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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_ 친절한 춤 미학 가이드


2015년 4월
2015.04.30
이희나 편집장의 친절한 춤 미학 가이드 1 - ‘춤’과 ‘무용’ 사이


 얼마 전 일이었어요. 저희 집 꼬맹이와 놀면서 신나는 음악을 틀어놓았는데 갑자기 아이가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는 것이었습니다. 참 신기하지요. 가르쳐준 적이 없는데도 어린 아이들은 신나는 음악을 들으면 자연스레 엉덩이를 들썩이며 몸을 움직입니다. 어린아이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들도 어떤 음악을 듣거나 흥겨움에 젖으면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거리지요. 말 그대로 ‘춤을 춥니다.’ 노래방에 가서도 춤을 추고 집에서도 노래를 흥얼거리며 춤을 추고, 유흥의 자리에 춤은 반드시 끼어 있습니다. 우리는 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지요.


 지난주에 저는 한 무용공연을 보았습니다. 웬만한 발레 팬이라면 알고 있을 발레계의 거장 유리 그리가로비치의 안무작 <이반 뇌제(Ivan the Terrible)>였습니다. 화려한 샹들리에가 매달려있는 웅장한 극장에서 무용공연을 보려면 왠지 복장도 행동도 더 우아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무용공연장은 섣불리 들어서기는 좀 주저되는 장소이기도 하지요. 무용공연은 뮤지컬처럼 친숙한 느낌도 덜하고 연극처럼 편하지도 않을뿐더러 영화처럼 심심하면 갈만한 곳 같은 느낌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소통의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은 무용을 더 어렵게 생각하고 멀리하는 것 같습니다.

 

 

[사진1]_ 웅장하고 화려한 극장 속 무용공연(이희나 촬영)

 

 

 대다수의 사람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리듬에 몸을 맡기며 춤을 추면서도 무용공연장을 찾기는 꺼려합니다. 참 이상하지요? ‘춤’은 우리 삶 속에 묻어있는데 왜 ‘무용’은 그토록 낯설게 느껴질까요?


 전자와 후자의 차이점은 바로 ‘같이 추는 춤’과 ‘보여주는 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셀마 진 코헨(Selma Jeanne Cohen)이라는 무용학자가 춤을 구분한 방식인데요. ‘같이 추는 춤’은 우리가 직접 참여하여 경험하는 춤이라면 ‘보여주는 춤’은 춤추는 사람과 감상자가 구분되어 있는 소위 ‘예술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춤추러 가자”와 “우리 무용공연 보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역사적 맥락이 더해져 ‘춤’은 대중적인 것, 그리고 ‘사교춤’이나 ‘춤바람’과 같은 용어에서 볼 수 있듯이 고급하지 않은 이미지를 포함하고 있고, ‘무용’은 그와 상대적으로 고급한 예술의 의미를 갖고 있었지요. ‘춤’과 ‘무용’, 같지만 다른 이 용어에 대하여 조금 더 알아볼까요?



 

[사진2]_ 춤바람에 관한 영화 <바람의 전설> (출처: 네이버영화)
        "남들이 춤 출때 우리는 예술을 한다"?


 Dance, Danse, Tanz, Танец, Danza, Danca, 춤, 무도(舞蹈), 무용(舞踊). 이 용어들이 가리키는 것은 공통적으로 '춤'입니다. 서양어들의 어원은 탄하(Tanha)라는 산스크리스어로서, 이는 "생명력의 충일", "생명의 욕구"를 뜻하는 말입니다. 춤을 춘다는 것은 내가 생기(生氣)를 가지고 살아있다는 것이며 춤을 춤으로써 또한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춤을 잘 추건 못 추건, 온 힘을 다해 춤을 추면서 활기가 돌고 생명력이 약동함을 느꼈다면 바로 '탄하'를 경험한 것이겠지요. 수피교도들의 춤이나 무당의 춤과 같은 제의적 춤에서 무아지경에 빠져드는 것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한자문화권에서 춤을 일컫는 말은 무도(舞蹈)였습니다. 한자 무(舞)는 소꼬리 형상의 장식을 들고 있는 주술적 춤을 나타내는 글자이고 도(蹈)는 ‘발로 밟다/ 발을 구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손춤과 발춤을 모두 나타내는 말이지요. 한자어가 많이 사라진 오늘날 ‘무도’라는 말이 다소 어색하게 들릴 수 있지만 ‘무도회’라는 어휘는 아직도 빈번히 사용하고 있습니다.


