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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_ 니체의 춤 철학


2014년 6월
2014.06.14
니체의 몸, 예술생리학 그리고 현대무용 (VIII)



 편집자 주: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가 현대철학에 끼친 영향을 사람들은 흔히 지축을 뒤흔든 지각변동에 비유한다. 니체는 스스로 자기로 말미암아 세계사가 두 동강이 난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시대가 신봉했던 진리와 가치 체계를 전도시켰으며, 새로운 삶의 양식을 제시한다. 니체는 철학뿐만 아니라 현대예술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현대무용은 몸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한 니체의 철학에 엄청난 빚을 지고 있다. 니체 철학, 특히 그의 몸철학예술생리학이 현대무용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살펴보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아래의 글은 지난 97일 한국무용기록학회 주최로 이화여대에서 있었던 강연 원고를 바탕으로 한다.








3. 예술의 생리학적 의미

 

 바그너와의 결별 후 니체는 예술이 형이상학의 역할을 대신한다는 ‘예술가-형이상학’의 핵심 이념을 포기한다. 그러나 그가 여전히 고수한 입장은 ‘삶이란 현상의 모든 변화에도 파괴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고 즐거운 것이다’라는 삶에 대한 그의 근본적 태도이다. 니체는 1880년대 이래로 예술이 초월적 이념이 아니라 바로 삶과 신체로 대변되는 대지를 노래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이러한 예술에 대한 니체의 입장은 그의 ‘예술 생리학’의 정신에 잘 드러난다. 예술생리학의 핵심 주장은 미적 체험과 생리적 조건이 불과분의 관계가 있고, 예술은 삶과 분리될 수 없는 통일체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지금 바로 이곳(now and here)의 삶은 창조적 힘이 발휘될 때 고양되며, 동시에 창조적 힘은 삶의 건강에서 촉진된다.

 예술생리학은 예술의 생리적 조건을 문제로 삼는다. 특히 니체가 몸과 예술의 관계에서 주목한 것은 도취(Rausch)의 현상이다. 니체는 몸의 고양을 도취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보는데, 예술에서도 도취는 창작의 전제조건이다. 이점은 우리가 좁은 의미에서 예술행위뿐만 아니라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창작하거나 생각하는 것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예술활동의 필수적 요소인 도취는 생명감이나 활력이라는 생리적 조건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예술이 있기 위해서, 미학적 행위나 통찰이 있기 위해, 도취라는 생리학적 전제는 필수불가결하다.” 따라서 예술의 최초의 동인은 바로 활력과 생명감이라는 생리적 조건이며,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 미적 체험은 불가능하게 된다. 도취는 또한 힘의 징후이고, 힘에의 의지는 모든 살아있는 존재의 내적 원리이다. “도취에서 본질적인 것은 힘이 상승하는 느낌과 충만의 느낌이다.” 여기서 니체는 예술과 힘에의 의지의 관계를 주목한다. 예술생리학은 원래 니체가 주저로 계획했던 『힘에의 의지(Der Wille zur Macht)』의 한 장으로 들어갈 예정이었을 정도로 니체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예술생리학에 대한 그의 주장은 후기 저작과 후기 유고에 산재해 있다.


 니체가 말하는 생리학은 우리의 섭생과 배설을 담당하는 육체(Körper)에 관한 학문이 아니라, 정신과 육체의 결합체인 몸(Leib)에 관한 것이다. 니체의 예술생리학은 니체의 몸주체에 대한 통찰과 불과분의 관계가 있다. 데카르트 이래 주체 혹은 자아는 의식과 관계하고, 일체의 인식과 실천은 바로 이 의식 주체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즉 ‘나’라는 주체가 모든 사유와 행위를 이끄는 변함없는 실체라는 것이다. 그러나 18세기 영국 경험주의 철학자 흄(D. Hume)이 이미 잘 지적하듯이 실체로서의 주체는 단지 우리의 인상과 관념이 만든 허구이고, 주체가 실체로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시키기 위해 주체의 불변성에 대한 약속이 필요한 것이다. 즉 10년 전의 ‘나’와 오늘의 ‘나’가 동일한 존재라는 것은 실재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약속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니체는 흄의 입장에 동의하며, 전통적 의미에서 주체는 허구이고  유럽어의 주어 중심의 문법적 습관이 주체의 실재에 대한 믿음을 더욱 강고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근본적으로 주체는 동일하지 않은 것을 동일하게 만드는 “비동일성의 동일화”의 욕망에서 탄생한다. 현실의 세계에 확고하고 지속적인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끊임없는 흐름 속에 놓여 있는 세계를 필연적 질서로 재편한 것은 인간 자신이다. 보다 더 엄밀히 말해서 ‘동일성에의 의지’는 바로 ‘힘에의 의지’이다. “어떤 것이 이러저러하게 존재한다는 믿음은 바로 그것이 가능한 한 동일하게 존재해야 한다고 말하는 의지의 결과”이다. 따라서 주체는 모든 사건에서 하나의 동일성과 통일성을 찾아내려는 우리의 힘에의 의지의 산물인 셈이다.


