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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_ Re-collection


2018년 9월
2018.10.11
지역 정서의 서사적 구조를 통한 창조적 전통춤꾼 김수악(1926-2009)

진주는 교방춤의 전승이 유유히 흘러 온 곳이다이러한 전승 기록은 조선 후기 진주 목사 정현석이 쓴 「교방가요 」(1872)에 집약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이 책에는 연화대, 헌선도, 고무, 포구락, 검무, 선유락, 항장무, 의암가무, 아박무, 향발무, 황창무, 처용무, 승무 등 당대 진주 교방에서 행하던 전통춤이 흔적이 개략적으로 발견된다. 이러한 맥은 교방이 해체된 이후에도 일제강점기 권번을 중심으로 이어졌고, 지역적 특색과 원형을 간직하며 전승되었다. 



[사진 1] 경향신문 1985. 03. 17

 

  이러한 흐름 속에서 대표적 인물을 꼽자면 김수악(1926-2009)을 들 수 있다. 그는 경남 함양군에서 태어나 8세에 진주권번에 들어가 전통예술을 익히기 시작한다. 이 때 그는 춤과 소리를 배우는데 특히 최완자의 영향을 받아 진주검무와 향후 김수악류 전통춤인 살풀이춤, 진주교방굿거리춤, 그리고 논개살풀이춤 등을 집성하는 토대를 만든다. 


  먼저 그는 진주검무로 1967년 국가 무형문화재 기능자로 지정되었고, 1980년대 들어 그의 춤이 서울에서 추어지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였다. 김수악류 전통춤에서 대중적 인지도를 높인 진주교방굿거리 춤이 등장한 것도 이 즈음이다. 진주교방굿거리춤은 최완자의 굿거리춤과 김녹주의 소고춤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전통춤으로 처음에는 '기방 굿거리', '전통굿거리', '진주기방굿거리' 등으로 불리다가 1997년 경남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면서 지금의 이름으로 정착되었다. 



[사진 2] 동아일보 1967. 01. 26


  이 춤은 1996년 발간된 문화보고서에서 입춤의 한 형태로 분류되었다. 여기서는 최완자 계열의 김수악 굿거리춤이라 칭하였는데, 이러한 연원은 그가 권번에서 배운 살풀이춤, 굿거리춤, 수건춤, 덧배기춤이 춤은 뚜렷한 경계 없이 수용되었고, 장단의 중심이 굿거리장단인데서 연유되었다 할 수 있다. 문화보고서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춤은 굿거리 장단으로 무겁게 추다가 자진모리 장단으로 넘기면서 조금 빠르게 춘다. 마지막에는 다시 굿거리 장단으로 풀어 느리게 끝맺는다. 최근에는 김수악 자신이 자진모리 장단으로 추는 춤이 다소 가벼운 듯해서 그것을 빼고 굿거리 장단으로만 춘다고 한다. 의상은 남색 치마, 노랑 저고리, 남색 끝동에 자주 고름을 단다. 남색 끝동은 귀부인들만 달았다는 풍습으로 기녀들도 귀부인과 같은 자태를 드러내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 한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입춤한량무검무 」 , 국립문화재연구소, 1996, 27.)

 


  여기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아직까지 소고춤이 결합된 형태는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굿거리춤과 소고춤이 결합된 형태는 당대 춤꾼들이 어떤 일정한 형식에 의해 춘 것이 아닌 즉흥성에서 새로운 창조를 낳게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이는 진주 교방굿거리춤이 문화재로 지정되는 과정과 공연예술로 무대에서 정제되는 과정에서 일정한 서사구조와 구성이 이루어졌고, 이것이 현재의 형태로 완성이 이루어진 것이다. 


  또한 논개살풀이춤은 그를 상징하는 춤 중 하나이다. 이 춤은 진주의 상징적 의기(義妓)인 논개를 주체로 하여 창작된 것으로 원래 무용극 <논개의 얼>에 나오는 춤을 발췌하여 작품화한 것이다. 이 작품을 만든 배경에 대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그러니까 내가 그분을 위대하게 아니까, 그분의 거 그 역사에 있었어. 그 왜놈을 인자 유혹해가지고 물에 이렇게 할 때 그 석달 열흘을 독한 술을 자기 집에서 참 그 인자 하인들하고 맨들어가지고, 그래 그 의암 바우 우에 가서 인자 그걸 갖다 놓고 몇몇 간 장수들이 인자 그짰더라카데, 그 일본 왜적 그놈 죽일라고 모의인자 해서 그래서 그 우에서 인자 노랑 수건 붉은 수건 두 개를 가지고 인자 춤을 췄어. 노란 수건은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기고 빨간 거는 왜놈 일본 사람을 상징, 왜장을 상징헌 것이고.' (김수악 구술채록, 한국디지털아카이브)


  기존의 살풀이춤과 달리 빨간색과 노란색의 두 개의 수건을 들고 춘 살풀이춤 형태로 무용극이기에 상징적이면서도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한 장치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진주라는 공간의 지역적 특색을 드러내면서도 그의 삶만큼이나 극대화할 수 있는 모습으로 창조된 기호였다. 여기다 그는 가사를 만들어 무용극으로 만들었는데, ‘김수악의 구음은 도리깨도 춤추게 한다’는 말처럼 그의 작품에서는 구음이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여 작품의 형상화에서 관객과 호흡을 함께 하고 있다.


  그의 춤은 전통적 요소와 지역적 색채를 드러내는 특징을 지니며 창조적 행위를 통해 구현된 전통춤의 다양성 획득이란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글_ 김호연(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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