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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2020.02.29
‘김용걸’이라는 과정 1




<Work> 시리즈 가운데 가장 최신작인 <Work 2s> 공연장면.


김용걸은 안무가가 없다’, ‘안무력이 빈약하다라는 우려와 한탄 섞인 진단이 내려지기 일쑤인 발레 분야에서 매우 왕성하게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안무가다. 2009년 가을 10여 년간 무용수로 활동하던 파리오페라발레단을 떠나 국내로 돌아온 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로 임용되어 교육자로 학생들을 지도하는 한편 김용걸댄스시어터라는 이름으로 활발하게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상복도 많아 2012년에는 <Work2>로 한국춤비평가협회 작품상을 받았고 <비애모>는 대한민국무용대상 군무 부문 베스트7에 선정되었다. 2013년에는 <Work2s>로 한국발레협회 올해의 작품상을, 2014년에는 <Inside of Life>로 무용예술상 안무상을 수상했다. 2017년에는 <Work2s>로 이데일리 문화대상 무용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산책>은 한국춤비평가협회 베스트작품에 선정되었다.


무용수 시절에는 국립발레단 간판스타로 발레 대중화 바람이 불기 시작한 90년대 후반 한국 발레 중흥기의 한 축을 담당했고, 또 파리오페라발레단 입단 후에는 그가 오르는 무대마다 한국 발레의 성장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은 국내 발레단에서 활동하며 직업무용수로 커리어를 쌓다 해외로 진출하는 것이 제법 자연스러운 모델이 됐지만 당시만 해도 해외 무용콩쿠르에서 입상한 뒤 콩쿠르 심사위원의 눈도장을 받아 해외 발레단에 입단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발레나 클래식 음악처럼 유럽을 본고장으로 하는 서양예술 분야에서 특히 식민지 감수성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선구자를 향해 최초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그가 국가대표라도 된 듯이 그 개인의 성취를 국가 전체의 성취로 치환해 기뻐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제국주의 시대가 끝나고 21세기로 넘어온 지 백여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는 이 식민지의 열등감은 성취에 대한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는 한편 성취의 의미를 정복전쟁이 끝난 자리에 꽂히는 깃발 정도로 축소시키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Work> 시리즈 가운데 가장 최신작인 <Work 2s> 공연장면.


파리오페라발레단 최초의 한국인 단원은 발레리노 김용걸을 수식하는 매우 영광스러운 이름인 동시에 국립발레단 출신 무용수가 파리오페라발레단에 입단했다는, 국립발레단 혹은 한국 발레의 성취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파리오페라발레단 최초의 한국인 단원이라는 거대한 수식어에 붙들린 채 그 뒤에서 김용걸이 어떤 색깔의 춤을 추었고, 그의 춤이 어떤 식으로 변해왔고, 그러한 춤의 변화는 그의 안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제대로 보지 못했다. 아니, 볼 수 없다. 우리는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춤이 어떤 것인지도 잘 모를 뿐 아니라 김용걸의 춤이 어떤지도 잘 모르기에.


그간 신작 활동이 왕성한 김용걸을 만나 작품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있긴 했으나, 그렇기에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바빠 오히려 뒷전으로 물러나기 십상이었던 춤과 안무에 대해 듣고자 그를 안무리서치에서 만났다.


 

김용걸이라는 화두, Work, 그리고 피나 바우쉬


그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만든 첫 안무작은 아니지만 대한민국발레축제 무대를 통해 가장 자주, 그리고 다양한 모습으로 선보인 <Work> 시리즈는 김용걸의 안무를 이야기할 때 시작점으로 삼아야 할 작품이다. 2011년 제1회 대한민국발레축제 공모공연으로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처음 선보인 <Work1>을 시작으로 이듬해에는 오페라극장으로 무대를 넓힌 <Work2>, 2013년에는 토월극장 무대 위에 올린 <Work2-1>, 2014년과 2016년에는 <Work2s>를 역시 토월극장에서 공연했다.


제목 뒤에 붙은 숫자가 변해가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공연을 거듭하는 동안 김용걸의 <Work>는 발레의 기본 동작이라는 제한된 틀 안에서 작품이 어떻게 확장되어 갈 수 있는지를 꾸준한 실험으로 보여주었다. 시리즈의 첫 작품인 <Work1>은 발레 무용수의 기본 중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바와 센터의 기본 동작들을 중심으로 안무가 짜여 있다. 김용걸은 파리오페라발레단에 입단했을 때 가장 크게 충격을 받았던 것이 우리나라 무용수와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무용수들의 기본기였다고 회상하며 줄거리나 춤을 추는 무용수의 감정은 가급적 배제하고 발레의 가장 기본적인 것에 집중하는 작품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 바로 <Work1>이었다고 설명했다.



<Work> 시리즈 가운데 가장 최신작인 <Work 2s> 공연장면.


이듬해 올려진 <Work2>에서 김용걸은 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클래식 발레 죽이기를 화두로 내세운다. 이 과격하면서도 선언적인 화두에 대해 묻자 그는 개인적인 고민이 출발점이 되었다는 매우 간단한 답을 내놓았다.


