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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_ 인문학적 춤읽기


2014년 9월
2014.09.24
춤과 미술


 "인문학적 춤읽기" 시리즈는 인문학을 통해 춤을 이해하는 시도이다. 춤의 근저에 자리한 인문학을 통해 춤을 심도있게 이해하고 춤미학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독자들은 이 시리즈를 통해 다양한 학문의 틀 속에서 춤을 인지하고 현재 춤의 흐름을 읽으며, 춤과 소통할 수 있는 각자의 채널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게재된 글은 2013년에 한국춤문화자료원이 기획하고 국립예술자료원이 주최했던 "인문학적 춤읽기" 강좌에 기초한다.

 



  춤을 다룬 미술작품을 살펴보는 일은 그것만으로 즐거울 뿐 아니라 춤에 대해 알아가는 훌륭한 방법이 되기도 한다. 미술은 일차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을 기록하는 행위에서 출발했기에 미술가는 일반인보다 더 예민한 눈, 정밀한 시선을 가졌다. 그래서 그들이 남긴 춤의 기록, 즉 춤을 다룬 미술작품들이 때로는 직접 춤 공연을 볼 때와 사뭇 다른 것들을 알려주며 특히 인류가 춤을 바라보았던 시선의 변천사를 이론적인 해설을 통해서가 아니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춤을 다룬 미술작품은 상당히 많으며 제작시기도 선사시대부터 오늘날까지 방대하게 펼쳐져 있다. 그 중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발견된 이 바위그림들은 춤추는 형상을 그린 최초의 그림군에 속한다. 구석기시대 유적에 남겨진 그림들인데 사람들이 들고 있는 도구가 비교적 정교한 편이어서 신석기시대가 막 시작될 무렵 제작되었으리라 짐작한다.



[그림1] 스페인과 프랑스의 바위그림들, 구석기시대


  위의 그림에서는 사람들이 활과 화살처럼 보이는 것을 들고 한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춤을 춘다기보다는 성큼성큼 뛰어가는 느낌이다. 아래 그림은 동물 가면을 쓰고 털가죽을 뒤집어쓴 사람들이 깡총거리며 뛰는 모습을 묘사하였다.


  이런 모습들은 오늘날 ‘춤춘다’고 할 때 생각하는 움직임의 유형과는 좀 차이가 있는데, 둘 다 사냥춤에 해당한다. 사냥하려하는 동물의 움직임을 흉내 내면서 사나운 동물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많은 동물을 사냥할 수 있기를 기원하며, 신적인 존재에게 무사히 사냥을 마칠 수 있도록 빌고, 사냥 행위를 모방하는 동작을 통해 실제 사냥에 나서기 전에 마음을 다잡으며 단결심을 키우고, 초보자에게 사냥법을 전수하려는 의도가 복합적으로 뒤섞여있다.


  그러니 이것은 즐기기 위한 춤, 춤추기 위한 춤이 아니다. 초기 인류에게 춤이란 오직 생활이나 생존과 밀착된 제의적, 주술적 행위였으니 당연하다. 그러나 원래의 의미나 의도가 어떠했든 인류역사 초기의 사냥춤은 우리 인간이 춤이라는 말을 만들어내기 전에, 그러니까 언어가 생기기도 전에, 아니 그게 춤이라는 사실을 의식하기도 전에 소리를 내면서 몸을 움직여 춤추기 시작했음을 알려준다. 


  이 그림을 보면서 또 하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무리지어 춤추었던 아주 초기에도 함께 춤추지 않고 그 모습을 그림으로 옮긴 사람이 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오늘날의 화가와는 목적이나 동기가 분명 달랐으리라. 이 그림들은 성소에 있던 것이므로 그림 자체에도 주술적 의도가 담겨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는 지속적인 몸의 움직임을 정지된 평면에 더 잘 담아내기 위해 고민했던 최초의 화가이며, 바로 그 순간 춤과 미술의 관계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서구사회가 기독교의 지배를 받으면서 춤은 상당히 다른 대접을 받게 되었다. 일반 민중들에게 확산된 춤은 이교축제와 관련이 많았고, 인간의 신체보다 정신을 우위에 놓았던 기독교의 시각에서는 몸으로 하는 춤이 곱게 보일 리 없었기 때문이다.


