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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_ 일본 공연예술의 현재


2016년 4월
2016.05.02
연극 <빛이 있는 길> - 무용 요소를 도입한 연기술
 연출가이자 배우인 오카노 이타루(岡野暢)는 전통적 요소를 중요시하는 연출가인 스즈키 타다시(鈴木忠志)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오카노 이타루는 스즈키 타다시의 극단 SCOT에서 독립하여 지금은 신체의 풍경(身体の景色, 2007년 결성)이라는 극단을 결성, 독자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2년에는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에서 배우로 연기상을 수상하였고, 2014년에는 서울에서 연출과 출연을 맡은 (레이디 맥베스)를 공연하기도 했다. 그리고 오는 5월 11일부터 신작 <빛이 있는 길>(光る道, 원작: 단 카즈오=檀一雄, 각색·연출:오카노 이타루)이 도쿄의 닛뽀리 d-소코(日暮里d−倉庫)라는 극장에서 공연을 올린다. 연습이 한창인 4월의 어느 날, 다다미가 깔린 연습장에서 공연의 막바지 연습이 시작되고 있었다.

[포스터1] 빛이 있는 길

 원작이 소설인 <빛이 있는 길>은 코야타(小弥太)라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자 다른 시공간에서 속박된 채 살아가는 또 다른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코야타는 어떤 맹목적 욕망, 주체 못하는 본성으로 인해 파멸을 초래한다. 코야타의 세계로 홀연히 끌려들어온 남자는 자신의 삶과 다른 한  순간의 삶을 부여받는다. 이 남자가 체험하는 찰나의 삶은 우연히 죽은 이의 골분이 담긴 유골함에 손을 대는 행위로 인해 펼쳐진다. 그렇게 펼쳐진 삶은 책 속에 담긴 옛날옛적의 이야기였다. 다른 시공간에 살던 한 남자가 한 순간 코야타의 삶을 살게 되고, 극의 마지막에 코야타와 한 남자는 각자 제자리로 돌아간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한 여자가 있다. 코야타가 맹목적으로 헌신하게 되는 16살 꽃다운 나이의  공주. 공주가 자신을 데리고 떠나달라는 지시에 일개 병사인 코야타는 그녀를 데리고 떠난다. 공주를 둘러싸고 코야타는 고뇌하지만 서서히 눈뜨기 시작하는 격정을 마주한다. 무대에서는 파멸로 치닫는 코야타와 공주의 과거가 재현되는데, 그들은 이미 떠도는 넋이기도 하다. 특히 공주의 정념(情念)을 표현하는 배우는 흰 칠을 한 얼굴에 붉은 기운을 입힌 분장을 하고 묵직한 걸음걸이로 천천히 등장한다. 무대 위에 쓰러져 있다가 일어나 부유한다. 순진하고 깨끗하고 고귀했던 공주는 천민인 소녀를 대하자 차갑게 하대하듯 질투가 깃들어 미숙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보통 여자가 되어 있었다. 코야타는 그 모습에 갑작스레 살인의 욕망을 느끼고 공주를 죽인다. 부유하던 배우는 공주의 저속한 얼굴을 있는 힘껏 표현해야만 했다. 코야타에게 죽임을 당한 공주의 원한도 깃들어 있을 모든 동작들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사진1] 연습실풍경_공주의 정념

 극의 주인공인 코야타 역시 묵직한 움직임으로 극을 시작한다. 이런 움직임은 공주와 코야타가 사연이 있어 떠도는 넋이라는 인물 설정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무게 중심을 하체에 두는 노(能)나 가부키(歌舞伎)와 같은 전통 예능의 움직임이 바탕이 되어 있다. 오카노 이타루는 극단 SCOT에서 활동할 당시, 무게중심을 하체에 두고 단전에 에너지를 모아 응축시킨 호흡의 역동성을 이용해 배우의 잠재능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훈련법을 스즈키 타다시로부터 배웠다. 독립한 후 독자적으로 연기술을 탐구해 왔지만 스즈키 타다시의 훈련법은 그의 연기술을 지지하고 있는 기반일 것이다.

 그의 연기에는 일본무용적 요소가 개입되어 있는데, 일본무용은 노와 가부키 등의 전통예능에서도 추는 춤이며 일본의 전통 춤이 집대성된 무용 장르이다. 오카노 이타루의 말에 의하면 그가 맡은 코야타의 움직임이 ‘일상적 동작을 일본무용적인 움직임’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말(대사)과 신체의 조합을 통한 움직임인데, 무용적 움직임을 이용해 공간의 유동성을 꾀하기 위함이다. 그의 연기는 공간의 유동성을 지각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대사를 말해 공간에 울림을 준다→그로 인해 공간이 변화된다→이 변화가 그 다음의 변화(동작)를 이끌어낸다는 논리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는 ‘신체성’을 중요시한다. 대사를 말하면 몸의 형태가 변화하는데, 이것은 대사를 끝내고 호흡할 때 몸의 형태가 바뀌는 것으로 신체성이 바뀐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 바뀐 신체성을 이용해 대사를 다르게 말한다. 연기를 할 때 감정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신체(몸)을 바꾸는 것으로 마음을 바꾼다고 그는 말한다. 이런 신체성을 이용, 에너지를 응축시킨 몸으로 대사를 말한다. 극의 초반에 코야타는 무대에 앉아 대부분 홀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데, 정적이며 격정적인 움직임 속에 코야타라는 인물의 정보, 감정, 일어난 사건들이 일사불란하게 호흡하고 있었다. 이런 연기술은 앞에서 언급한 전통예능의 연기술과 일본무용의 움직임과도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이번 연극 속에서는 새들로 분한 배우들의 집단적 움직임이나 배우의 무용적 동작을 이용해 극의 큰 포인트를 찍는 상징적 이미지를 표현하기도 했다. 공주를 데리고 떠난 코야타는 공주에게 맹목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 코야타와 공주의 성교는 아름답고 추상적으로 표현되는데, 이 장면에서는 16살의 소녀가 가진 요염함을 보여줌과 동시에 인간의 근원적 본능을 그려낸다. 세 마리의 새로 분한 배우들이 두 사람 주위를 맴도는 현란한 움직임은 성교가 상징하는 생명, 그 희열을 이미지하고 있기도 하다.

[사진2] 생명의 희열

 극의 마지막, 코야타로서 찰나의 삶을 살았던 또 다른 한 남자는 공주를 죽이는 코야타를 눈 앞에 마주한다. 현세도 저승도 아닌 또 다른 차원의 세계를 경험한 남자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 남자가 찰나의 삶을 살아주었던 덕분에 부유하던 코야타와 공주의 넋은 저승으로 떠날 수 있었다. 이런 진혼(鎮魂)은 노에서도 나타나는 형식으로 <빛이 있는 길>은 연기술과 이야기 구조 면에서도 전통예능의 요소를 듬뿍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5월의 본공연에서는 공연의 모든 요소가 어우러져 원하는 대로의, 눈물겹고 정적이며 아름다운 공간의 유동성을 잘 살려낼 수 있길 기대해 본다.


글_심지연(부경대학교 강사/일본 동경대학교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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