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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_ 친절한 춤 미학 가이드


2015년 5월
2015.05.31
이희나 편집장의 친절한 춤 미학 가이드 2 - 태초의 예술활동과 춤의 기원

 <꽃보다 할배>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그 시리즈를 통해 평소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여행지가 부각되기도 했는데요. 최근에 ‘할배’들이 다녀온 곳은 바로 그리스였지요. 연기자이자 젊은 시절 연극학도였던 그들이 가장 감명에 젖으며 둘러보았던 여행지는 바로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 있는 디오니소스 극장이었다고 합니다. 연극이나 춤과 같은 공연예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빼놓지 않고 이곳에 발도장을 찍는다고 하지요. 디오니소스 극장은 기원전 6세기에 돌로 지어진 가장 오래된 원형 극장으로, 아크로폴리스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오늘날 춤과 연극의 기원인 그리스 비극이 행해졌습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를 뒤로 하고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볼까요? 수렵과 채집 등으로 매일을 살아가던 구석기 시대의 흔적으로 추정되는 동굴그림들이 있습니다.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벽화와 프랑스의 라스코 동굴벽화는 익히 알려져 있지요. 최근에는 인도네시아에서도 약 4만 년 전의 동굴벽화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널따란 동굴의 벽면은 들소와 매머드 무리, 사슴 등의 동물과 상징적 기호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어떤 들소는 창에 맞아 죽어가고 있고, 또 어떤 들소는 그림이 그려진 후 실제로 창을 던진 흔적도 있습니다. 태곳적 인류의 조상들은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요?



[사진1] 알타미라 동굴벽화의 들소 (출처: 살아있는 지리 교과서)


 태초의 예술의 기원에 대해서는 몇 가지의 설(說)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 오늘날 우리가 예술 활동을 즐기는 것처럼 선사시대의 원시인들도 스스로 즐거움을 찾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춤을 췄을 거라는 유희설(遊戱設)입니다. 고되고 퍽퍽한 일상생활에서 잠시 탈출하기 위해 미술관이나 공연장을 찾거나 취미생활을 하는 현대인들처럼 그들도 열심히 사냥해 온 짐승을 먹고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포만감에 벽에 그림을 그리고 모여서 춤을 추었다는 생각인데요. 이 의견은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정착하지 않고 사냥으로 평생을 먹고 살아야 했던 구석기인들은 잠잘 때를 제외하고는 매일같이 죽기 살기로 동물을 찾아 달리며 하루 먹이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매일이 전쟁 같은 그런 시대에 아무런 목적 없이 그저 놀이를 위해서 예술 활동을 했다는 가설은 크게 설득력을 잃지요.


 두 번째로는 노동설이 있습니다. 그림이나 춤이 단순 예술 활동이 아니라 일종의 노동을 위한 것이라는 의견인데요. 멀리 볼 것 없이 우리 조상들도 농사일이나 낚시 등의 일을 할 때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몸의 움직임 리듬에 맞춰 흥을 돋워주는 ‘노동요’를 불렀지요. 예전 한 라디오 방송의 짤막 코너였던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를 기억하는 독자들이라면 여러 지역의 노동요들을 채집하여 틀어주었던 것을 들은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구석기인들은 더 많은 먹잇감을 얻을 수 있도록 미리 그림을 그리고 춤을 추며 생산성을 높이고자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설득력을 갖는 의견은 그것이 단순한 예술 활동이 아니라 주술적 활동이었다는 것입니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라는 조각상이 있지요. 인간의 모양을 하고는 있지만 보통 여인네의 몸이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풍만한 배와 엉덩이, 가슴을 자랑하는 둥글둥글한 모습인데요. 이것은 실제의 사람의 모양을 본떴다기보다는 다산(多産)과 풍요를 기원하는 주술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동굴벽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에 맞은 사냥감을 그려놓는다거나 이미 그려놓은 짐승에 창을 던지는 행위는 그렇게 함으로써 많은 짐승을 잡을 수 있다고 믿었던 인류 조상들의 염원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기원은 단순한 소망이 아니었으며, 실제로 그렇게 믿고 행했던 의식, 즉 제의(祭儀)였습니다.

*오스트리아의 빌렌도르프라는 지역에서 발견되어 이와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



[사진2]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출처: 지도와 함께 떠나는 역사 여행)


 제의라 하지만 엄숙한 분위기의 오늘날 종교적 행사 같은 것은 아닙니다. 사육제(carnival) 혹은 축제(feast)의 의미로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성공적인 수렵을 염원했던 주술적 행위는 봄의 도래를 축하하며 풍요로운 수확을 기리는 축제로 변모하였습니다. 고대 그리스에는 계절별로 제의를 지냈다 하는데 그 중 봄에 개최되는 것이 디오니소스 축제였습니다. 디오니소스(Dionysos)가 누구인가요? 우리에게는 모(某) 에너지드링크 이름과 같은 로마 신화의 이름 바쿠스(Bacchus)로도 잘 알려져 있지요. 바로 술[포도주]의 신이자 광기의 신이며 생명력을 신이기도 합니다. 니체(Nietzsche)에 의해 현대 예술론에서 재조명된 디오니소스는 로고스(logos) 중심의 아폴론과 대척되는 의미를 갖고 있지요. 아폴론은 빛의 상징으로서 이성적인 것, 로고스로서 인식 가능한 것이지만 디오니소스는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 가리어져 명확히 보이지 않는 것, 황홀감과 도취와 같이 설명 불가능한 것의 상징입니다.