 춤을 뜻하는 말 중에 오늘날 가장 많이 사용하는 것은 무용(舞踊)이 아닐까 싶습니다. 무용학과, 무용공연, 무용수, 무용평론가, 무용학자 등등. 그런데 이 ‘무용’이라는 단어가 20세기 초 일본에서 들어온 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나요? 일본에서 춤은 ‘마이(舞; まい)’와 ‘오도리(踊; おどり)’ 두 가지로 불리었습니다. ‘마이’는 일본의 전통극인 노오(能)와 같이 느리고 정적이며 수평적인 춤을 가리키며, ‘오도리’는 빠르고 도약하는 수직적인 춤을 가리킵니다. 즉 ‘오도리’는 서민적인 민속춤을 나타내는 용어가 되겠지요. 이 두 용어가 합쳐져 무용이라는 말이 된 것인데, 근대 이후 일본에서 신문화론(新文化論)을 주장한 쓰보우치(坪內)의 논문 『신악극론(新樂劇論)』에서 비롯된 용어입니다. 20세기 초 서구에서는 ‘새로운 춤’을 열망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기존의 형식을 깨는 새로운 발레가 시도되었고, 발레 자체에 아예 반기를 들었던 새로운 춤인 모던 댄스, 독일의 노이에 탄츠(Neue Tanz) 등이 등장했습니다. 노이에 탄츠란 영어로 뉴 댄스(New Dance), 바로 신무용(新舞踊)이지요.


 20세기 초,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였고 문화예술 분야 역시 침탈로 인하여 일본에서 많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용’이라는 용어 역시 여기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무용을 예술로서 소개한 사람으로 일본의 무용가 이시이 바쿠(石井漠)를 꼽습니다. 그는 한국 신무용의 대표적 무용가인 최승희와 조택원의 스승이기도 하지요. 독일 계통의 표현주의 무용을 공부했던 이시이 바쿠의 춤은 그대로 우리에게 신무용으로 소개되었고, 본격적으로 그러한 ‘무용’을 예술춤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전까지 우리가 춤추어 왔고 보아왔던 전통, 열린 공간에서의 더불어 추는 춤이 아니라 근대식 무대 위에서의 감상을 위한 춤을 무용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지요. 이러한 인식이 이어져 내려와 오늘날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술춤에는 ‘무용’자를 붙이고 학문과 관련된 용어 역시 무용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1980년대에 들어서 우리나라의 비평계에서 일제의 잔재를 씻어내기 위하여 ‘춤’을 복권시키고 우리 고유의 용어를 사용하기를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춤 공연 보러가자”고 하여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지요. 오히려 ‘무용’이라는 용어에서 우리 일상과 동떨어져 틀에 박힌 고답적 세계의 이미지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춤과 무용을 다른 뉘앙스로 인식하고 있지요. 최근에는 무용작품, 무용공연, 무용가 대신에 춤작품, 춤공연, 춤꾼 등으로 사용하고 있는 글들을 종종 봅니다. 물론 지금까지 근 백 년을 말해왔던 춤 용어들의 ‘무용’의 자리에 모두 ‘춤’을 대치시키기에는 어색한 말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 역시 가능하면 ‘춤’이라는 말을 사용하려고 합니다. ‘춤’이야말로, 어린 아이가 흥에 겨워 흔드는 몸짓부터 전문적 움직임까지 모두를 포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생명력이 약동하는 에너지의 원천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예술춤 뿐 아니라 더불어 추는 춤이기 때문입니다.


 

글_ 편집장 이희나(한국춤문화자료원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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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드는 사람들 _ 편집주간 최해리 / 편집장 장지원 / 부편집장 윤단우 / 편집자문 김호연, 이희나, 장승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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