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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_ 니체의 춤 철학


2014년 3월
2014.03.09
니체의 몸, 예술생리학 그리고 현대무용 (V)


  편집자 주: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가 현대철학에 끼친 영향을 사람들은 흔히 지축을 뒤흔든 지각변동에 비유한다. 니체는 스스로 자기로 말미암아 세계사가 두 동강이 난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시대가 신봉했던 진리와 가치 체계를 전도시켰으며, 새로운 삶의 양식을 제시한다. 니체는 철학뿐만 아니라 현대예술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현대무용은 몸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한 니체의 철학에 엄청난 빚을 지고 있다. 니체 철학, 특히 그의 몸철학예술생리학이 현대무용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살펴보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아래의 글은 지난 97일 한국무용기록학회 주최로 이화여대에서 있었던 강연 원고를 바탕으로 한다.  




(지난 호에 이어서)



 니체에게 디오니소스의 찢어짐(Zerrissenheit)과 고통 그리고 그것을 통한 부활은 인간 실존의 분열을 상징하며, 동시에 분열의 치유 가능성을 암시한다. 디오니소스적인 분열을 통합하는 가장 직접적이고 조야한 방식은 축제의 형태로 드러난다. 다양한 지역에서 그 흔적을 남기고 있는 디오니소스 축제의 공통점은 황홀과 도취를 목표로 하며, 거기에서 인간의 모든 사회적 통제와 질서는 무력하게 된다. 평소 사회적 규범 때문에 인간들이 꿈꿀 수 없었던 고삐 풀린 해방감과 자유를 그 곳에서 만끽한다. 모든 사회적 구속이 무화된 축제에서 개체로서의 인간은 사라지고 타자와 화해하고 자연과 하나가 된다. 이것은 적극적인 의미에서 자유의 극치이지만, 동시에 윤리적, 사회적인 규범과 질서의 부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디오니소스 축제의 조야한 형태는 대체로 음주 가무와 성적인 방종을 비롯한 일체 본능의 제약 없는 분출로 특징지어진다.


 이러한 디오니소스적 축제가 페르시아로부터 소아시아(오늘날 지중해의 동편 지역, 터키)거쳐 그리스에 밀려들어왔을 때, 그것은 한마디로 공포였다. 그리스적 균형과 절제는 디오니소스의 숭배자들 앞에서 붕괴 직전에 몰렸다. 이때 그리스인의 아폴론적 본능이 발현된다. 그리스는 디오니소스 축제의 광란을 그들의 정신적인 보편성속에 통합시킴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였다. 디오니소스적 축제의 광기는 그리스에서 창조적인 즉흥성으로, 감격적인 자유로 전환된다. 즉 디오니소스는 그리스에서 새로 태어난다. 디오니소스적 충동이 침입할 때까지만 해도, 밝음, 조화, 균형의 도리스적 건축 양식이 대변하듯이 그리스에서는 아폴론적인 것이 지배하고 있었다. 아폴론은 디오니소스를 자신의 섬세한 그물로 감싸 안았다. “이전에 델피의 아폴론의 지혜가 그처럼 아름다운 빛 속에 드러났던 적이 없었다. 아폴론은 우선 광포한 적을 가장 조밀한 직물로 거듭 싸안았다, 그래서 디오니소스는 전혀 의식할 수 없었고 거의 포로가 되어 앞으로 나갔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그리스 문화가 가진 자기 치유력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약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리스인들은 디오니소스 축제의 무절제를 예술로 승화시킨다. 그리스의 디오니소스에게서 비로소 “아시아가 그에게 부여하지 않았던 바의 것, 즉 가장 신속한 사려와 통찰력과 합해진 가장 민감한 감수성과 고통을 받아들이는 능력(Leidensfähigkeit)이 발견된다. 아시아에서 가장 조잡하고 저급한 자연적 충동들의 방출을 의미했던 디오니소스 축제는 그리스인들에게 세계 구원의 축제와 미화의 날이 되었다.


