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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cle_ 일본 공연예술의 현재


2016년 7월
2016.08.06
부토 댄서로서 걸어온 길 - 무용가 양종예 인터뷰

 일본의 부토(舞踏, BUTOH) 컴퍼니 다이라쿠다칸(大駱駝艦)에서 댄서로 활동하는 양종예는 여러 인터뷰와 기사에서 알려진 대로 한국무용 전공자였다. 그녀는 경성대학교에서 한국무용을 배우던 중 좀 더 자유로워지고 싶었고, 춤에 대해 ‘무엇보다 무용, 모던 댄스, 발레 등의 ‘장르’로 묶어버리는 고정관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그녀의 생각이 졸업 후에 그녀를 댄서, 배우, 미술가들이 함께 하는 프로젝트 그룹에서 활동하게 했을 것이다.

 프로젝트 그룹 ‘퍼포먼스 파크’에서 5, 6년간 활동을 하면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 빠진 그녀는 우연한 기회로 다이라쿠다칸의 부토 공연을 접하게 된다. 부토 공연에서 가족과 같은 끈끈한 감정을 느끼고 어떤 필연처럼 부토의 세계로 끌려들어간다. 2009년부터 다이라쿠다칸의 댄서로 활동하면서 다수의 국내외 컴퍼니 공연에 참가했다. 그녀는 컴퍼니 공연 중 자신의 의지와 운명을 뜨겁게 느끼게 한 작품으로 <재의 사람(灰の人)>(2011년 공연)이라는 공연을 꼽는다. <재의 사람>은 개인적으로 그녀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출연해야 했던 작품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공연 직전에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났다. 거대한 쓰나미의 영상이 말해준 것처럼 당시 일본 사회는 굉장한 피해를 입었다. 작품 내용 중에 로마의 도시 폼페이를 한순간에 사라지게 한 베수비오 화산을 소재로 한 챕터가 있었다. 지하 6미터 아래 묻혀 있던 폼페이는 화산재 덕분에 당시 도시의 원형이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폼페이 사람들의 주검은 화산재에 묻힌 채 굳어버렸고 내부의 시신이 부패하면서 빈 공간이 생겨났다. 그 공간에 석고를 부어 넣자 폼페이 사람들의 최후가 고스란히 나타났다. 그 형상은 희생된 이들의 실제 형상과 표정, 몸짓, 비극의 참혹함과 고통까지도 보존하고 있었다.

 “이런 역사를 가진 화산의 이름이 한 챕터의 타이틀이었기 때문에, 더구나 동일본 지진이 일어난 직후에 이런 씬을 완성해야 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웠어요. 그 챕터에는 무대 전체를 덮칠 만한 큰 잿빛 천을 든 무녀들이 무대로 등장해 춤추고 있던 사람들을 덮쳐버리죠. 그리고 순간 재가 되어버린 사람들을 위해 무녀들의 춤이 시작돼요. 갑자기 죽음을 맞은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을 알지 못해 이승을 떠돌고 저승으로 가지 못하는데, 무녀들은 그 영혼들을 달래 저승으로 인도해요. 상황이 상황인 만큼 무대에서의 연기는 너무나 리얼하게 다가 왔어요.”

 무녀를 맡았던 그녀는 과연 자신이 그 역할을 할 자격이 있는지 자신에게 물었다. 혼란스러웠고 현실에서 여진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 후에도 컴퍼니 공연에 지속적으로 출연하던 그녀는 2013년에 연출/안무/출연을 맡은 <여우야 여우야>를 발표하기도 했다. 다이라쿠다칸은 도쿄의 키치죠지(吉祥寺)에 연습실 ‘코츄텐(壺中天)’을 운영하는데, 이 장소는 연습 외에도 단원들의 작품 활동을 위해 쓰인다. 양종예는 다이라쿠다칸 입단 5년이 되던 해에 자신의 작품을 이곳에서 발표하게 된다.

 “작품 타이틀은 <여우야 여우야>였어요. 쨍쨍한 해가 난 날에 비가 내리는 걸 한국에서는 호랑이 장가가는 날이라고 하는데, 일본은 여우가 시집가는 날이라고 해요. 이 여우가 시집가는 날이 작품의 키워드였죠. 그리고 한국어의 ‘여우’를 일본어 발음으로 하면 ‘酔う’(취하다)라는 말과 비슷하잖아요. 술에 취하다, 향기에 취하다, 사람에 취하다. 그렇게 우연이 한국어와 일본어를 동시에 연상시키는, 두 나라의 언어로 의미를 갖게 되는 타이틀을 만들었어요. 해가 쨍쨍한 날 부슬부슬 내리는 비. 여우는 왜 이런 날에 시집을 가나… 이런 이상한 날은 왠지 일이 손에 안 잡힌다… 그냥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그런 날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어떤 다른 세계로 빠질 것 같은 느낌…”


