의 “떠나간 친구들을 위한 노래” 중에서 –


 현재까지 그의 활동만을 보더라도 그가 세기의 무용수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때문에 어쩌면 소비에트 정권도 그의 대중적,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통제력을 잃고, 그가 스스로 망명을 선택하도록 몰아간 것은 아닐까? 무용수로써 또 한 사람의 인간으로써 고국을 버리고 망명을 선택할 만큼 춤이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망명 후, 자본주의적 입장에서 그를 “춤을 위해 조국을 떠난” 다분히 극적이고 미화된 조명을 한 것은 아닌지. 특히, 한국사회에서 그에 대한 관심은 그의 탁월한 재능도 있었지만, 당시 소련이라는 갈 수 없었던 나라에 대한 막연한 신비감과 환상, 또는 반공사상의 대표적인 예로 이용되며 그의 유명세에 한 몫 한듯하다. 수많은 구소련의 예술가들이 서방 세계로 망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바리시니코프는 유독 전 세계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 배경에는 대중에게 주목받기 쉬운 화려한 발레라는 장르가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춤을 잘 추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는다. 항상 자신이 추었던 춤보다 더 나은 춤을 추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


 바리시니코프는 체제나 이념, 그를 장식하는 화려한 수식어보다는 단순히 무대에서 자유롭게 춤추기를 간절히 원했던 한명의 무용수가 아니었을까 한다.



글_ 양민아(한국춤문화자료원 공동대표)


사진출처: Михаил Барышников(미하일 바리시니코프) (2005), BAC


사진1_

Михаил Барышников(미하일 바리시니코프) (2005)
사진2_
Михаил Барышников(미하일 바리시니코프) (2005)
사진3_
Михаил Барышников(미하일 바리시니코프) (2005)
사진4_
Михаил Барышников(미하일 바리시니코프) (2005)
사진5
BAC
사진6_
Михаил Барышников(미하일 바리시니코프) (2005)


* 이 글은 2012년 11월 ~ 2013년 3월까지 인문공감의 인문학 칼럼에서 <춤과 권력>이라는 주제로 연재했던 글을 수정·보완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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