 니체는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인간의 심리적 본질, 형이상학적 원리 그리고 예술 기원의 두 원천으로 해석한다. 심리적인 차원에서 아폴론적인 것은 꿈을,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도취를 상징하고, 형이상학적, 우주론적 차원에서 그것은 각각 척도, 즉 개체화의 원리를 부여하는 본질과 그것을 파괴하는 본질을 각각 대변한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아폴론과 디오니소스는 또한 각기 상이한 예술적 양식을 대변한다는 것이다. 아폴론은 꿈과 표상을 통해 아름다운 형상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형상은 다른 형상과 구별될 때에만 하나의 형상으로서 아름답게 인식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니체는 “아름다운 가상의 신은 곧 참된 인식의 신이기도 해야 한다”고 말한다. 형상은 언제나 우리의 눈과 관계한다. 따라서 시각예술인 회화, 조각과 건축, 즉 미술은 아폴론적 예술에 속한다. 반면 디오니소스적 예술은 청각의 예술로서 일체의 형상을 초월하는 데서 기원한다. 음악이 그것이다. 니체에 따르면 이 두 예술의 양식은 서로 경쟁하면서 상호 발전을 촉진시킨다. 그 둘의 가장 고양된 힘이 ‘비극’을 탄생시킨다.


 디오니소스가 그리스로 침입할 때까지 모든 그리스의 예술은 아폴론의 속성을 대변한다. ‘척도의 요청’이라는 아폴론의 명령에 그들은 따르고 있다. 건축, 조각 그리고 서사시가 그러하며 심지어 디오니소스적 예술이라는 음악마저도 그러했다. 아폴로적인 본성은 언제나 일정한 형식과 틀을 목표로 한다. 과도함과 무절제는 그의 본성과 거리가 있다. 이에 반해 광포한 디오니소스적 축제에서 쓰이던 타악기와 사티로스의 합창들은 사람의 감정을 최고조로 이끌었으며 자기망각에로 유도하였다. 그것은 현악기를 중심으로 한 형식적 조화와 명상을 목표로 하는 그리스적 음악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디오니소스의 본성은 형식과 틀의 경계를 파괴한다. 그것은 언제나 무한과 극단의 세계를 추구한다.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서로 상이한 두 전선의 충돌은 위기이며 또한 새로운 생명의 잉태를 예고한다. 모든 예술은 이들 두 가지 본성을 표현한다. 전자가 과도하게 표출될 때 예술은 박제화와 도식화의 위험이 그리고 후자로 경도될 때 무절제와 맹목의 위험을 가진다. 이 두 가지 충동의 가장 행복한 결합이 아티카의 비극이다. 마치 한 쌍의 남녀가 갈등과 대립하면서도 한 순간의 화해로서 새 생명을 잉태하고 인류의 연속성을 확보하듯이.


 니체는 상이한 그리스 예술의 발전 단계들을 디오니소스적 혹은 아폴로적인 충동간의 주도권 다툼의 다양한 양상 혹은 조화로운 결합을 통해 설명한다. “고대 그리스 역사는 두 가지의 적대적인 원리들의 싸움을 근거로 네 개의 큰 예술 단계들로” 구분된다. 예술 충동의 각기 다른 표현은 상이한 예술들로 드러난다. 음악과 춤이 디오니소스적인 예술이라면, 조각과 건축 그리고 서사시는 아폴론적인 예술이다.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 충동의 완벽한 종합으로써 나타나는 아티카의 비극은 그리스 예술 발전의 4가지 단계 중 가장 높은 예술적인 성숙을 보여준다.


 니체가 비록 예술의 두 근원을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통해 설명하지만, 그렇다고 이 두 예술 충동이 비극에서 동일한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비극에서 아폴론적인 것은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보충하는 제한적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음악은 니체에 따르면 세계의 의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음악은 원일자(Ur-Eine)의 한복판에 깃들인 원초적인 모순과 원초적 고통에 상징적으로 관련하며, 이와 함께 모든 현상을 초월한, 모든 현상 이전의 영역을 상징”한다. 따라서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영원하며 근원적인 예술의 위력(Kunstgewalt)” 으로서 등장한다. 비극은 직접적으로 디오니소스 축제의 그리스적 예술의 변양이다. 비록 비극의 주인공들이 이름을 달리하지만 디오니소스적 신화의 주제인, ‘저항, 박해, 그리고 승리’를 비극 속에서 구현한다.


