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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_ 니체의 춤 철학


2014년 12월
2014.12.30
니체의 몸, 예술생리학 그리고 현대무용 (XIV)

  편집자 주: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가 현대철학에 끼친 영향을 사람들은 흔히 지축을 뒤흔든 지각변동에 비유한다. 니체는 스스로 자기로 말미암아 세계사가 두 동강이 난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시대가 신봉했던 진리와 가치 체계를 전도시켰으며, 새로운 삶의 양식을 제시한다. 니체는 철학뿐만 아니라 현대예술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현대무용은 몸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한 니체의 철학에 엄청난 빚을 지고 있다. 니체 철학, 특히 그의 몸철학예술생리학이 현대무용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살펴보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아래의 글은 지난 97일 한국무용기록학회 주최로 이화여대에서 있었던 강연 원고를 바탕으로 한다.  




3. 니체와 포스트모던 무용 그리고 이후


 던컨 이후 새로운 실험을 거듭해오던 무용은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그 중에서도 무용에서 실험을 가장 급진적으로 수행한 안무가는 머스 커닝엄(Merce Cunnigham)이다. 커닝엄은 자신의 무용을 새로운 춤(New Dance)이라 명명하고 자신의 선배들의 무용과 선을 그었다. 그의 무용이 새롭다는 것은 그가 당시의 무용계의 주류였던 표현주의 무용을 거부한다는 점이다. 커닝엄은 내면 깊이 숨어있는 인간의 감정을 몸으로 표현하는 예술로 규정했던 기존의 춤에 대한 정의에 의문을 제기한다. 왜 무용이 반드시 어떤 감정, 의지 등의 의미를 전달해야 하는가? 행위와 행위의 간격은 의미가 연결시켜야 하는가? 행위에는 반드시 의미나 목적이 있어야 하는가? 이런 문제에 대해 커닝엄은 끊임없이 질문을 제기한다. 그가 이러한 물음을 제기하는 데는 물론 그가 교류하던 아방가르드 예술가 친구들의 영향 덕분이었다. 그가 교류했던 대표적인 전위 예술가는 케이지, 뒤샹, 앤디 워홀 등이다.


 커닝엄은 자신도 한때 깊이 몸담았던 표현주의 무용이 채워주지 못한 무용을 스스로 구축하는데, 그의 핵심 주장은 움직임이 무엇인가를 반드시 표현하거나 의미를 전달하는 수단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즉 움직임은 그냥 움직임뿐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움직임을 의도에 따라 조직할 것이 아니라 그대로 내버려둠으로써 더 깊은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그의 무용에서 다양하게 실험된다. 그는 움직임이 독립적이듯이 음악, 무대장치, 의상 등도 모두 서로에게 종속되어 있지 않고 독립적이라고 본다. 따라서 이 각각은 하나의 무대에서 서로 해체된 채로 존재한다. 따라서 관객이 그의 무용에서 하나의 줄거리를 찾거나, 무용의 장치들 간의 조화를 찾는 것은 허망한 짓이다. 비록 관객 개인은 그것을 찾을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은 관점을 요구할 수는 없다.


 커닝엄의 ‘새로운 춤’은 무용에서 특별히 채택되는 움직임과 일상적인 움직임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의 무용에서 무용수의 숙련된 동작이 아니라 걷기, 뛰기, 달리기와 같은 일상적 동작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이다. 따라서 그의 무용은 전통적 정의에서 무용이 아니다. 그는 무용과 행위의 경계를 해체했을 뿐만 아니라 무용의 구성도 전적으로 해체해버렸다. 그의 무용은 절대적인 우연성에 의지한다. 무용은 어떤 줄거리를 따라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의 맥락에 따라 전개된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무용을 ‘열린 장’(open field)으로 만들었다. 그의 우연성의 무용의 극단은 “움직임을 만들고 연결할 때 움직임의 템포와 방향, 움직임의 종류(달리기, 뛰기, 돌기)와 실시방법(군무, 독무)과 배역 등을 도면에 쓰고 그 위에 동전을 던져서 이들에 관련된 사항들을 결정하고 이에 따라 움직임을 구성하였고, 신체의 부위에 번호를 매기고 난 뒤 일련의 카드에 각 신체 부위를 지정하고 또 다른 세트의 카드에 각기 동작의 설명 또 공간상의 위치 등을 적어 넣은 뒤 그것들을 각기 뽑아서 움직임을 구성하는 것”에서 잘 드러난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뒤샹이 예술의 기준을 예술가가 선택한 것으로 보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움직임은 무용가에 의해서 의도되는 것이 아니라 발견된다. 이렇게 그는 우연성을 자신의 무용에서 적극 실험한다.