거창한 사고의 전환이 일어난 건 아니고 그 무렵이 제가 무용수의 길을 계속 가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을 때였어요. 타이츠를 입은 정직한 몸을 그대로 무대에서 보여주는 것은 전성기의 무용수라도 부담스러운 일이죠. 그 상태로 발은 포인을 해야 하고, 다리는 길어 보여야 하고, 정확한 포지션을 지켜야 하고, 테크닉은 극대화해서 보여줘야 하고한국에 돌아와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무대에도 서는 거라 예전보다 긴장감도 떨어지고, 나이가 들어 여기저기 아픈 곳도 생기고, 저는 자신 있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저를 보는 분들 눈에는 어떻게 비칠까. 제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면서 클래식 발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제가 발레로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출발점이 됐죠.”


클래식 발레리노였던 김용걸이 자기 자신의 몸으로 돌아가 몸을 새롭게 관찰하고 발견하면서 클래식 발레 죽이기라는 화두를 꺼내게 된 것은 <Work> 시리즈를 안무하면서부터지만 그가 춤에서 자기 자신이라는 주제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은 안무를 시작하기 전인 파리 시절부터다.



피나 바우쉬 안무작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체>에서 케르베로스 역을 맡은 김용걸.

2008년 가르니에극장. ⓒLaurent Philippe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체> 공연 준비를 할 때였어요. 공연 한 달 반쯤 전인가, 피나가 오기 전에 어시스턴트 두 명이 먼저 와 무용수 캐스팅을 해서 연습에 들어가는 일정이었어요. 캐스팅 오디션에서 나름 열심히 했지만 아쉽게도 세컨 캐스트를 맡게 됐죠. 세컨이라도 한 번은 공연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포기하지 않고 연습에 임했어요.”


그가 맡게 된 배역은 작품에서 오르페우스가 유리디체를 구하기 위해 방문한 지옥, 그 입구를 지키는 머리가 세 개 달린 괴물 개 케르베로스였다.


피나 앞에서 연습한 걸 보여주는 날이었어요. 퍼스트 캐스트가 먼저 하고 그다음에 제가 하고. 그걸 사흘이나 시키더라고요. 피나는 사흘 내내 이렇다 저렇다 말도 없이 연기하는 걸 보고만 있었어요. 그러고는 사흘이 지나서 캐스팅을 다시 한다는 거예요. 혹시나 하는 마음도 없었던 건 아니었는데 설마 하는 마음이 더 컸죠. 그런데 발표난 걸 보니 제가 퍼스트 캐스트가 됐더라고요. 공연이 2주 앞으로 다가와 있던 시기였는데요.”


그리고 연습 현장에서 피나 바우쉬가 던진 말은 그의 춤에 커다란 변곡점을 가져왔다. “Dance yourself”라는 한마디였다.


피나는 무용실에서 항상 담배를 피웠거든요. 그날도 담배를 피우면서 연습을 보고 있다가 킴, 하고 저를 부르더라고요. 제 연기에서 어떤 부분을 지적하는 게 아니라 나는 네가 이 역할을 얼마나 잘할지 기대를 해서 캐스팅한 게 아니다, 너라는 무용수가 좋아서 했다,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내가 원하는 건 네가 이 역할에 잘 어울리고 이 역할을 잘 표현해내는 게 아니라 너를 춤추는 거다, 네가 좋아서 캐스팅한 것이기 때문에 너 자체를 보고 싶다,라고요.”


너를 보여달라, 혹은 너를 춤춰라 같은 것은 사실 클래식 발레 무용수가 요구받지 않는 주문이다. 너 자신을 춤추라는 피나 바우쉬의 주문은 그야말로 김용걸이라는 무용수를, 그의 춤을, 안무에 대한 그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그는 자신이 완전히 바뀌었다라는 표현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체>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에서 인사하는 피나 바우쉬.

2008년 가르니에극장. ⓒLaurent Philippe


피나 바우쉬가 안무한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체>는 오페라 가수들과의 협업으로, 주요 배역들은 무용수와 가수가 21역으로 캐릭터를 소화하는 작품이다. (이 공연은 소프라노 임선혜가 유리디체 역으로 함께 무대에 올라 실황 영상이 DVD와 블루레이로 출시되어 있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 그와 함께 무대에 올랐던 동료들, 특히 가수들은 자신의 노래에 방해를 받을 정도로 김용걸의 춤에 몰입했다고 털어놓았다. 이 공연의 경험은 그의 춤은 물론 안무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조금 과장하자면 주역보다 더 주목을 받았다고 할 정도로 동료들의 엄청난 칭찬과 격려를 받았어요. 무대에서 저밖에 안 보였다고 말해주는데 너무 짜릿했죠. 그때부터 저를 서슴없이 드러낼 수 있게 됐어요. <백조의 호수>의 지그프리드라면 그 전까지는 지그프리드가 되기 위해 캐릭터를 연구하고 나 자신을 버리고 그 안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 이후부터는 지그프리드가 아닌 김용걸을 보여주기 시작한 거죠. 작품을 만들면서도 저를 중심에 놓고 제가 가지고 있는 것, 제가 할 수 있는 것, 제가 하고 싶은 것에서부터 출발하게 된 거예요.”

    


 * ‘김용걸’이라는 과정 2는 다음 연재에서 계속됩니다.


_윤단우(무용칼럼니스트)

사진제공_김용걸댄스시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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