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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_ Re-collection


2017년 8월
2017.09.14
한국 발레의 첫 걸음 - 한동인(1922-?)과 서울발레단
 한국발레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근대 시기 단편적으로 발레의 흔적이 나타나지만 전면적이지 못하였고, 대중도 단순하게 서양춤이라 인식하여 발레는 제대로 수용되지 못하였다. 한국 발레의 본격적인 출발은 해방 공간 그리고 한동인에 의해 출발한다.

 한동인은 일본에서 엘리아나 파블로바 등에게 발레를 배우고, 해방 이후 한국에서 발레 활동을 시작한다. 그는 1945년 조선무용건설본부의 일원으로, 1946년 조선무용예술협회의 발레부 위원으로 참여하여 적극적으로 새로운 한국무용 건설에 이바지 한다. 해방 이후 발레인들이 조직 활동이 많았는데, 기반이 없던 발레인들에게 조직적 연대의식이 필요하였고, 발레의 속성상 집단의식이 요구되었기에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이즈음 진수방, 정지수, 한동인 이 세 사람이 합동 공연(국제극장, 1946.3.23.-24)을 펼치는데 이러한 움직임은 발레의 본격적 신호탄으로 볼 수 있다. 이후 한동인을 중심으로 정지수 등이 결성한 서울발레단은 이 땅에 제대로 된 발레의 첫걸음으로 의미가 있다.


[사진 1] 1946년 10월 10일 한성일보

 서울발레단은 1946년 10월 창단공연으로 <공기의 정>(라실피드, La Sylphide)을 무대에 올린다. 이들이 첫 작품으로 낭만발레를 선택한 것은 이들에게 있어 아직까지 장막 발레를 올릴 수 있는 기반은 부족하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발레의 진수를 보여줄 수 있는 레퍼토리를 고민하였을 것이고, <라 실피드>는 대중에게 발레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가장 적합한 레퍼토리로 수용된 것이다. 이 공연은 한국에서 올린 제대로 된 클래식 발레의 첫 공연이었다 할 수 있다.

 그들의 두 번째 공연은 1947년 서울 부민관에서 열리는데, 이 공연은 당시 사회 전 분야를 정리하여 기록한 『조선년감』에 <건설무용제>, <정인방무용회>, <조택원 도미공연>, <진수방 창작공연>과 함께 주목할 무용 공연으로 소개되었다. 레퍼토리를 보면 <사신과 소녀>, <민족의 피>, <장렬> 등 창작 발레 중심이었는데, 발레가 지닌 고정관념인 낭만성과 환상성에서 벗어나 사회적 전형성을 발레를 통해 구현할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준 공연이었다.


[사진 2] 1950년 6월 24일 한성일보

 1948년 세 번째 공연은 <호두까기 인형>, <블루렛>, <인어> 등의 다채로운 색깔의 레퍼토리에 도전하였고, 1949년 네 번째 공연에서는 <꿩>에서 한국적 소재를 바탕으로 창작 대본, 창작 음악으로 꾸미는 등 더욱 진일보된 형태로 나아가고 있었다. 또한 <장미의 정>(Le Spectre de la Rose)을 공연함으로써 창작과 클래식 발레의 도전을 통해 대중에게 새로운 가치를 여는 지평을 열어주었다. 마지막 공연이 되어버린 5회 공연은 1950년 6월 24일부터 26일까지로 <장미의 정>, <화려한 원무곡> 그리고 안데르센 동화 <인어공주>를 무대화하였는데, 서울발레단이 대중에게 익숙한 이야기를 통해 발레의 대중화에 힘쓴 모습의 일면이라 할 것이다.

 이렇듯 서울발레단의 공연은 레퍼토리 선정에 있어서 매회 주제가 있는, 의미 있는 공연을 선보였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다. <공기의 정>, <호두까기 인형>, <장미의 정> 등 고전발레부터 제2회 공연처럼 사회성 짙은 주제 그리고 창작 발레까지 매년 정기 공연을 계획하고 전문화된 공연을 펼쳤다는 점에서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한동인은 한국전쟁 이후 북한으로 가고 1950년대 임성남에 의해 한국 발레의 기틀은 새롭게 재편되어 토대를 만들어간다.


글_ 김호연(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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