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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_ 친절한 춤 미학 가이드


2017년 2월
2017.03.13
이희나 편집장의 친절한 춤 미학 가이드 4 - 춤 공연의 의미가 발생하는 지점
 발레단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볼쇼이발레단의 경우 공연 시기의 약 4개월 전쯤 앞서 공식사이트에 공연 일정이 공개됩니다. 그리고 약 3개월쯤 전에 해당 공연의 온라인 티켓판매가 시작되지요. 저는 종종 발레단 사이트에 들어가 체크를 하면서 미리 보고 싶은 공연을 선택해 놓았다가 티켓이 오픈되면 바로 구입을 해 놓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발레 티켓은 얼마 가지 않아 매진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공연 한 달에서 삼 주 전쯤 되면 출연진과 배역이 공개됩니다. 사전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티켓 구입을 하기 때문에 출연진 공개는 마치 로또 추첨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주역무용수들의 실력이야 볼쇼이발레라는 이름에 걸맞게 모두 믿을 만 하지만, 관객들 나름대로 좋아하는 무용수나 배역에 더 잘 어울리는 무용수가 있기 때문에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배역을 가늠해 보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러시아에서 꼭 봐야하는 발레리나’로 꼽히는 스베틀라나 자하로바가 출연하는 공연이 우연찮게 걸리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운수 좋은 날이 되는 것이지요.

 하나의 춤 공연이지만 공연자들이 달라질 때마다, 날짜가 바뀔 때마다, 심지어 각각의 관객 개개인마다 그 춤의 의미는 다르게 발생합니다. 여기서의 의미란 공연이 이루어진 이후의 해석적인 차원이 아닌 현상적이고 경험적인 차원에서의 의미를 뜻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백조의 호수>는 내일의 <백조의 호수>와 다르듯이, 같은 제목의 공연물이라도 언제나 복사본 마냥 같은 공연이 되지 않기에 춤 공연은 매번 새롭습니다. 이와 같은 의미생산의 유동성은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이루어졌다가 사라지는 공연예술 장르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의미의 유동성은 공연예술이라는 춤의 형태가 갖는 순간성, 찰나성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예술 작품을 하나의 ‘대상’으로 대해 왔습니다. 춤도 마찬가지이지요. 관객으로서 우리는 공연장에 가서 대상으로서의 춤을 감상(관조)합니다. 무대에 오른 무용수들의 몸과 움직임을 보고 그 움직임의 내용을 파악하고 의미를 해석하고 감상하며 때로는 그것을 평가하기도 하지요. 이러한 감상 태도는 전통적으로 예술을 바라보는 방식입니다.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내가 주체가 되어 눈앞에 펼쳐지는 예술 작품을 대상화하여 마주하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이 고정되어 있다는 것은, 그 둘 사이에는 거리가 존재하고 있으며 그 둘의 관계는 고정되어 변하지 않음을 나타냅니다.



[사진 1] 원근감이 뚜렷이 드러나는 프로시니엄 무대(출처_ www.picrevise.com)

 모든 사태를 구성해내는 데카르트식의 유아론적 주체이든, 주어진 대상(객체)에 대한 경험을 토대로 사태에 대한 인식이 가능한 경험적 주체이든 여기서의 주체는 플라톤적 이원론에 입각하여 근대의 이성적 주체로 이어져 온 정신주체입니다. 예컨대 르네상스적 원근법에 입각하여 그려진 그림을 멀찌감치 떨어져서 관조하는 방식으로 감상한다면 이는 근대적 주체 개념으로 예술을 감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구의 근대화된 액자형 무대인 프로시니엄(proscenium) 무대가 바로 원근법의 매카니즘을 공간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19세기에 창작된 고전 발레를 보면, 무대 배치에서 소실점의 중심에 주역 무용수를 위치시킨다든지 군무진들이 원근법적 구도로 정렬하여 마지 한 폭의 근대 회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이와 같이 직선적이며 투명한 근대적 공간 및 인식 패러다임은 힘을 잃었고, 상대물리학이 등장하면서 동일성이 작용하지 않는 비유클리드적 공간이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절대적인 공간이 아닌 지각자(경험자)에 의해 변화하는 매우 유동적이고 역동적인 공간입니다. 이 공간에서는 주체와 객체 사이가 사라지게 되며 중심부와 주변부가 서로 뒤바뀝니다. 공연예술에도 이 개념은 그대로 적용되지요. 중심부가 사라진 무대 배치라든가, 프로시니엄 무대를 탈피한 공간과 객석, 미술관이나 심지어 예술적 공간이 아닌 장소에서의 예술 행위를 통해 그 시공간을 예술적 경험의 장으로 만들어 버리는 과정 등 가이드라인을 설정할 수 없을 정도의 예술 공간이 생성되고 소멸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감상자는 단순한 수용자에서 의미 작용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행위자(actor)가 됩니다. 즉자적 객체로서 관조되었던 예술적 대상(예술 작품)은 행위자의 지각 경험 속에 얽혀들어 가지요. 춤과 같은 공연 예술의 경우에는 예술 대상을 직접 행하는 공연자(연행자)가 있어 더욱 변화무쌍한 의미가 생성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행위자(지각자)의 참여 여부와 연행자와의 교감, 예술 대상과의 상호 작용 등을 통해 매우 공감각적이며 운동감각적인 의미가 발생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미학자 아놀드 벌리언트(A. Berleant)는 이를 두고 '예술의 연행성(the performative)'이라고 일컬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예술적 경험 행위의 의미화 과정 속에서 관계 맺고 있는 상황을 ‘미적 장(aesthetic field)'이라 하였습니다.



[사진 2] 벌리언트가 제시한 미적 교호작용 관계도

 벌리언트는 현대의 예술적 변화를 설명하기 위하여 이와 같은 개념을 고안하였던 것이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예술의 연행성이라는 것은 동서고금의 모든 예술적 상황이 띠고 있는 성격이지 않을까 합니다. 그리고 춤이라는 예술 형태는 그 중에서도 연행자와 지각자 모두가 몸으로써 적극적이고 직접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예술 장르이기 때문에 가장 강렬한 연행성을 경험할 수 있는 장이 됩니다. 춤 공연의 의미는 이와 같은 복합적 상황 속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글_ 편집장 이희나(한국춤문화자료원 공동대표)

<참고문헌>
오병남, 『미학강의』, 서울대학교출판부, 2003.
이희나, 「예술의 ’참여‘ 개념과 춤의 연행성 연구-아놀드 벌리언트의 개념을 바탕으로」 , 『민족미학』 11(2), 2012. 12. 
Berleant, A., The Aesthetic Field: phenomenology of aesthetic experience, C.C. Thomas,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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