 그녀는 20대 초반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해 여러 장르의 작가들과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실험하고 저항하려는 의식이 강했다. 그래서인지 정작 자기 자신의 이야기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일본에 건너오면서 외국인으로서의 타국 생활, 무용수로서 치명적이었던 무릎 부상 등 예술가로서의 고민과 싸움이라기보다 처음으로 자신의 인생과 대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우야 여우야>는 그런 양종예 자신에 대한 이야기였다. 작품의 구성은 앨리스처럼 여행자의 시점으로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진행되는 방식을 택했다. 겉으로 보면 이상한 장소에 이상한 행위들이 난발하지만 우리 일상은 그런 이상한 시간, 그리고 시점과 늘 대면하고 있다.

 “그런 일상과의 대면과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가볍고 유머러스하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작품 후반부에 이상하고 유머러스한 사람들 속에 지독하게 고독한 한 사람이 있어요. 그 고독한 자(나)가 반대로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하죠. 그 이상한 세계에서 살아남을 것인가, 아니면 도망칠 것인가. 이 시점에서 작품이 풀리질 않았는데, 선배 한 명이 종예 씨는 무슨 일이 있어도 춤추고 싶은 사람이니까, 마지막은 자신에게 바치는 응원의 춤을 추면 어떨까라고 조언해 줬어요. 마지막은 지금의 내 모습을 바라보는 곳에서 끝이 나요. 속편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작품의 마지막은 지금 현재의 나에게 바치는 ‘응원의 살풀이’로 끝나는 게 맞는 거 같았어요. 의상 하나 걸치지 않고 벌거벗고 춤을 췄죠.”

 이 공연에 대해 그녀와 컴퍼니의 수장 마로 아카지(麿赤兒)가 나눈 대화는 굉장히 인상적이다. 마로 아카지는 그녀의 공연에 대해 자신이 처음 부토를 시작했던 60년대의 초창기 부토를 느꼈다. 그리고 한국인의 작품이었기 때문에 작품 속에 ‘한’이 담겨 있다고 느꼈다고 한다. 그의 말에 의하면 부토가 처음 생겨났을 당시 일본도 한국의 한과 비슷한 어떤 것이 존재했다고 한다.

 “일본의 부토 거장과 한국의 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후, 한국춤과 부토의 공통분모에 대해 생각했어요. 한국과 일본, 세계는 어떤 형태로든 이어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 부토는 굉장히 일본적인데 한국인인 당신이 일본의 부토를 하는 것에 위화감을 느끼지 않느냐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구체적으로 그 질문에 답할 수는 없었지만, <여우야 여우야>를 발표하고 나서 어떤 확신 같은 것이 생긴 것 같아요. ‘어떤 옷을 입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옷을 입고 어떻게 자신을 표현하느냐가 중요하다’구요”


 2014년에는 모교인 경성대학교에서 처음으로 부토 공연을 올리게 된다. 한국 공연에서 그녀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같은 곳에 있다 보면 안일해지기 마련인데 외부 작업을 하면서 안일해왔던 마음을 조인다. 그녀는 앞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외부작업을 병행하길 원하고 있다. 특히 최근의 관심은 ‘댄스 테라피’로 한국에서 댄스 테라피를 하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부토와 가진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전 이미 부토를 하면서 자신의 몸과 정신이 테라피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무릎의 장애를 부토를 통해 극복하고 있어요. 좀 거짓말 같을지 모르지만 병원에서 진단한 제 무릎 상태로는 그렇게 움직일 수 없다고 해요. 공연을 보러 온 재활담당 선생님들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제 움직임을 보고 인간의 몸은 정말로 신비롭다고 하더군요. 정신과 마음의 컨트롤인 거 같아요. 마로 선생님 메소드를 몸의 치료로 가져갈 수도 있겠구나. 뭐 그런 가능성을 생각했죠.”

 마지막으로 그녀는 부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부토는, 춤은 제 삶에 있어서 늘 함께해야 할 친구예요. 싸워서 등을 돌리고 싶을 때도 있지만 서로 사과하고 다독거리면서 재미있게 해나갈 생각이에요”

 2016년에도 그녀는 부토 댄서로 여전히 활동 중이며, 얼마 전 다이라쿠다칸의 신작 <파라다이스> 출연을 마쳤다. 이런 식으로 그녀는 10년 가까운 세월을 다이라쿠다칸의 부토 댄서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자유에 대한 갈망과 새로운 도전 의식으로 발전해나갈 것이다.


글_ 심지연(부경대학교 강사/ 일본 동경대학교 문학박사)
사진_ ⓒKoshiyama Daiga, ⓒJunichi Matsuda

참고문헌_
山田美穂, 「梁鐘譽の多元的トーク」, 『シアターガイド』 3월호, モーニング·デスク,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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