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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월
2019.04.01
한국 전통춤의 현대적 계승자, 조원경(趙元庚, 1929-2005)

  남성 무용가 조원경(趙元庚, 1929-2005)은 한국무용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1960-70년대 동안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한국의 고유한 전통춤을 서양 관객들에게 널리 알리는 데 커다란 역할과 기여를 한 인물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우면서 예술가의 꿈을 키웠고 서울대학교에 피아노 전공으로 합격하기도 했지만, 집안의 반대로 예술을 향한 꿈을 접고서 연세대 국문학과에 다시 입학하여 1953년에 졸업한 것으로 알려진다.



[사진 1] 『무용예술』의 앞표지


  

  한국의 극장무대에서는 활동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조원경에 대한 개인사나 예술 활동에 관해서는 자료가 적은 편이지만, 무엇보다 그가 남긴 무용예술(1967)』 이라는 책은 꼭 기억해 둘 필요가 있는 중요한 저서이다. 이 책의 목차를 살펴보면, 제1부에서는 “무용개론”, 제2부에서는 “한국무용야화”, 그리고 제3부에서는 “무용평・논집”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술 내용은 서양무용에 대한 개관에서 출발하여 한국의 신무용을 이끈 주요 인물들을 넘어 해외의 무용비평까지 넓은 범주에 걸쳐 상세한 서술을 담고 있다.

  

  조원경은 1960년부터 1975년까지 약 15년 동안 미국 각 지방의 대학과 박물관에서 9천여 회에 걸친 공연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워낙 공연이 많아서 당시로서는 매우 드물게도 전세 비행기를 타고 다녔다고 한다. 공연 스타일과 일정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1인극을 주로 하면서, 분장도 스스로 해결하였으며 특히 의상을 갈아입는 데 40초 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일정상 막간을 너무 길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옷을 최대한 빨리 갈아입는 방법을 터득하였던 것이다. 이송에 따르면, 조원경은 “해외 무대에서 돈을 번 사람은 최승희와 나 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에서도 지원금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활동해 왔다”라고 직접 밝히기도 했다.




[사진 2] 조원경의 뉴욕 공연 기사

  

  그는 또한 1969년부터 1990년까지 문학 작품을 모티프로 한 무용극 20여 편을 만들기도 했다. 조원경은 심청전 물레방아 감자 탈주병 등의 소설을 무용극으로 만들었으며, 윤사월 경의 밤 폭우의 백일몽  「비파행」 같은 시를 무용으로 창안하였다. 1982년 그가 독일 본에서 선보인 봉산탈춤은 러시아 최고의 발레 무용가 니진스키의 페트루슈카와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또한 여인의 모습을 극대화시킨 「주마등」으로는 마치 스웨덴의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가 춤을 춘 것 같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조원경의 해외 공연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그의 공연이 서양무대에서 단지 이국취미 혹은 오리엔탈리즘의 차원에서만 머무르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아마도 그가 무용연구와 저술, 강의까지 병행하면서 동양인을 향한 서양관객의 대상화된 시선을 훌쩍 넘어서는 수준까지 도달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쉽게도 그는 무용작품을 비디오테이프에 거의 담아두지 않았으며, 그 대신 자기 공연의 매순간을 포착하여 그려낸 크로키(croquis)들을 많이 남겼다고 한다.




글_이진아(문화사 연구자)


사진출처_

사진 1_『무용예술』의 앞표지(국회도서관 소장본).

사진 2_조원경의 뉴욕 공연 기사(『동아일보』 1962년 12월 1일자).


참고문헌_

이송, 『거장과의 대화: 예술가와 함께 하는 짧은 여행』, 서울: 운선, 2004.

조원경, 『무용예술』, 서울: 해문사,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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