 그리스인들은 초기에는 밀교(密敎)의 형식으로 디오니소스 신을 숭배하였는데 그 의식은 그야말로 광란의 도가니였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정신없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산 채로 바쳐진 제물(동물이나 심지어 어린아이도 있었다고)을 뜯어먹고 피를 마시는 등의 행위를 하였는데, 이를 통해 디오니소스 신의 살과 피를 먹고 신과 합일을 이룬다는 주술적 제의를 행한 셈입니다. 원시 제의와 같은 주술적 활동은 기원전 7-8세기 경 디오니소스 축제가 공식화되면서 원형극장에서 비극을 공연하고 즐기는 형태로 변모했습니다. 그 절정은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가 활약했을 시기였습니다.


 ‘비극’이라 하면 오늘날 연극의 하위 개념의 하나로 생각하기 쉽지만 고대의 비극은 제의의 일환으로 무대에서 상연하는 것을 전제로 한 코레이아(choreia)였습니다. 합창대 혹은 집단춤을 뜻하는 코로스(choros)와 음악, 시의 혼합물이었지요. 초기에는 코로스가 주도적 역할을 하며 디오니소스를 찬양하는 디티람보스(dithyrambos)를 낭송하고 춤을 추었고 한 명의 배우와 대사를 주고받으며 진행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코로스의 역할이 줄어들고 또 다른 배우가 등장하며 역할을 나눠 맡기 시작하면서 점점 오늘날의 연극의 형태가 된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애초의 비극의 형식은 시/음악/춤이 나누어지지 않은 악가무일체(樂歌舞一體)의 형태를 띠었다는 점입니다. 폴란드의 미학자 타타르키비츠는 이를 두고 ‘삼위일체의 코레이아(the Triune Choreia)'라고 설명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디오니소스 축제와 같은 제의의 기록이 있습니다. 중국의 역사서 『삼국지위지동이전(三國志魏志東夷典)』**에 부여와 고구려, 예, 삼한의 제천의식에 대한 기록이 적혀 있는데요. 학창시절 국사시간에 익히 들어보았던 부여와 고구려, 예, 삼한 등 각 나라의 사회상을 소개하면서, 영고(迎鼓), 동맹(東盟), 무천(舞天), 소도신앙 등의 제천의례가 시행되었던 시기, 규모와 성격에 대한 설명이 등장합니다. 나라의 환경에 따라 수렵국가의 경우(부여) 해넘이 수렵의례를 지내었고, 농경 위주의 사회에서는(삼한) 씨 뿌린 후(5월)와 가을추수(10월) 이후에 의례를 지냈다 합니다. 이 기록이 중요한 이유는 각 의례와 함께 벌어졌던 음주가무(飮酒歌舞)의 모양새와 그들이 추었던 춤에 대한 묘사에서 우리춤의 원형을 짐작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3세기에 진수(陳壽)가 편찬한 중국의 삼국시대(위;魏/ 촉;蜀/ 오;吳)에 관한 역사서 『삼국지』 중 위나라에 관한 책 30권에 동이 부분을 말한다.


以殷正月 祭天 國中大會 連日飮酒歌舞 名曰迎鼓
(은정월에 제천 국중대회가 있었는데, 몇날 며칠을 음주가무를 즐겼다. 이를 영고라 한다.)

常用十月節祭天 晝夜飮酒歌舞 名之爲舞天
(5월에 제천행사가 있다. 밤낮으로 음주가무를 즐겼는데 이를 무천이라 일컫는다.)

常以五月下種訖 祭鬼神 群聚歌舞飮酒 晝夜無休 基舞數十人 俱起相隨 踏地低昻 手足相應 節奏 有似鐸舞. 十月農功畢 亦復如之
(5월 씨뿌리기 후, 신에게 제를 바친다. 밤낮 쉴 새 없이 음주가무를 즐겼다. 수십 명이 일어나 춤을 추고 서로 따랐다. 땅을 밟고 몸을 수그렸다 펴고 손과 발이 잘 맞는다. 춤의 가락이 탁무(鐸舞)와 같다. 10월 농사일을 모두 끝내고 또 이와 같이 놀이를 한다.)


 이 기록을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고대 제의와 춤, 음악은 언제나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술과 노래도 빠지지 않았지요. 오늘날의 굿판이나 풍물 등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놀이들 역시도 악가무일체의 형식을 띠고 있지요. 그 뿌리를 제의에 두고 있는 형태의 연행(演行)들은 대부분 그렇습니다. 특히 서구와 같이 공연예술 장르가 세분화되지 않은 아시아 문화권의 전통 연희에서 이러한 형식을 많이 볼 수 있는데요. 요즘에는 무대화된 공연에서도 춤과 노래, 연극, 음악 등의 다양한 장르가 한 데 어우러진 것을 총체극(total theatre)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하기도 합니다. 총체극은 서로 다른 장르를 모아놓은 종합과는 다릅니다. 그것들이 유기적으로 얽혀있어 하나만 떼어내기 힘든, 또 하나의 새로운 연행의 형태가 되는 것이지요. 우리의 굿판이, 고대 그리스의 비극이 그러하듯 말입니다. 



글_ 편집장 이희나(한국춤문화자료원 공동대표)


<참고문헌>
이주영, 『예술론 특강』, 미술문화, 2007.
진중권, 『미학 오디세이 1』, 휴머니스트, 2003.
A. 하우저, 백낙청 역,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1』, 창작과비평사, 1999.
J. 해리슨, 오병남․김현희 공역, 『고대 예술과 제의』, 예전사, 1996.
W. 타타르키비츠, 손효주 역, 『타타르키비츠 미학사: 고대미학』, 미술문화,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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