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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_ 일본 공연예술의 현재


2016년 10월
2016.11.03
공연장의 발견
 2015년 초에 ‘Dance Theater Ludens’라는 컨템포러리 댄스 그룹의 공연을 본 적이 있다. <1 hour before Sunset>(연출·안무: Takiko IWABUCHI)이라는 서정적인 타이틀의 공연이었는데, 무용수들의 몸짓과 함께 퍼쿠셔니스트의 연주가 인상적이었다. 악기가 거대했기 때문이었던 것도 있지만, 타악기에서 울려퍼지는 소리가 당시의 무대 공간과 조화를 이뤘다고 기억한다. 공연장은 항구 도시인 요코하마(横浜)의 중심지에, 바다를 접하고 만들어진 공원 내부에 서 있는 일층짜리 작은 건물 안이었다. 경사진 건물 위로 공원길이 연결되어 있어, 그 길을 따라 오르면 커다란 오브제 앞에 설 수 있다. 공연장 내부는 마룻바닥이 깔려 있고 사방이 거대한 유리창들로 메워져 있는데 외부의 배경이 곧 공연의 배경이 되는 공간이다. 건물 밖 공원길에는 벤치가 놓여 있고 그 바로 앞은 바다였다. 홈페이지의 설명에 따르면 ‘ZOU-NO-HANA TERRACE’(象の鼻テラス)라는 이름의 이 공간은 바다에 쌓은 제방(堤防)의 형상이 코끼리의 코(ZOU-NO-HANA)를 닮았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테라스’라는 이름이 붙은 것처럼 공연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문화 행사와 교류를 할 수 있고 ‘휴게소’로서의 기능도 가지고 있다.

 <1 hour before Sunset> 공연에서 무용수들은 이 극장의 외부로 연결된 문을 이용해 등퇴장 입구로 사용하기도 했다. 공연은 오후 늦게 시작되어 공연이 진행됨에 따라 유리창 밖은 점점 어두워졌다. 어두운 바깥에 나가 있던 무용수들이 극장 안으로 들어오면, 마치 흙냄새와 바다냄새까지 불러들인 것 같았다. 그 바깥의 공기가 무용수들의 숨소리와 어우러져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냈다. 

[사진 1] ZOU-NO-HANA TERRACE / 촬영: Katsuhiro Ichikawa

  9월에는 극단 토리코엔(鳥公園)의 <↗야지루시>(↗ヤジルシ, 연출: 니시오 카오리=西尾佳織, 원작: 오타 쇼고=太田省吾)라는 공연을 봤다. 타이틀은 ‘화살표’라는 의미를 가지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화살표에 이끌리는 여자와 그녀를 쫓는 남자, 그리고 두 사람이 마주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연극은 극장에서 상연되는 보통 연극과는 다른 공간에서 연극의 틀을 해체한 전시의 형태로 공연되었다. 일층과 이층에 만들어진 몇 군데의 공간에서 한 장 한 장의 이야기가 동시다발적으로 상연되는 방식이다.

 이 공연의 공연장은 보통 연극이 상연되는 극장이 아니었다. 케이힌지마(京浜島)라는 인공섬 안에 위치한 BUCKLE KOBO라는 장소였다. 이 섬은 공업단지가 조성되어 있는 지역으로 BUCKLE KOBO 역시 그 공업단지 안에 위치해 있었다. 도심에서 전철과 버스를 타고 다다른 곳은 철공소였는데, 이 공장을 문화 활동이 가능한 아트 팩토리로 활용하고 있던 것이다. 일층에는 아티스트나 공연 관계자들의 도구가 제작 가능한 제작 공간을 겸하고 일부 공간은 아직도 선반공을 위한 작업 공간으로 쓰인다고 한다. 이층도 아티스트들과 세계 각국의 크리에이터가 활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쓰이길 원하는 것 같았다. 이 철공소 자체가 문화 발신의 프로젝트였다.

[사진 2] BUCKLE KOBO 이층 내부



 공연에서는 일층과 이층에 네 군데의 무대가 꾸며져 있었고, 일층은 오른쪽에서 공연이 진행되는 가운데, 왼쪽에는 철공소의 기계와 도구들이 놓여 있는 공간으로 쓰인다. 이층은 세 군대의 무대 옆 계단 아래 적재된 기계와 도구들이 내려다보인다. 작품 내용은 어떤 인과관계의 줄거리가 이어지는 작품이 아니었기 때문에 각 챕터를 열심히 따라다니면서 봐도 그 각각의 챕터에서 받은 인상이 전체의 감상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마치 분절된 여러 개의 작품을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또한 공연하는 무대의 반대쪽에 적재된 기계들이 공연 자체에 그로테스크함을 안겨주었는데, 별개의 공간으로서 공연과 조화를 이루지는 못했다. 이런 공연장을 선택한 의도를 생각하게끔 하는 공연이었다.


[포스터 1] 늙은 백조의 노래

 주말에 ‘부천판타스틱 연극제’에서 공연되는 <늙은 배우의 노래>라는 공연을 봤다. 이 공연은 안톤 체홉의 단편 세 개를 묶은 작품인데, 연출자는 한국인, 배우들은 일본인으로 자막 없이 일본어로 공연되었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극단이라 일본에서도 같은 공연을 두 번 보았고, 세 번째로 이번 공연을 보게 되었다. 작품 내용은 성향이 엇갈리는 남녀의 사랑과 프로포즈를 그린 희극 <곰>과 <청혼>, 늙은 배우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하는 <백조의 노래>로 관객들에게는 작품의 줄거리가 쓰인 전단지가 배포되었다. 관객들은 한국인, 배우들은 일본인으로 언어의 소통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공연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세 번이나 이 공연을 보게 된 나로서는 신기하게도 이번 공연이 배우들에게 어떤 날개를 돋게 해 준 듯하다고 생각되었다. 공연이 끝나고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극장 자체도 일본보다 관객석이 적고 무대가 넓은 관계로 목소리의 울림이 좋았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일본에서의 일상이 존재하지 않는 한국이라는 이국에서 올린 공연은 여러 가지 면에서 마음의 부담을 덜어 주고 자유스러움을 안겨 주었다고 한다. 공연장만 가지고 말한다면 일본에서 공연한 소극장은, 관객석이 넓고 무대가 굉장히 좁아 답답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고, 그런 곳은 비일비재하다. 공간 자체가 배우들과 관객들에게도 어떤 압박을 가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드는 공간이다. 그런 반면 한국에서의 공연장은 좀 더 무대 공간이 여유가 있었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이 여유로움이 배우들에게도 자신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넓혀준 것이다.

 공연장이라는 것이 공연의 일부가 된다는 생각을 새삼 생각하게 만드는 공연들이었다.


글_ 심지연(부경대학교 강사/ 일본 동경대학교 문학박사)


사진 출처_
사진 1_ www.zounohana.com
사진 2_ buckle-kobo.tok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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