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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_ 니체의 춤 철학


2014년 2월
2014.02.17
니체의 몸, 예술생리학 그리고 현대무용 (IV)


  편집자 주: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가 현대철학에 끼친 영향을 사람들은 흔히 지축을 뒤흔든 지각변동에 비유한다. 니체는 스스로 자기로 말미암아 세계사가 두 동강이 난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시대가 신봉했던 진리와 가치 체계를 전도시켰으며, 새로운 삶의 양식을 제시한다. 니체는 철학뿐만 아니라 현대예술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현대무용은 몸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한 니체의 철학에 엄청난 빚을 지고 있다. 니체 철학, 특히 그의 몸철학예술생리학이 현대무용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를 살펴보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아래의 글은 지난 97일 한국무용기록학회 주최로 이화여대에서 있었던 강연 원고를 바탕으로 한다.  




II. 니체의 예술철학


 전통적으로 철학이 다루는 주제는 크게 봐서 네 가지로 나뉜다. 인식, 존재, 윤리 그리고 예술이 그것이다. 그러나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진정한 존재는 무엇이며,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는 존재와 인식의 문제이다. 철학에서 이 문제를 다루는 분과를 형이상학과 인식론이라 한다. 예술에 관해서 철학이 주로 제기하는 물음은 ‘미는 무엇인가?’이다. 고대나 중세 그리고 근대까지 철학에서는 미를 주로 감각적 쾌락과 관련된 것으로 본다. 플라톤은 예술행위를 이데아를 모사한 대상을 다시 모사하는 하찮은 것으로 취급한다. 즉 화가가 책상을 그린다면, 그것은 책상의 이데아를 닮은 실재 책상을 그리는 것으로 이데아의 그림자를 다시 그리는 셈이다. 특히 플라톤은 시인을 혐오했는데, 시는 이데아에서 가장 멀리 있는 감정과 충동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예술이 감정과 관계한다는 것을 자신의 비극에 대한 설명에서 잘 드러낸다. 비극의 효과는 카타르시스(배설, 정화)이다. 따라서 전통 철학에서는 예술이 이성을 근거로 설명할 수 없는, 즉 학문이 될 수 없는 것으로 취급되었다.


 예술에 대한 학문적 논의는 근대에 와서 비로소 이루어지는데, 18세기 중반 독일의 철학자 바움가르텐(A. G., Baumgarten)이 미학(Ästhetik)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쓰기 시작한다. 그는 미학을 통해 감성이 가진 인식론적 기능을 밝히려고 했다. 감성이 가진 인식 능력은 이성이 가진 능력에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저급하나 나름대로의 자발성이 있다는 것이다. 감성은 자기의 규칙을 가지고 상상력과 결합하여 시 쓰기와 같은 예술창작에 기여한다. 바움가르텐이 이해한 미학은 칸트에게 비판적으로 계승된다. 칸트는 인간의 관심과 행위의 영역을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에서 구체화한다. 칸트는 『판단력비판』에서 미의 문제를 다루지만, 그것은 인식과 실천의 이분법적 분리를 ‘합목적성’으로 해소하기 위한 보완적 성격이 강하다. 칸트가 미학과 관련해서 주로 문제 삼는 것은 미 인식론이다. 우리가 ‘이 장미는 아름답다’고 판단할 때, 그것은 개별적인 판단이지만 우리 모두가 공통적으로 장미가 아름답다고 판단하는 것은 칸트에 따르면 우리 모두에게 ‘공통감각’이 존재하기 때문으로 본다. 칸트는 미판단의 보편성 문제를 미학의 핵심과제로 생각함으로써 미가 우리 삶과 가진 근본적 문제라든지, 예술작품 혹은 창작과정 등의 예술에 대한 보다 근본적 문제를 놓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헤겔에서도 미는 그것이 가진 자체의 가치보다도 부수적인 혹은 수단적인 차원으로 다루어진다. 헤겔은 미 혹은 예술을 절대정신의 한 표현방식으로 보고 그것도 종교나 철학의 하위 단계로 파악한다. 더욱이 헤겔에서 예술은 절대정신과 관련된 진리를 드러내는데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헤겔은 ‘예술의 종말’을 선언한다. 헤겔에서 전통적인 의미에서 예술은 생동성과 진리의 표현이라는 본래적 의미를 상실하여 무가치한 것으로 전락했다.


