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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2019.02.21
한국무용을 통한 젠더의 교차, 이매방(李梅芳, 1927-2015)

우봉(宇峰) 이매방(李梅芳, 1927-2015)은 한국무용사에서 남성성과 여성성을 교차하여 독특한 예술세계를 만들어낸 인물이다. 그는 1927년 전라남도 목포에서 아버지 이경율과 어머니 조병림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매방이 성장하던 1930년대 당시 목포에서는 동춘연예단을 비롯한 근대적 연예물이 새롭게 들어오면서 크게 흥행하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성장한 이매방은 특히 어린 시절 목포와 광주의 권번에서 전통춤을 배우기 시작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여기서 그는 궁중의 교방여악(敎坊女樂)으로서의 고급문화의 성격과 민속춤으로서의 대중문화의 성격 모두를 체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진 1] 춤추는 이매방

 

   이매방은 이대조, 매란방, 최승희, 한성준, 진홍심 등의 무용을 통해 영감을 받으면서 자신만의 무용관을 만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이매방의 아명으로는 영길, 귀태, 규태 등이 있으며 현재의 이름인 매방은 중국 경극의 명인 매란방(梅蘭芳)’의 처음과 끝 글자를 따서 지어진 이름으로서 원래는 예명으로 사용하였으나 후에 가서 매방을 본명으로 호적 개명하였다. 1933년 이후 8년에 걸쳐 권번을 통해 무용을 연마하던 그는 뿌리가 있는 오래된 전통춤을 추고 있다는 자부심이 녹아있는 한국적 아름다움을 스스로 발견해 갔다. 당시 이매방은 승무, 검무, 입춤, 살풀이춤, 장고춤, 태평무, 한량무, 장검무 등을 폭넓게 익혔다.

 

   무엇보다 이매방은 남성이면서도 어떤 여성보다도 요염한 매란방을 롤모델로 삼아 남성성과 여성성을 초월한 인간의 아름다움 그 자체를 추구하였다는 점에서 굉장히 독보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무용가로서 그에게 중요했던 것은 젠더적 정체성이 아니라 그러한 이분법적 경계를 넘어선 미의 세계였기 때문이다. 이매방은 어렸을 때부터 남자애가 계집애 같이 예쁘다라는 얘기를 주변에서 늘상 들었다고 하는데, 그가 세상을 놀라게 했던 것은 어쩌면 타고난 천재성이 아니라 극단적인 수행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이매방은 암놈과 수놈, 남과 여, 동과 정, 밝음과 어둠, 해와 달, 음양의 조화로움 속에 맺고 풀고 어르는 춤사위의 맛이 바로 우리 춤의 정신인 거야라고 강조하면서 자신의 예술세계에 있어서 음양의 상생을 통한 조화를 강조한 바 있다.



[사진 2] 이매방이 손수 꼼꼼하게 기록한 우리춤의 춤사위 용어 기록

 

   해방 이후 이매방은 625 전쟁으로 인하여 전란기를 거치면서 목포를 떠났고, 대구에서 군예대 소속으로 전국을 떠돌면서 순회공연을 하다가 군산에 자리를 잡고 무용연구소를 운영하기도 하였다. 이후에도 그는 광주, 부산, 서울을 다니면서 연구소를 운영하는 동시에 제자들을 양성하면서 이들과 함께 무용공연을 선보였다. 이매방은 한국무용의 춤사위 용어를 꼼꼼하게 기록하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이매방은 중요무형문화재 제27<승무> 및 중요무형문화재 제97<살풀이춤> 예능보유자이다. 그리고 그는 용인대학교 무용학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이매방은 세계 각국을 순회하면서 공연을 통해 한국무용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널리 알렸으며,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서 1998년 프랑스 예술문화훈장을 받았다.

 


_이진아(문화사 연구자)


사진 출처_

사진 1_춤추는 이매방( 『서울신문 』 201147일자).

사진 2_이매방이 손수 기록한 춤사위 용어(문철영, 『이매방 평전 』, 서울: 새문사, 2015, 179).

 

참고문헌_

문철영, 『이매방 평전 』, 서울: 새문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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