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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_ Re-collection


2016년 5월
2016.05.30
러시아 마지막 황제의 여인, 마틸다 크셰신스카야(Матильда Кшесинская, Mathilde Kschessinska,1872-1971)


[사진1] 마틸다 크셰신스카야

 1917년 10월 레닌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저택의 발코니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켰다. 그 저택이 발레리나의 집이었다면 놀랄 일일까? 지금이야 그럴 수도 있겠으나, 당시 러시아에서는 발레리나가 시내 중심가에 저택을 갖는 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이는 그 발레리나가 마틸다 크셰신스카야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진2] 크셰신스카야 자택 발코니에서 혁명을 일으키는 레닌

 프랑스에서 예술로서 정립되었던 발레는 19세기 러시아로 옮겨와 황실예술로서 황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따라서 유명한 발레리나들은 황실 가족들 그리고 귀족들과 특별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고, 사회적인 특권을 누리며 살 수 있었다. 당대를 풍미했던 발레리나 중 안나 파블로바(А́нна П́авловна, Anna Pavlova, 1881-1931)가 잘 알려져 있지만, 당시 러시아에서 최고의 인기와 권력을 누리며, “발레의 여왕”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사람은 바로 마틸다 크셰신스카야였다. 그녀는 언제든지 그녀가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역할로 무대에 설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모든 관객과 황실의 사랑, 특히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II세(Николай II Александрович, Nicholas II Aleksandrovich, 1868-1918) 의 특별한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여왕 부럽지 않은 권력을 누렸다고 한다. 4년 동안 니콜라이 II세가 그녀가 출연하는 발레를 단 한번 도 빼 놓지 않고 모두 관람했다는 사실 만 보더라도 그녀에 대한 애정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혁명 이후, 그녀는 프랑스로 건너가 100세에 가까운 인생을 살면서, 마고트 폰테인(Margot Fonteyn,1919-1991), 모리스 베자르(Maurice Béjart,1927-2007)등 세계적인 발레리나와 안무가들을 배출하며, 발레예술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과연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그녀만의 비법은 무엇일까? 현대의 미의 기준에 비교한다면 150cm의 작은 키에, 통통한 편이며, 짧다 싶은 근육질 다리를 소유한 그녀는 발레리나로서 최악의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얼굴이 빼어나게 예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만이 가진 매력, 에너지, 지성미가 사람들을 매료시켰고, 또 인간적으로는 열린 마음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능력이 탁월했다고 한다. 이와 더불어 무대에서는 관객들의 반응에 따라 이런 요소들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줄 아는 발레스타가 아니었나 싶다.


[사진3] 크셰신스카야

 이렇듯 그녀가 절대 매력의 소유자라는 것은 부인 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다. 그러나 그녀를 그렇게 무대에서 빛나게 해준 또 다른 요소가 있다. 비록 신체조건은 좋지 않았지만 챔피언이라고 불릴 정도로 강도 높은 춤 연습을 강행했고, 혹독한 다이어트로 철저한 자기관리를 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그녀가 졸업한 황실 발레학교(현, 바가노바발레학교)에서는 지금까지도 전해지는 그녀의 어록이 있다.

 “나는 무대에 서면 내가 사랑하는 단 한사람을 위해 춤을 춘다고 생각하며 춤을 춘다.”

 이러한 숨은 노력이 있었기에 그녀는 관객들 뿐만 아니라 당시의 러시아 최고의 권력과 명예를 가진 사람들의 총애를 한 몸에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그녀에 대한 소문은 그녀의 인기만큼 무성하다. 니콜라이 II세가 그녀에 대한 사랑으로 그의 궁전(현, 에르미타쉬박물관)부터 그녀의 집에 지하 터널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나, 레닌이 그녀에게 여러번 구애했지만 결국 실패했다는 이야기 등등 크셰신스카야와 유명인들과의 열애설은 끊이지 않았다. 그 어느것도 사실로 확인 된 바는 없다. 그녀의 춤에 대한 열정과 노력이 무대에서 그녀만의 매력으로 표출되어 그녀에게 인기와 권력을 가져다 줄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한다. 현재 그녀의 저택은 레닌이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킨 장소를 기념하기 위해 정치학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고, 한켠에 크셰신스카야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2-4 Kuibysheva St.,Saint-Petersburg)


[사진4] 크셰신스카야 기념관


[사진5] 크셰신스카야 저택의 발코니

 갑자기 마치 한 부모 밑에서 나온 것 같이 얼굴이 구분되지 않는 한국 연예인들이 떠오른다. 최근 한류 열풍과 함께 연예인이 인기 직업으로 떠오르면서 성형이 마치 연예인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으로 자리잡았다. 그 보다는 크셰신스카야처럼 오히려 자신의 개성과 매력, 그리고 열정을 가지고 끊임없이 노력하면 실력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글_양민아(한국춤문화자료원 공동대표)

*이 글은 2012년 11월 ~ 2013년 3월까지 인문공감의 인문학 칼럼에서 <춤과 권력>이라는 주제로 연재했던 글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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