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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2018.09.03
소리와 춤을 겸비한 소고춤의 명인 안채봉(1920-1999)

            
                                       [사진]안채봉 소고춤
 

  한국의 전통춤의 중요 흐름 하나는 교방춤이다. 교방춤은 조선시대 지역의 교방에서 생성된 여러 춤과 이후 이것이 해체되며 기생조합 등으로 파생되어 이어온 춤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명칭이다. 여기서 추던 춤들은 정재부터 민속춤, 창작춤까지 다양하게 전승되었고, 지역의 색깔이 덧붙여지며 집중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 익힌 예인들은 대부분 소리와 춤이 모두 능하였고, 여러 종목을 수준 이상으로 연행(演行)하였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안채봉을 있다. 안채봉은 1920 전남 나주에서 태어났다. 채봉은 예명으로 본명은 안성자이다. 그는 대대로 예술을 가까이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13세에는 광주권번에 들어가 임옥돌, 조몽실, 박동실에 소리를 배웠고, 박영구에게 승무, 검무, 살풀이춤 등을 사사하였다. 당시 권번이나 기생학교에서는 체계적인 교육 형태를 가지고 예인을 양성하였는데, 대부분 소리의 비중이 높아 저학년부터 꾸준하게 교육을 받았고, 춤의 경우는 어느 정도 음악을 익힌 춤에 입문하는 과정을 거쳤다. 안채봉도 이러한 교육과정에 따라 소리와 춤을 함께 익힐 있었는데 이러한 배경에서 1988년에 광주 무형문화재 6 춘향가 서편제 보유자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그를 상징하는 대표성으로 소고춤을 있다. 그는 권번에서 여러 춤을 배웠는데, 살풀이춤과 소고춤을 결합시켜 안채봉류 소고춤을 만들어냈다. 춤은 진양, 중모리, 중중모리, 휘모리로 이어지는데 변화무쌍한 장단이 따르면서 경쾌하고 발랄한 소고장단과 김오채의 걸쭉한 장구장단이 만나 남도 특유의 구성진 매력과 신명을 끌어 올렸다(국립문화재연구소『입춤한량무검무』, 국립문화재연구소, 1995, 167).



  이러한 형태는 입춤 형식이 개성을 드러내며 새롭게 전통화로 나간 형태이다. 입춤은 모든 춤의 입문 과정에 놓이는 춤이다. 그렇기에 딱히 어떠한 형식이나 내용이 있는 춤은 아니다. 예전에는 즉흥무, 허튼춤, 굿거리춤, 수건춤, 살풀이춤의 형식도 포괄적인 입춤 형태로 받아들여지기도 하였다. 안채봉의 소고춤도 살풀이춤과 소고춤이 결합된 형태로 진양조, 중모리, 중중모리, 휘모리로 장단으로 이어지는데 진양조에서는 살풀이춤을 형식을 잠시보이다가 중모리에서는 빠른 장단에 맞추어 소고를 들고 춤을 춘다. 이어 휘모리로 이어지면서 곱추춤을 추고 중모리 장단으로 맺음을 보인다.



  이 춤에 대하여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보고서(1995)에서는 전라도 입춤 박영구 계열의 안채봉 소고춤과 굿거리춤으로 분류하였다. 이러한 형태는 정적인 구조와 동적인 구조의 결합이 즉흥적으로 나아간 것으로 김수악의 진주교방굿거리춤과 비교 차원에서 논의가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안채봉은 오태석, 임방울, 박귀희, 김소희 등의 소리꾼과 함께 국극사의 일원으로 창극 활동을 펼치다 한국전쟁 이후 광주에 정착하여 광주시립국악원에서 소리 사범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다가 1980년대 초반 서울 무대에서도 활동을 펼치는데, 1983 명무전에서 백남윤, 문장원, 우옥주, 송말선, 김오채 등과 함께 무대에 올라 소고춤을 선보이며 그의 응축된 실력을 발산하였다.



  그렇지만 그의 춤맥은 확대되지 못하였다. 그가 광주에 머물렀고, 소리를 전수하는데 전념하다 보니 그의 춤은 그의 명성만큼 이어지지는 못하였다. 이러한 측면은 소리만 문화재로 지정되어 춤의 재생산에 대한 여유가 없었음을 있다. 이는간혹 춤을 지도해 달라고 멀리서 찾아오는 이들도 더러 있는데 시간이 없어 해주지는 못한다”(국립문화재연구소, 『입춤한량무검무』, 국립문화재연구소, 1995, 169) 회고도 이러한 배경에 놓인다. 그의 기록은 『한국의 명무』(1985) 그리고 『안채봉 소고춤』(정범태 사진, 구희서 , 열화당, 1992)으로 출간되었고, 명무전 등을 비롯한 공연 영상들이 남아있어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신명과 해학적 모습을 발견할 있다

 


_ 김호연(문화평론가)


사진출처_ 사진1

경향신문 1990년11월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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