 커닝엄이 우연성을 무용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임으로써 야기되는 결과는 우선 움직임 자체에 모든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안무가는 춤의 주제, 역할, 사건에서 자유로워지고 동시에 동작과 동작, 동작과 무대장치, 동작과 음악이 우연히 충돌해서 의도하지 않는 새로운 상황이 펼쳐진다는 것이다. 관객들 역시 무용을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무대에서 펼쳐지는 각각의 독립된 무용의 요소들이 우연적으로 충돌하여 만들어진 상황을 자기 식으로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능동적 관람자로 만든다. 더 나아가 관람객의 반응이 무대를 변화시킬 수 있다. 이렇게 무대와 관람객의 적극적인 상호 개입으로 무용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커닝엄의 무용은 공간과 주제의 중심을 해체하였을 뿐만 아니라 시간마저도 상황에 따라 늘이거나 줄이고 무대와 관객의 돌발적인 행동도 용인함으로써 자신의 무용을 완벽한 열린 장으로 삼았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모든 움직임은 무용이다”라는 자신의 친구 케이지의 입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커닝엄의 무용에서의 실험은 기존 무용계에서는 큰 충격이었지만, 관객들과의 거리를 좁혔고, 무용에서 매너리즘을 몰아내고 상상력을 꽃피게 했다. 그의 이러한 실험정신은 무용계에서도 점점 더 많은 동조자를 만들어갔고, 1970년대 이후 무용계에서 확실한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


 커닝엄과 니체의 관계는 우선 그가 교류했던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는 니체주의자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는 표현주의 화가 에른스트와 교류하면서 현대회화를 이해하게 되었고, 현대 아방가르드 작곡가이며 니체의 철학에 깊이 공감했던 케이지와 만나 뉴욕에서 매년 공동으로 공연을 가졌다. 그는 니체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은 뒤샹과 워홀(Andy Warhol)을 통해 전위 미술을 배우게 된다. 뿐만 아니라 그가 신무용에서 채택한 ‘열린 장’이념이나 ‘우연성’의 정신은 니체의 예술생리학의 이념과 다르지 않다. 그가 행위의 과정을 목적보다 더 강조했다는 점, 무용에서 의미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발견된다는 점, 무대를 하나의 끊임없는 놀이의 과정으로 본 점 등은 니체의 생각과 전적으로 일치한다.


 독일의 현대무용가인 피나 바우쉬(Pina Bausch)의 ‘탄츠테아터(Tanztheater)’에서도 우리는 니체의 영향을 읽을 수 있다. 그녀는 독일 표현주의 무용을 새롭게 해석하여 독일식 현대 무용을 창조한다. 바우쉬는 전통 양식의 해체를 통해 무용의 지평을 넓혔다. 탄츠테아터라는 말에서 우리는 그의 무용에 깃들인 연극적 요소를 읽을 수 있다. 그녀의 실험에 직접적으로 영감은 준 사람은 연출가 스타니슬라브스키(Stanislawsky)와 극작가 브레히트(Brecht)이다. 바우쉬는 자신의 무대를 순수한 무용과 연극의 요소가 넘나드는 장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녀가 차용한 연극적 요소는 하나의 줄거리를 따라 진행되는 전통적 방식의 연극과는 다르다. 바우쉬는 몸으로 경험하는 구체적인 삶과 일상, 사람마다 다른 천차만별의 시각이 살아 숨쉬는 그대로의 세계를 무대에서 표현한다.


 바우쉬는 사회와 문명 비판적 주제가 강한 작품을 자주 무대에 올렸다. 특히 인간의 소외, 고독, 불안을 꼴라주 형태로 재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춤의 주제가 일관되기 보다는 일상적인 것과 사회적․역사적인 것이 혼란스럽게 대비되고 중첩되었고,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도 즉흥적 실험의 형태로 조립되었다. 탄츠테아터에서 춤과 연극의 핵심 코드는 차이의 정신이다. 바우쉬의 탄츠테아터의 무대에는 개개의 여러 사태들이 일관된 서사 없이 마치 ‘해프닝’처럼 이미지에서 이미지로 나열되거나, 혹은 마치 삶 그 자체의 모습처럼 서로 포개어지고 꼴라주 되어 동시다발적으로 표현된다. 여기에서 하나의 일관된 의미를 찾기란 쉽지 않다. 단지 장면과 장면 혹은 동작과 동작간의 우연적 조합이 전부이다. 의미는 안무가 혹은 관객 각자의 해석에 달려있을 뿐이다. 탄츠테아터의 무대는 언제나 난장 터와 같이 사람들이 분주히 등장하고 퇴장하고 그들의 몸짓과 대화들 통해 만들어지는 무수한 장면들이 교차한다. 그 공간은 놀이의 공간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바우쉬의 탄츠테아터에서 니체의 관점주의, 우연의 긍정, 놀이의 정신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글_ 정낙림(예술철학가)

독일 부퍼탈대학 철학박사, 경북대 강의교수, 한국니체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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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드는 사람들 _ 편집주간 최해리 / 편집장 이희나 / 공동편집장 장지원 / 편집자문 김호연, 장승헌 / 편집위원 윤단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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