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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_ 춤비평 담론


2016년 4월
2016.05.02
한국 무용에서 근대 그리고 근대의 출발

 인문학에서는 근대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이는 100여 년 전 역사지만 그 때  상황이 현재와 맞닿아 있고, 당대의 역학구도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그러다보니 근대성, 근대 기점 등 개념 정립으로 시작한 근대담론에 대한 논의는 미시적인 시각으로 들어가 광범위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흔히 근대는 자아의 각성이 사회 모든 면에서 정신적, 제도적, 집단적으로 일어나는 시기를 일컫는다. 서양에서는 프랑스 대혁명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여러 현상들에 주목하여 근대를 논의한다. 이는 왕정이 무너지고 소시민의 혁명에 의해 새로운 세계가 열렸음에 근거를 두는데, 한국에서는 이를 무 자르듯 언제다라고 이야기하기에는 문제가 따른다. 자생적인 발전이 더디 이루어지고, 열강에 의해 근대의식이 변용되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역사학계에서는 개항을 근대로 보거나, 문학계에서는 1896년 즈음을 보는 시각이 기본적 정조로 받아들여졌다. 외부로부터의 자극 혹은 갑오경장과 동학농민운동의 위와 아래로부터 집단적 개혁 그리고 이에 따른 여러 현상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그렇지만 문화예술은 조금 더 논의할 문제가 잔존한다. 이러한 의식적 전환을 통해 이에 걸맞은 작품이 양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극의 경우 이두현, 유민영 두 학자를 통해 근대연극기점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이두현은 1908년 원각사의 <은세계>를 신극의 기점으로, 유민영은 판소리 개량의 창극이 어떻게 신극이 될 수 있느냐고 문제를 제기하고 1911년 임성구의 신파극 연극 활동에 중심을 두었다. 이후 시대가 지나면서 근대 기점에 대한 논의는 리얼리즘 연극으로 잡거나 시각을 달리하며 여러 논의가 전개되었다.


 그렇다면 무용에서 근대에 대한 논의는 어디서부터 출발하여야 할 것인가? 조동화는 ‘신무용은 1926년 3월 21일 이시이 바쿠 경성공회당 공연으로부터 시작한다. 우리가 말하는 신무용이란 뜻은 서양춤의 뜻도 되지만 재래식 춤에 대한 신식춤이다’라는 두 가지 개념을 들어 이 시기를 획정지어 이야기한다. 안제승도 ‘우리나라 신무용사 남상(濫觴)으로 이해하려 하건 혹은 현대․무용사의 기점으로 용해하려 하건 1926년 3월 21일 경성공회당 이시이 바쿠의 무용공연을 새로운 무용사의 시발점’으로 지목하였다.




 두 사람 모두 1926년 이시이 바쿠의 공연을 신무용사의 기점으로 논의한다. 그런데 이러한 시각은 몇 가지 논의거리를 남겨준다. 첫째 우리 무용수가 아닌 일본의 이시이 바쿠 공연이 어떻게 신무용사의 첫 출발이냐는 점이다. 둘째 두 사람 모두 키워드로 이야기한 신무용의 개념은 무엇이며 이를 근대 무용과 같은 개념으로 보아도 되느냐의 문제이다.


 우선 신무용이란 용어에 대한 논의부터 생각해보자. 신무용이란 용어에 대한 명명은 이시이 바쿠의 무용에 대한 수식어의 의미와 동시에 당시 이 공연이 소개된 경성일보(京城日報)에 쓰인 기사를 토대로 이야기한다. 이것도 독일의 노이에탄츠의 역어(譯語)에서 비롯되었지만 당대 이야기한 신무용이란 개념이 전통에 대한 안티테제인지 아니면 시대적 개념 혹은 장르적 개념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논의의 대상으로 자리한다. 이렇게 볼 때 한국 근대무용과 신무용은 분리되어 논의되어야 할 문제가 아닐까 문제 제기를 해 본다.




 또한 이시이 바쿠의 공연을 한국 근대무용 혹은 신무용의 출발로 본다는 점에 대해서는 안제승이 말한 ‘한국인이 의식해 왔던 춤의 생리, 연락적, 유타적, 장식적 가치로서만 그것도 다분히 필요악적인 심정으로 이해해 왔던 종전까지의 무용관을 벗어나 공연예술로 새로운 춤이 존재해 왔다는 사실에 대하여 눈을 뜬 동기’라는 시각에서 다소간 설명이 될 것이다. 특히 이 공연을 통해 최승희, 조택원이 이시이 바쿠의 문하로 들어가 춤을 배우고 한국으로 돌아와 새로운 변혁을 일으킨 영향 관계도 함께 논의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라는 의미는 근대정신의 생산자와 수용자가 소통을 이루는 사슬이라고 했을 때 논의는 다른 시각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배구자의 1928년 개인발표회도 주목할 수 있는 공연이다. 이는 여기에는 창작무용 <아리랑>과 발레 <빈사의 백조> 등 다양한 창작 활동이 우리 손에 의해 관객과 소통하였다는 점에서 근대 논의로 고민할  문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한국 근대 무용에 대한 논의는 그동안 선학들이 제시한 바탕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다양한 담론이 창출될 필요조건이 있을 것이다. 이는 근대 무용을 통해 공연문화로 한국무용문화가 생성되었고 지금의 여러 현상을 바라볼 수 있는 담론으로 존재한다.



글_ 김호연(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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