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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_ 춤비평 담론


2017년 7월
2017.08.02
왜 다시 ‘사실성’인가?: 이야기의 귀환에 대하여
이야기의 폐위, 공간의 즉위: 포스트모던 시대의 공연들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 아래 이야기가 해체된 공연들은 공간에 의지해 콘텍스트를 확보하기도 했다. 맥락 없는 사건의 우연성과 우발성은 물리적 공간과 연동하며 존재 가치를 입증했다. 공연의 공간은 다양하게 창출되었다. 극장의 관습을 지우기 위한 노력으로 무대의 단을 없애고 객석의 배치를 바꾸고 아예 객석 자체를 없애 버리는 등 극장 안에서 다양한 변화를 시도했다. 그리고 공연은 좀 더 자유로운 공간으로의 탈출과 장소 탐방을 지속하며 장소가 발현하는 특성을 공연성으로 부각시키곤 했다. 전시장의 화이트 큐브도 대안 공간으로서 환심을 샀다.
전시장의 공연은 극장의 무대에서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공연이 아닌 관객과 함께 소통하는 공연으로, 감상하는 공연이 아닌 경험하는 공연으로 재탄생하는 듯했다. 관객의 감성보다 감각이 작동하길 요구하고 창작의 의도를 관객 스스로 채우면서 관람해야 하는 야심 찬 기획들은 애당초 관습적인 관람행위로는 가당치 않은 일이었다.


[사진 1] 트리샤 브라운, 〈Walking on the Wall〉(1971)



[사진 2] 트리샤 브라운, 〈It's a Draw〉(2002)


 지난 3월 타계한 트리샤 브라운은 전시장을 아주 효율적으로 활용한 안무가다. 춤을 기교로부터 그리고 극장의 관습으로부터 해방시키며 포스트모던 춤의 선두주자로 나섰던 그녀는 타계하기 두 달 전인 1월 20일에도 베를린 쿤스트 베어크 전시 오프닝에서 공연을 했다. 그녀의 일생은 몸에 대한 탐구 못지않은 장소 탐방의 여정이었다. 1970년대부터 이미 트리샤 브라운은 춤의 움직임을 복잡한 구성적 원칙에 따라 변형하는 시도를 했을 뿐 아니라 무용수의 몸을 공간에 도전시키는 데 열중했다. 건축물의 벽을 활용하여 무용수들이 밧줄에 매달려 이리저리 건너뛰고 관객들은 이를 보기 위해 종횡무진 돌아다니며 공연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한 작업 속에서 그녀는 미술관에서 만난 다양한 예술가들과 공간을 공통분모로 삼아 공동 작업을 했다. 독립적인 것이 모여 공동체적 작업으로 거듭난 진정한 협업이었다.

 춤은 공간의 전환으로 전시장의 다른 요소들과 만나 서로 융합하며 자유로운 예술로 거듭났다. 전시장은 사물의 고정된 배치의 공간이 아니라 유동적인 흐름을 만드는 시간예술의 뜨거운 성지가 되었다.  


공간 속에서 실종된 몸

 이야기의 맥락을 대체해 주는 것으로서의 공간의 활용은 공연의 가치를 높이기도 했지만 부적절하게 만연하며 많은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이런저런 공연이 마치 유행처럼 미술관이나 박물관으로 몰려가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극장 공연으로나 적절할 것 같은 춤이나 연극을 전시장에서 보여주곤 했다. 극장의 무대에서나 어울릴법한 조명 장치를 끌고 들어가서 거리를 두고 보아야 할 춤을 코앞에서 보여주기도 했다. 관객을 좁은 공간에 몰아넣고 숨 막히게 하는데, 미학적으로 의도된 설정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런가 하면 제도권의 극장에서는 지원금 정책과 맞물려 새로운 공간에서 자유롭게 펼쳐야 할 실험을 극장 무대에 올리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런 공연은 관객이 공연으로서 제대로 감상하기보다는 전시품을 구경하듯 관람했다고 할 수도 있으니 어찌 보면 극장과 전시장의 기능 교환이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해야 할까? 관습의 타파는 신선하고 의미 있는 일이지만 필요 이상으로 신봉하며 겉멋 부리기가 지속되면서 형이상학적 허상은 마치 자본주의 경제의 거품과 같이 허망하게 사그라졌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다원성이라는 측면에서 예술가들의 표현의 장을 넓혀놓기도 했지만, 그 모호성은 일부 사이비 예술가들의 말장난에 판을 깔아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상대주의, 기준 없음, 충격과 우연이 이제는 신선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무력하게 만들고 있다. “마치 도박이나 기후 변화처럼 도무지 규칙을 알 수 없는 예측불허의 세상에 내던져진 인간”에게는 이야기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몸의 실체도 규명하기 어려워졌다. 