 니체에 따르면 엄밀히 말해 주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들이 있을 뿐이다. 이 주체들은 하나의 중심이나 목적을 향해 움직이거나 수렴되는 것이 아니라 힘들의 상호 작용 속에서 절대적 중심 없이 유희한다. 즉 ‘나’ 혹은 ‘자아’는 항구 불변하는 실체로서 하나가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 등의 상황과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주체들’이다. 하나의 중심을 포기하고 다수의 주체를 상정하는 주체는 더 이상 이성 혹은 의식과 관련된 주체가 아니다. 동일하지 않은 것을 동일하다고 믿게 하는 것은 의식의 힘, 특히 기억의 힘이다. 따라서 주체는 단지 하나의 “관점적 환상”, “ 지평선에서처럼 모든 것이 그 안에서 한 줄로 결합하는  가상적 통일”이고   “최고의 현실감을 가진 온갖 다양한 계기들 속에 있는 통일성에 대한 믿음을 표현하는 우리의 용어이다.” 의식은 복수의 주체를 설명하는 데 무능하다. 여기에서 니체는 몸의 질서에  주목한다. 몸은 “하나의 의미를 가진 다원성”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오히려 몸이다. 우리는 인간의 몸이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는지 한없이 놀라워할 수 있다. 살아 있는 생명체들의 그렇게 놀라운 통합이 어떻게 가능하였는지! 이 각각의 생명체가 독립적이면서 동시에 예속되어 있고, 그러면서도 어떤 의미에서는 다시 명령하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위 하면서 전체로서 살고, 성장하고 한 순간 동안 존립할 수 있는지! 이런 일은 분명히 의식을 통해서는 일어날 수 없다!”


 몸주체는 의식의 주체가 지향하는 질서, 법칙 그리고 통일을 거부한다. 그것은 오히려 혼돈과 우연을 본질로 한다. 이러한 몸주체는 ‘영원한 혼돈’을 본질로 하는 세계의 진정한 속성에 상응한다. 그래서 니체는 “몸으로부터 출발하여 몸을 실마리로 이용하는 것이 본질적”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중심은 도처에 있고”, “중심점이 끊임없이 움직이는” 주체는 바로 몸주체이다. 이러한 몸주체의 활동은 법칙에 따라 하나의 목적을 향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즉흥적이고 그때그때의 맥락을 통해 스스로 의미를 산출해 낸다. 몸주체의 활동은 감정(정동 Affekt)을 통해 표현되며, 의미는 바로 감정들 간의 놀이와 경쟁에서 탄생한다. 우리의 사유가 근본적으로 감정(Affekt)들의 협동 유희와 싸움의 결과라면 감정의 발원지인 몸은 의식의 뿌리인 셈이다. 의식 혹은 정신은 몸으로부터 떨어져 독립된 실재로서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은 몸의 일정한 존재성, 즉 일정한 자기 관계를 표현한 것이다. 정신은 몸의 수많은 활동 중 일부이며 그것의 특징은 세계를 반성적으로 파악하고, 질서지우며 언어화한다. 여기서 주체에 대한 근대의 사유는 전도된다.


 니체에 따르면 몸이 세계와 맺는 관계는 직접적이고 근본적이다. 일체의 의미와 가치는 몸과 몸의 표현인 감정에 뿌리내리고 있다. 따라서 예술이 진정으로 세계와 삶의 본질에 다가가려면 몸과 관계해야 한다. 니체가 예술을 생리학적 차원에서 이해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출발한다. 니체는 일체의 유무형의 의미창조를 근본적 의미에서 예술행위로 본다. 따라서 니체가 예술생리학에서 말하는 예술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예술관과는 차이가 있다. 우리는 예술을 특정한 자질을 가진 창작자가 자신의 의도에 따라 작품을 창작하고 그것의 결과가 작품이 되며, 그 작품은 특정한 장소에서 전시되거나 공연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이러한 예술이해는 일체를 전문영역으로 분화하는 근대의 산물이다. 니체의 예술생리학은 전통적 예술이해를 전복시킨다. 니체에게 예술이란 예술작품을 통해 표현된 예술가의 이념이나 진리의 표현이라는 협의의 예술이 아니라 개별 인간이 가진 창조성을 근거로 성취되는 자기극복이나 자기창조의 행위 일체를 의미한다. 이러한 니체의 주장은 인간 모두는 근본적 의미에서 예술가임을 천명하는 것이다.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행위인 예술은 인간을 고양시키고 이 고양은 도취라는 몸의 감정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예술과 몸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글_ 정낙림(예술철학가)
독일 부퍼탈대학 철학박사, 경북대 강의교수, 한국니체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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