 그리스 비극은 <오이디푸스>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의 잔인하고 비극적 운명을 노래한다. 오늘날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가 전하는 작품을 통해 비극의 줄거리는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로 비극에서 보다 중요한 것은 스토리의 전달보다는 삶의 비극성을 합창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대사보다는 멜로디에 실린 합창이 훨씬 더 생생하며 감동적이라는 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텔레비전의 일일 드라마에서 음악이나 음향효과가 삭제된 경우를 생각해보면 곧 바로 알 수 있다. 그리스 비극은 흔히 디오니소스 극장이라 불리는 반원형의 야외 공연장에서 열렸는데 무대 장치에서도 음악의 중요성은 드러난다. 즉 공연장에서 합창단은 무대의 전면에 배치된다. 이것은 오늘날 공연에서 합창단이 무대의 가장 뒤쪽에 위치하는 것과 비교된다.


 그리스 비극은 주인공이 불가항력적 운명으로 고통을 당하고 몰락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구현함으로써, 관객은 삶이 가진 근본적 비극성을 상기하고 그것을 통해 스스로 삶의 고통을 이겨낼 위안을 얻는다. 비극은 현상계의 변화와 개별자의 고통을 넘어선 알 수 없는 ‘근원일자’(Ureine)와의 합일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삶의 근원적 비극성은 니체가 『비극의 탄생』에서 예시로 들고 있는 그리스 신화가 잘 말해준다. 미다스 왕이 디오니소스의 동반자인 현자 실레노스에게 간청하여 들은 인간을 위한 가장 훌륭한 지혜는 이런 것이다. “하루살이 같은 가련한 족속이여, 우연과 고난의 자식들이여, 그대는 왜 듣지 않은 것이 그대에 가장 이로운 것을 나에게 말하도록 강요하는가? 가장 좋은 것은 그대에게 불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며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 무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대에게 차선의 것이 있다면 그것을 일찍 죽는 것이다.” 그리스 비극은 그리스인들이 뼈저리게 절감하고 있었던 삶의 잔혹함과 무상함 그리고 어두움에 대한 대결의 산물이다. 이러한 삶의 모순성을 드러낼 예술형식은 음악이외에는 없다. 디오니소스적 음악이야말로 개별화의 원리, 즉 개별자의 삶 배후에 있는 저 알 수 없는 전능의 세계의지를 표현하는 예술, 모든 현상의 피안에 존재하며 어떠한 파멸에도 굴하지 않는 영원한 생명을 표현하는 예술이다. 비극은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삶과 세계의 진리를 들려준다. 비극은 설명할 수 없는 삶의 모순성을 긍정하고 그것의 힘을 찬양한다. 비극의 관람자는 “삶이 현상의 모든 변화에도 파괴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고 즐거운 것이라는(...) 형이상학적 위안”과 함께 공연장을 떠난다.


 그러나 그리스 문화의 건강성을 구현하던 비극은 기원전 6세기 경 쇠퇴기에 들어선다. 그리스 비극의 쇠퇴는 3대 비극작가 중 맨 마지막에 등장하는 에우리피데스에서 본격적인 징후를 보인다. 그러나 니체는 비극의 쇠퇴와 몰락의 주범을 소크라테스에서 찾는다. 니체는 소크라테스에서 ‘세계사의 전환’과 ‘소용돌이’를 본다. 에우리피데스는 소크라테스의 가면에 불과하다. 소크라테스는 이론적 낙천주의자를 그리스에 도입한 첫 철학자이다. “이론적 낙천주의자는 사물의 본성을 규명해낼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지식과 인식에 만병통치약의 힘을 부여하며 오류를 악덕 그 자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사물의 근거를 천착하고 가상과 오류에서 진정한 인식을 분리해내는 일이 소크라테스적 인간에게는 가장 고귀한 소명, 그 자체로 하나밖에 없는, 정말이지 인간적인 소명으로 생각된다.” 그는 “이론적 인간의 전형”이며, 그와 더불어 “사유, 즉 인과의 실마리 덕에 존재의 가장 깊은 심연에 까지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소크라테스는 비극을 혐오했다. 그의 혐오는 비극이 도저히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비극은 소크라테스에게 “모종의 비이성적인 것”인 것으로 보이고, “결과 없는 원인으로, 원인 없는 결과인 것같이 여겨진다.” 따라서 비극의 비논리성은 논리 속으로 편입되어야만 한다. 소크라테스의 본능, 즉 모든 것은 논리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비극에 도입한 사람이 에우리피데스이다. 에우리피데스는 “모든 것은 아름답기 위해 의식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그는 소크라테스의 충직한 제자로서 비극은 설명될 수 있어야한다는 원칙을 따른다. 니체는 이러한 입장을 “미학적 소크라테스주의”라 부른다.