[그림2] 필리피노 리피 <이집트 황소 신 아피스의 숭배> 1500년경

[그림3] 티치아노 <바카날리아> 1519-20년


  르네상스기의 화가 필리피노 리피와 티치아노가 그린 이 두 그림은 각각 이집트에서 시작되어 지중해 전역으로 퍼진 황소신 아피스 숭배의식과 고대 로마에서 술의 신 바쿠스를 기리던 바쿠스제에 참여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들의 흥겨운 춤은 교회에서 ‘그릇된 춤’의 전형으로 꼽는 춤이었다. 둘 다 이교신 숭배와 관련이 있는데다 남녀가 뒤섞여 춤추다보면 흥분이 고조되어 유혹에 빠지기 마련이라 믿었던 탓이다. 이런 교회의 잣대에 따르면 바람직한 춤은 기껏해야 남성사제들이 추는 의식용 춤 정도뿐이고 나머지 춤들, 그 중에서도 여자와 추는 춤이나 여자가 추는 춤은 금지해야 하는 것이었다. 4세기에 ‘욕정의 눈빛으로 시끄럽게 웃으며 춤추는 너희 여자들은 젊은 남자의 욕정을 불러일으키려는 광란에 사로잡힌 것 같다.’고 했던 주교 바실리우스의 비난은 천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힘을 잃지 않았다.


[그림4] 피터르 브뤼헐 <결혼식 춤> 1566년


  그런다고 사람들이 춤을 추지 않을 것인가. 지배계층과 교회가 아무리 교리에 입각한 삶을 강조해도 농촌지역 민중들은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고수했고 당연히 춤도 계속되었다. 16세기 플랑드르 최고의 풍속화가로 농촌생활을 즐겨 그린 피터르 브뤼헐의 <결혼식 춤>에서 볼 수 있듯, 사육제 때, 오월제 때, 결혼식 때, 추수감사절에, 사람들은 윤무나 쌍쌍춤을 즐겼다. 남녀가 짝을 지어 춤추면 육욕의 죄악을 범하게 되리라던 교회의 우려는 브뤼헐의 그림에서 여자와 춤추는 세 남자의 바지 앞섶이 불룩 솟아오른 모습에 그대로 담겨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특별한 날이면 어김없이 춤판이 벌어졌고 사람들은 기꺼이 흥겨운 춤의 유혹에 온몸을 내맡겼다.


[그림5] 작자미상 <볼타 춤을 추는 사람들> 1582년경



[그림6] 니콜라 랑크레 <분수 앞의 춤> 1730-35년


  민속춤으로 자리 잡은 민중의 쌍쌍춤이 크게 인기를 끌면서 역으로 지배계급의 무도회장으로 옮겨가 사교춤으로 발전한 것도 순식간이었다.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여왕 1세도 민속춤에서 발전하여 격렬한 움직임이 많은 볼타 춤을 즐겼다 한다. 로미오가 줄리엣을 처음 만난 곳이 무도회장이다. 가련한 베르테르의 연인 로테도 첫 만남부터 자신이 사교춤을 좋아한다고 당당히 선언한다. 그리하여 18세기에는 춤을 금지하기는커녕 귀족자녀들이 필수적으로 사교춤 교습을 받아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그 춤판이 벌어진 곳이 무도회장이든 무대 위이든, 당연히 여성이 한가운데에 서게 되었다.  


[그림7] 작자미상 <‘라 실피드’의 마리 탈리오니> 1832년


  19세기에 전성기를 맞은 낭만발레는 그런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사람들이 인기 있는 여성 직업무용수의 춤을 보기 위해 극장으로 달려가곤 했기 때문이다. 그 뿐이 아니다. 이상적이고 낭만적이다 못해 공중으로 둥실 떠오르는 요정-여성상을 보여주는 낭만발레가 큰 인기를 끌자 탈리오니의 석판화처럼 여성무용수를 요정의 모습으로 담은 석판화가 많이 제작되었다. 오늘날 연예인의 사진이 팔리듯 당시에는 여성무용수의 석판화가 팔린 것이다.



[그림8] 귀스타브 모로 <헤롯 왕 앞에서 춤추는 살로메> 1874년


  역사 초기에 여자들의 춤은 변방으로 밀려났다. 그들의 춤은 남자를 유혹하고 파멸에 이르게 하는 춤, 바로 살로메의 춤이었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14장에서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춤을 추어 세례요한의 목을 자르게 한 ‘헤로디아의 딸’은 그로부터 얼마나 먼 길을 돌아왔을까?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여러 살로메들이 앞 다투어 문학의 다리를 건너와 캔버스 위에서 귀환의 춤을 추었다. 모로의 살로메도 정적 속에서 손에 연꽃을 들고 춤추기 시작하려한다. 아마도 헤롯왕이 있을법한 자리에서 우리는 그림-살로메를 바라본다. 
  보라, 그녀가 자기만의 춤을 춘다. 그러나 매혹은 바라보는 자의 몫이다.


글_ 신성림(작가, 번역가)
「춤추는 여자는 위험하다」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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