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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2018.11.06
한국무용의 글로컬 상징, 김백봉 (金白峰, 1927-현재)

김백봉(金白峰, 1927-현재)은 부채춤으로 대표되는 다양한 무용을 창안하여 한국무용사의 발전을 선구적으로 이끌었던 여성 무용가이다. 그녀는 1927212일 평양에서 부친 김병삼과 어머니 배보규의 7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본명은 김충실이다. 어려서부터 춤에 남다른 소질을 보였던 김백봉이 우연하게 혹은 운명적으로 최승희의 무용공연 포스터를 보고 무용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일화는 매우 유명한 것이다. 그녀는 14세 때인 19414월 진남포에 있던 최승희 무용 공연장을 아버지와 함께 직접 찾아가서 제자가 되기를 허락받고서 그해 일본으로 무용 유학을 떠난 것으로 알려진다.





  일본에서 혹독한 무용 수업을 거친 김백봉은 1943년 최승희 무용단의 대표적인 단원이 되어 조선과 일본을 넘어 중국과 만주, 동남아시아까지 순회하면서 세계적인 차원에서 무용 활동을 하였다. 이를 통해 그녀는 최승희 무용 계보를 정통적으로 이어받은 것이다. 여기에 김백봉은 1944년 최승희의 남편인 안막의 동생이었던 안제승(安濟承, 1922-1998)과 결혼하였다. 최승희안막은 해방 이후 월북하였고, 김백봉안제승은 우여곡절 끝에 한국전쟁 이후 월남하였다. 이로써 한국무용에 있어서 해방 이전과 이후를 연결하는 상징적인 존재는 최승희와 김백봉을 통해 비로소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김백봉은 1953년 서울에서 김백봉 무용연구소를 설립하였고, 19541126-28일 제1회 무용 발표회에서 <부채춤>, <칼춤>, <화관무> 등을 공연하였다. 김백봉 자신뿐 아니라 한국무용을 대표하는 부채춤이 처음 탄생된 순간이었다. 또한 그녀가 1956년 공연한 무용극 <우리 마을 이야기>는 고전적 기법과 현대적 감각의 무용적 결합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이후 1960-70년대에 걸쳐 그녀는 국내와 국외 차원에서 왕성한 무용 활동을 보여주었다. 근대 시기 한국무용의 토착화와 세계화가 동시적으로 가능할 수 있음을 제대로 입증한 무용가는 김백봉이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신무용의 르네상스를 이룩한 그녀는 그야말로 한국무용의 글로컬 상징이다.






   김백봉은 1950년대 미국 공보원의 후원을 시작으로 하여 정부 주관의 수많은 해외 무대에서 국제적인 문화교류의 대표자로서 활동하였다. 그녀는 1958년 한국친선예술사절단 안무자 겸 주역무용수, 1960년 한국학생문화사절단 지도위원, 1962년 한국민속예술단 안무자 겸 주역무용수, 1964년 도쿄 올림픽 파견 한국친선예술단 단장,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파견 한국민속예술단 안무자 겸 주역무용수, 1970년 일본 엑스포와 1972년 뮌헨 올림픽 국제민속예술제 지휘 등에 걸쳐서 중요한 중책들을 맡았다.

 

   김백봉은 경희대 무용과 교수로서 1965년부터 1992년까지 재직하였다. 이를 통해 그녀는 학문으로서 무용학의 정립뿐 아니라 무용 교육과 제자 양성에 있어서도 중요한 업적을 만들어낸 것이다. 김백봉은 1981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되었고, 1995년에는 김백봉춤보존회가 결성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1999‘20세기를 빛낸 예술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김백봉의 대표적인 무용 작품으로는 1947년의 <화관무> 이후 <선의 유동>, <광란의 제단>, <청명심수>, <부채춤> 등을 포함하는 600여 편에 달하는 작품들이 있다. 또한 2014년에는 서연호가 쓴 김백봉 평전인 『 김백봉신무용의 르네상스를 이루다 』가 출판되었다.





  

_이진아(문화사 연구자)

 

사진 출처_

사진1_김백봉의 2014년 공연 포스터

(https://blog.naver.com/relhel/220170514213).

사진2_김백봉의 1956년 공연 포스터

(https://blog.naver.com/merenguero/220308657247).

 

참고문헌_

김경애김채현이종호, 『 우리 무용 100년 』, 현암사, 2001.

서연호, 김백봉― 『신무용의 르네상스를 이루다 』, 도서출판 월인, 2014.

안병주, 『김백봉의 예술세계 』, 『무용예술학연구 』 15,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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