왜 다시 ‘사실성’인가?

 ‘포스트 서사’란 무엇인가를 정리하며 서사의 종말을 해명하던 베를린 샤우뷔네의 책임 드라마투르크 베른트 슈테게만은 2016년 돌연『사실주의 찬사』라는 책을 내놓으면서 이야기의 귀환에 대한 논의에 불을 지폈다. 그는 “이야기의 종말은 이제 지나간 것 같다”며 최근 몇 년 사이에 ‘사실성’이 폭력과 함께 귀환했다고 언명한다. 의미가 제거되고 인과율이 깨진 세상에서 종교라고도 할 수 없는 맹목적 추종이 테러를 일삼고 있다. 예술의 테러리즘이 일상으로 들어와 우리의 뒤통수를 겨누게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도무지 결과를 알 수 없는 우연성, 이해 불가능성으로부터 벗어나 파악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말하고 싶어졌다. 슈테게만의 사실주의에 대한 고찰은 최근 철학계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 ‘새로운 사실주의’ 와 같은 대열에 있다.

 ‘새로운 사실주의’는 100여 년 전 반사실주의를 걸고 나온 신사실주의 운동과는 다르다. ‘새로운 사실주의’는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의 시대를 부르는 이름으로써 “형이상학을 거부하고 포스트모더니즘의 오류를 지적한다.” 과거의 사실주의는 존재론적 객관주의로서 예술에서는 고급예술에 대한 도발이자 정치적 저항의 도구가 되기도 했다. 예컨대 일상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가난하고 비루한 서민의 삶을 예술에 담아 고발했다. 무용에서의 사실주의는 사회주의 국가에서나 하듯 지나치게 구체적인 표현 방식으로 마치 구호를 표방하는 듯한 움직임을 구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사실주의의 영향을 받은 무용의 표현방식들은 일종의 재현적 행위들로 이어졌다. ‘새로운 사실주의’는 재현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객관적 사실만을 사실로 간주하지 않는다. 객관적인 사실과 주관적인 사실,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것을 모두 받아들인다. 우리가 어떤 사실을 두고 하는 생각 역시 그 생각의 대상인 사실 못지않게 똑같은 권리를 가지고 존재한다는 것이다. 예술 역시 전통에 근거하되 다양한 해석, 자유로운 상상 등 동시대적 양상을 충분히 반영한다. 다만 그 어떤 것이라도 파악할 수 있는 대상으로서, 최소한 자신이 말할 수 있는 것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새로운 사실주의’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마르쿠스 가브리엘(독일 본 대학 철학과 석좌교수)은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은 ‘사실성’을 촌스러운 것으로 치부해 왔다며 그들은 우리가 보는 것만 존재하며 배후에는 아무것도 없고, 그 자체로 있는 건 없다는 논리를 펼친다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이 제거한 의미들을 회복시키고자 한다. 가브리엘과 몇몇 학자들이 주창하는 이 새로운 사실주의는 여느 사조가 그렇듯이 많은 질문을 받고 있다. 분명한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오리무중의 상태에 최소한의 기준을 제시하며 모호성의 안개를 걷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왜 최근 사실적 표현에 대한 요구가 생긴 것일까? 슈테게만은 사람들은 왕년의 예술을 세계를 알려고 하는 작업이며 자명하고 이해 가능한 것으로 기억한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예술적 사실주의는, 하나의 사실이 있고 우리는 그것을 이해하는 것을 시도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 공동으로 느낄 수 있는 예술적 경험이 있다. 우연들로 인한 이해 불가능한 일을 당하지 않아도 된다. 사실적 묘사는 세상을 파악할 수 있게 하고 변화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새롭게 도래한 사실주의는 설명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것으로 가득 찬 포스트모더니즘 속에서 인식 가능성과 변화 가능성을 생성해 내는 일이다. 관객을 오리무중으로 만드는 게 예술인양,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던져 놓는 게 예술인양, 포스트모던의 안개에 덮여 그럭저럭 버텨온 시간들을 이제 새로운 변화의 바람 앞에서 되돌아 볼 때가 왔다.


글_ 서지영(공연평론가, 드라마투르기)
사진_ 트리샤 브라운 무용단 웹사이트 https://www.trishabrowncompan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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