 니체는 예술에 전혀 다른 지위를 부여한다. 니체에서 예술은 단순히 미와 그것을 구현하는 작품의 문제에 제한되지 않는다. 니체는 예술이 가진 근본적 의미가 무엇인가를 다시 묻는다. 태초에 인간이 왜 예술을 필요로 했을까? 이 문제에 대한 대답으로 우리는 근대의 예술철학 혹은 미학에서처럼 예술을 단순히 예술가와 작품 그리고 그것이 감상되는 공간에서 찾을 수는 없다. 어쩌면 근대인이 바라보는 예술은 원래 예술이 가진 의미를 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왜 그리스인들은 철학이외에 예술을 필요로 했는가? 플라톤식의 단순한 감각적 쾌락이나 아리스토텔레스 식의 카타르시스가 예술이 원래 추구하던 것인가? 니체는 진리와 예술의 관계를 전도시킴으로써 예술이 삶과 세계의 본질에 훨씬 깊은 곳에 뿌리내리고 있다고 선언한다. “학문을 예술의 시각에 보고, 예술을 다시 삶의 시각에서 볼 것”을 니체는 자신의 첫 철학저서인 『비극의 탄생』에서 요구한다. 니체에 따르면 과도한 인식욕구는 학문을 진리발견의 유일한 통로로 보게 했으며, 근대문화는 바로 이러한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기계론적 세계관은 일체를 설명가능하다고 보았으며, 설명되지 않는 세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론의 설명가능성과 이것을 기초로 한 자연과 인간 삶의 예측가능성을 확신했다. 그러나 근대의 과도한 인식욕구는 스스로 한계를 노정했고, 그 문화적인 결과가 바로 허무주의이다. 니체가 보기에 근대의 실패는 바로 삶과 예술과 학문의 잘못된 위계설정에 있었던 것이다. 니체가 인류역사상 가장 건강한 민족이라고 찬탄해마지 않았던 그리스인의 건강한 삶은 바로 예술에 대한 정당한 평가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니체는 근대의 산물인 허무주의를 돌파할 힘을 예술에서 찾았고, 예술만이 우리의 삶을 정당화할 수 있다고 보았다. “실존과 세계는 오직 미적 현상으로만 정당화된다.”


 니체의 예술철학은 크게 보면 초기 『비극의 탄생(Die Geburt der Tragödie)』에서 언급하고 있는 ‘예술가 형이상학(Artisten-Metaphysik)’과 후기 『즐거운 학문(Die fröhliche Wissenschaft)』이나 『도덕의 계보(Zur Genealogie der Moral)』 혹은 유고에서 주로 언급하고 있는 ‘예술생리학(Physiologie der Kunst)’, ‘미학의 생리학(Physiologie der Ästhetik)’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러한 분류는 니체철학의 발전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1. 예술가-형이상학(Artisten-Metaphysik) 



1) 그리스 비극

 예술에 대한 니체의 초기 사상은 1872년에 출간된 그리스 비극에 대한 연구서인 『비극의 탄생』에 잘 드러난다. 니체에 따르면 19세기 말 유럽의 근대는 자신들이 신봉했던 계몽의 힘이 고갈되었음을 절감하고 있었다. ‘너의 이성을 신뢰하라!’는 계몽주의의 명령에 따라 유럽은 자연과, 인간 그리고 문화를 이성의 명령에 따라 법칙화하고 통제했다. 그러나 그것의 결과는 계몽주의가 언약했던 인간의  평화와 행복이 아니라 민족간의 전쟁, 자본의 탐욕 그리고 문화적 퇴폐와 쇠약 그리고 피곤함이었다. 계몽이 도달한 막다른 골목에서 출구를 찾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니체가 택한 방법은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방법이었다. 문제가 시작되는 곳을 정확히 발견할 수 있다면 문제 이전의 삶에서 근대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니체가 발견한 해답은 ‘그리스’, ‘비극’, ‘디오니소스’이다.