 비극에서 미학적 소크라테스주의는 치명적인 것인데, 디오니소스적 음악은 언어나 법칙으로 알 수 없는 세계의 본질에 뿌리를 내리고 있고, 그것은 인간의 의식에서 비롯된 언어로 번역될 수 없는 것이기에 미학적 소크라테스주의와는 병립할 수 없다. 디오니소스적 음악정신으로부터 탄생했던 비극은 완전히 사멸하거나 전혀 다른 새로운 형태의 잡종 비극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이 공연되는 무대에서 음악은 최소화되고 토론과 논쟁 위주의 대화가 중심을 차지했다. 이것은 비극에서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쇠퇴와 아폴론적인 것의 득세로 요약될 수 있다. 합창을 통하여 매개된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비극에서 축출되고 연극이 주도권을 쥔 비극은 음악과 춤의 예술에서 말하는 예술로 변신한다. 비극은 점차 논쟁의 예술, 즉 “변증법의 쨍그랑거리는 무기놀이”로 변해갔다. 아폴론적인 것과 소크라테스 사이에는 밀접한 가족 유사성이 있다. “아폴론적인 경고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지고한 원칙(Maxime)이 된다. 소크라테스의 대화적인 자기반성(diskursiven Selbstreflexion)은 아폴론적인 속성 중 명석함만을 일면적으로 추구한다. 니체의 다음의 언급은 소크라테스와 에우리피데스간의 밀접한 관계를 암시한다: “즉 다음을 상기해야한다(...) 비극 예술의 적대자로서 소크라테스는 비극의 관람을 금했으나 에우리피데스의 새로운 작품이 상연될 때 그때만 관객들 사이에 모습을 드러냈다.”


 니체가 잘 지적하듯이 이론적 낙관주의의 결과는 실재적 삶의 맥락에서 보면 낙관주의와는 반대의 결과, 이른바 실재적 염세주의를 초래한다. 소크라테스적 제어할 줄 모르는 인식욕구는 계몽의 동인이 되었고, 그 결과 학문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권력이 될 수 있었다. 소크라테스적 인식욕은 삶의 광학으로 보자면 비정상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지식은 삶을 위해 충분하지 않으며 삶은 이성의 법칙들에 따라 바뀔 수 없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는 니체에게 이 천 오백년 전 과거의 한 역사가 아니라, 자신이 늘 대결해야 할 현재형의 인물이다. 니체에게 문제되는 것은 기원전 5세기경에 생존한 아테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라기 보다는 그로 인해 촉발된 긴 그림자, 소크라테스주의(Sokratismus)이다. 니체는 소크라테스에게서 ‘소크라테스 이전의’ 그리스인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하나의 징후를 발견한다. 니체는 그에게서 최초로 지식에 대한 충동에서 살아가는 파우스트적인 인간이 세계사의 무대에 등장함을 목격했고 인간 전체가 “보다 황량한 (...) 지식의 바다(...)”로 내몰리게 되는 운명의 단초를 발견했다. 소크라테스의 배후에는 언제나 “인식욕”(Erkenntnislust)이 존재한다. 이 인식욕이 현대적 의미에서 학문을 낳은 원인이며 그것과 더불어 그 속에 포함된 이론의 낙관주의는 계몽과 현대의 문제를 낳게 되었다. 따라서 니체는 소크라테스 속에서 “세계사의 전환점과 회오리를” 본다. 니체에 따르면 소크라테스 이래로 그리스인들은 인식의 무한한 힘을 믿는 ‘이론적 낙관주의’자들이 되었다. 이론적 낙관주의는 그리스 비극의 죽음을 초래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리스의 비극적 문화 전체를 몰락시켰다. 그 이후 소크라테스주의는 전유럽 역사를 규정한다.



글_ 정낙림 (예술철학가)

독일 부퍼탈 대학 철학박사, 경북대 강의교수, 한국니체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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