 니체는 왜 역사상 가장 건강한 민족인 그리스인들이 철학(학문)과 더불어 예술(허구)을 필요로 했을까를 묻는다. 니체에게 그리스 문화의 요체는 비극이며, 그리스의 흥망성쇠는 비극의 탄생과 완성 그리고 몰락과 일치한다. 수많은 예술 양식 중에서 왜 그리스인들은 비극을 자신의 문화의 정수로 생각했을까? 자, 그렇다면 고대 그리스로 돌아가 보자.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신들을 통해서 세계와 인간의 본질을 설명한다. 천지가 창조되고, 아버지 크로노스를 제거한 아들 제우스는 아버지를 따르는 신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올림포스의 맹주가 된다. 그리스 문화는 제우스의 아들, 특히 태양의 신이고 예술의 신인 아폴론 신의 정신이 뿌리를 내렸을 때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그런데 동방에서 새로운 신이 도래했을 때, 그리스는 혼란에 빠진다. 혼란을 몰고 온 신은 도취와 축제의 신인 디오니소스였다. 디오니소스 역시 제우스의 아들이었지만 그의 출생은 여느 신과 달랐다.


 신화에 따르면,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와 테베의 왕의 딸인 세멜레(Semele)사이에 태어난 아들이다. 질투심이 강한 제우스의 부인 헤라(Hera)가 노파로 변장을 하고 세멜레를 찾아가서 그녀가 사랑하는 이가 제우스인지를 확인해보라고 유혹한다. 세멜레의 청을 뿌리치지 못한 제우스는 인간이 보면 너무나 눈부신 나머지 불에 타 재로 되는 황금 갑옷을 입고 그녀 앞에 나타난다. 그를 본 세멜레는 불에 타 재가 되었다. 그 순간 제우스는 세멜레의 배에서 디오니소스를 구해 자신의 허벅지에 넣었다. 달이 차 디오니소스는 세상에 태어난다. 거듭된 헤라의 디오니소스에 대한 질투를 피하기 위해 제우스는 디오니소스를 마침내 소아시아의 니사의 산에 살고 있는 요정들에게 보냈고, 그곳에서 자란다. 헤라는 결국 티탄들(거인족)을 그 곳에 보내 장난감으로 아이를 꾀어 사지를 찢어 불에 구워 먹는다. 이 사실을 안 제우스는 티탄들을 번개로 쳐 죽이고 재로 만들었으며, 데메타로 하여금 디오니소스의 타다만 몸에서 심장을 구해냈다. 또 다른 설에 의하면 제우스가 어린 디오니소스의 사지를 아폴로에게 주었고, 아폴로는 그것을 파로나소스로 가져가 그것을 짜 맞춘다. 결국 디오니소스는 부활한다.


 이상의 신화에서 우리는 디오니소스의 독특한 존재방식을 읽어낼 수 있다. 디오니소스가 비록 그리스의 신 중의 하나이지만 그는 하늘의 신과 대지의 어머니로부터 태어났다. 이것은 디오니소스의 역설적인 이중성을 암시한다. 하늘로 상징되는 불사의 존재 그리고 땅으로 상징되는 사멸하는 존재간의 모순적인 화해가 바로 디오니소스인 것이다. 이러한 이중성은 왜 디오니소스가 인간 실존의 상징으로 간주될 수 있었던가를 설명해준다. 또 왜 그리스인들이 세계와 인간의 비밀을 디오니소스 축제를 기원으로 하는 비극을 통해 설명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제공한다. 니체에게서 인간 실존의 근원적 이중성은 한편으로 고통의 원인이지만 다른 편에서는 오히려 끊임없는 창조의 샘이 된다.


(다음 호에 이어서)



글_ 정낙림 (예술철학가)

독일 부퍼탈 대학 철학박사, 경북대 강의교수, 한국니체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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